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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두시 Aug 09. 2022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몇 주전 런던 기온이 40.2도를 기록했다.                                                                                                                                                                                                         

선로가 뜨거워져 화재 위험 때문에 기차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활주로가 녹아서 공항 운영도 차질을 빚었다는 뉴스가 TV에 보도되었다. 이날 런던의 현장 취재 기자는 더위를 먹은 듯 멍해 보였다. 평소 취재 기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긴박이나 활기는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영국에서는 선풍기가 필수품이 아닐 정도로, 여름은 늘 적당히 더워 그나마 지내기 괜찮은 계절이었다. 이곳에선 기온이 30도만 돼도 이례적인데 몇 년 전부터 30도가 넘는 날들이 늘어났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해인 2020년, 우리는 집에서 무더위를 나기 위해 선풍기 두대를 장만했다. 이후 집에서 선풍기를 트는 날은 그래 봤자 일 년에 겨우 일주일 남짓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앞자리 단위가 급상승한 40도가 될 거라는 예보를 보고 조금 겁이 났다. 2도 정도 차이가 나도 체감 온도가 다른데 아이 학교는 어떻게 보내지? 집에서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버티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40도는 과연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됐다.


이런 우려 속에 극강의 폭염을 기록하는 역사적인 날이 다가왔다. 아이 학교에서는 안내문이 날아왔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창문을 다 열고 학생들에게 수시로 물을 먹게 할 것이라는 역시 일차원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더위에 취약한 아이들은 의료적인 차원에서 결석이 가능하다고,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영국 공립학교는 특별한 사유 없이 학생이 하는 경우 페널티가 적용되어 구청에 벌금을 내야 한다.) 평소 20분을 걸어서 등교하고 교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우리 아이는 더위를 많이 탔다. 체질적으로 땀도 많다. 나는 집이 더 시원할 것 같아 폭염이 예보된 이틀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집보다 학교가 더 시원하다고 얘기했다. 학교에 에어컨은 없지만 선풍기는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우리 가족은 폭염이 예보된 이틀 동안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물렀다. 수분 보충이 될만한 과일과 야채를 냉장고에 저장했다. 아이스크림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집안의 커튼을 모두 닫고 커튼이 없는 부엌 유리문과 창문은 박스 같은 걸로 가려 햇빛 유입을 막았다. 그렇게 창가의 해를 막아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동굴이 된 집은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되도록 야채 비빔밥 같은 불 안 쓰는 요리를 하려고 했고, 불을 쓰는 요리는 미리 오전에 해두었다. 그 결과, 실내 기온은 32도 정도 유지되었는데 공기가 건조해서 일층에서는 선풍기가 없어도 지낼만했다. 이층은 아이방과 남편이 재택근무하는 컴퓨터 방에 각각 선풍기를 틀었다. 이층은 공기 순환이 잘 안 되어서 밤까지 후덥지근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영국의 40도는 집에서 지낼만했다. 한국의 폭염처럼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이 주택이어서 그리고 정원의 잔디와 집의 방향 덕을 본 것도 같다.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았는지도...  


우리 집 정원 나무에는 새 모이통이 걸려있고, 잔디에는 새가 목욕하고 물을 먹는 버드 바스(bird bath)가 있어 새들이 자주 드나든다. 폭염 날, 새들도 견디기 힘들었던지, 평소와 달리 조용했고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나는 새들이 걱정이 되어, 정원 잔디와 나무에 물을 뿌리고 새들이 노는 버드 바스에 물을 자주 갈아주었다. 물을 갈아주고 시간이 좀 지나 버드 바스에 작은 참새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그보다 조금 큰 블랙버드 무리가 갑자기 떼로 와서 한바탕 물장구를 쳤다. 평소에는 한 두 마리였던 블랙버드 기동대가 되어 열 마리쯤 와서 바글바글 요란스럽게 물장구를 치는데, 그 모습은 만원 버스에 오르려고 서로 밀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기 흉했다. 비둘기는 버드 바스를 혼자 독차지하고 앉아서 에서 한참 여유를 부리려고 했다. 뜨거운 바람이 부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새들이 무사히 폭염을 견디기를 바랐다.


한 기후 전문가에 의하면 40도를 웃도는 이런 극심한 폭염이 유럽에서 3년마다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미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에 폭염이 더 자주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 그리 놀랍지도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번 경고를 계속해왔지만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40도라는 기온이 실제 내가 사는 곳에서 기록되니 보통일이 아니구나 싶다.


예전에 BBC에서 그레타 툰베리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다큐에는 그녀가 유럽에서 미국까지 요트를 타고 환경운동을 간 기록도 담겨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좁은 요트 안에서 겁이 난 십 대 환경 운동가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위험부담이 큰 그 여정은 어른인 나도 겁이 나고 꺼려졌을 법한데 그레타 툰베리는 그 일을 꿋꿋이 해냈다. 어떤 누리꾼은 SNS에서 그런 그녀를 관종으로 몰고 미국에서 유럽으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탔다며 비난을 하기도 했다는데, 그녀의 험난했던 요트 여정을 본다면 그들의 그런 비판은 금세 수그러들 것이다.

어린 십 대가 왜 그렇게 사명을 갖고 환경운동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만큼 지구가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40도의 폭염은 우리 아이가 살 세상에 위기가 닥쳤다는 걸 비로소 실감하게 했다. 이 글을 쓰던 중 서울 일부 지역은 집중호우로 침수되고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장면을 목격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다. 모든 이들이 이제부터라도 일상 속에서 환경을 생각하고, 유난스러울 정도로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게 되면 지구는 괜찮아질까? 기후는 인간들에게 다시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40도를 기록한 이틀간의 폭염 우리 아이가 영국에서 겪은 처음이자 마지막의 기후 역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기록을 남긴다. 그런 더운 날이 있었지 하며 훗날 그냥 한번 떠올리게 되는, 어쩌다 한번 겪은 경험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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