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쿠키를 열어본 적이 있나요?
영국에 있는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식후에 포춘 쿠키를 줄 때가 있다. 운세를 점쳐준다는 만두 모양처럼 싸인 딱딱한 과자인 포춘쿠키. 과자를 쪼개면 그 안에 숨겨진 쪽지가 있는데, 종이를 펼칠 때 스르륵 나타난 한 문장이 어떤 때는 내 상황에 맞는 기가 막힌 격언으로 나타나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포춘쿠키를 열어보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다.
포춘쿠키가 아니어도 나는 종종 유튜브로 타로점을 보기도 하고, 연말이면 온라인상에 쏟아지는 새해의 별자리 운세, 토정비결 등을 찾아보기도 한다. 점괘가 맞을 거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점괘가 나오면 괜히 마음이 편하다.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런던의 작은 서점 앞을 지나다 흥미로운 가판대를 발견했다. 나무 가판대 위에는 "Blind date with a book"이라고 적혀 있었다. 블라인드 데이트라면 얼굴도 모른 채 소개팅을 나서는 것 아닌가? 서점이 적극적인 주선자가 되어 책 표지도 모른 채 책을 사보라고 지나가던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표지를 덮은 종이 포장 위로 책에 대한 힌트 몇 개만 인쇄되어 있을 뿐이다. 가판대의 빈칸을 보니 이미 몇 권의 책이 팔린 것 같았다. 막연함을 즐길 줄 아는, 마음에 여백이 많은 사람들이 구매했나 보다. 책과 블라인드 데이트한 이들은 상대를 맘에 들어했을까? 맘에 안 들지라도 책과 블라인드 데이트를 한 자신의 선택만은 후회하지 않았겠지. 나는 이 책을 구매한 사람들의 모습을 혼자 이리저리 상상해보았다.
시간은 참으로 빨리도 흐른다.
벌써 12월이 되었고 이제 곧 2023년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나는 지난해를 돌아보고 새해에 이뤄졌으면 하는 소소한 소망들을 조심스레 품어본다.
사실 해마다 삶이 우리 앞에 어떤 얼굴을 하고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온갖 점성술과 토정비결 등에 내 운에 대한 기대를 걸어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괘의 축복 같은 예언과는 달리, 어떤 해에는 아무것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던 것도 같고, 운이 더럽게 안 좋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어떤 때는 우연을 가장한 신비한 행운이 따르기도 하고 뭐든지 술술 풀리는 것 같다.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아무리 밋밋했던 일 년이라도 한 가지 정도의 좋은 일이나 추억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기대 없이 나갔던 블라인드 데이트에서 내게 딱 맞는 짝을 찾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듯이, 신이라는 주선자가 내게 보내줄 삶이라는 데이트 상대가 2023년에는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지 이번에는 그 기다림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왠지 킹카가 나올 것 같다. 혹시 아니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