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기 전 여름 방학, 아이는 1:1 속성 수영 수업을 들었다. 5학년 정규 수업으로 학교에서 수영을 가르치게 되어서 수영할 줄 모르는 아이는 미리 배워보고 싶어 했다. 영국에서 여름은 한창 휴가철이어서 속성으로 수영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작은 호텔 수영장을 이용하며 수영 강습하는 업체를 찾아냈고, 아이는 삼십 분에 한화로 약 9만 원대에 달하는 수강료를 내고 수업을 배웠다. 아이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미리 수영을 배웠다면 이런 목돈이 한꺼번에 나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던 그 수영장은 과학 박물관을 비롯해 유명 박물관이 밀집되어 있는 런던 부촌 한 복판에 있었다. 특히 중동이나 러시아 부자들이 선호하는 동네라서 그런지 아이랑 같은 시간에 수영 수강을 하는 다른 아이 부모도 중동 출신 같았다. 그 아이의 부모를 보며 나는 처음으로 잠깐 부자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 런던 부자들의 삶은 어쩐지 한국 부자들과는 차원이 다를 것 같았다. 인건비,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가성비 따지느라 푼돈 쓰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 삶은 생각만 해도 왠지 달콤할 것 같았다.
오래전, 한국에서 봤던 한 광고가 떠오른다. 사랑스러운 외모의 여배우가 두 손으로 입을 모아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던, 당시 시청자들의 인상에 깊이 남은 화제의 광고였다. 새해쯤 방영됐던 그 광고는 지금 생각해 보니 요즘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을 잘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최근 한국의 인기 있는 유튜브 채널이나 베스트셀러 서적을 보면 대부분 돈 버는 법과 관련되어 있다. 유튜브 채널 이곳저곳에서 신흥 부자들이 출연해 자신의 투자 노하우를 설파하고, 서점에는 부와 성공을 위한 책들이 즐비해있다. 이런 환경이 사람들의 무의식에 부에 대한 욕구를 더 부추기는 듯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의 부에 대한 갈망이 영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강렬하게 느껴진다. 영국도 요즘 경제 상황이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서점에서 투자나 성공을 위한 자기 계발서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느껴졌던 파올로, ⓒ새벽두시, @seohwadoodles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 부자들의 삶을 쉽게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것을 보며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얻거나, 부러워하거나, 더욱 열심히 살려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한다. 최근 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House of Gucci)>를 봤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도 훌륭했고,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의 부유했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알도 구찌의 생일 파티가 열렸던 호수 앞의 호화로운 저택을 보며 나는 '이런 저택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화면 속 인물들의 화려한 의상, 고급스러운 가구와 소품으로 인테리어 된 집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부유했던 그들은 탐욕으로 인해 몰락하는데, 그 배경엔 변호사가 되려 했던 구찌가의 똑똑한 자제 마우리치오의 부인인 파트리치아가 있다. 마우리치오가 부자인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해 결혼한 파트리치아는 결국 마우리치오를 비롯해 구찌가를 위협하는 범죄자가 된다. 부자가 결코 행복한 인생을 살지는 않는다는 걸 시사하는 실제 사건이었다. 생각해 보니 부자가 되면 오히려 남의 덫에 걸려 재산을 뺏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고, 부가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불안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거다.
나는 부자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무한한 잠재력과 재능을 지닌 열한 살 아이를 보며, 나는 우리 아이가 누구보다도 부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아이에게 "너는 부자"라고 말해준다. "부자니까 네가 받은 선물을 나눠 주며 살라"고 말해준다. 물질적인 풍요가 주는 짜릿함을 쫓기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잘 활용할 줄 아는 부자가 되면 좋겠다.무엇보다 행복을 축적하는 부자가 되는 게 내가 꿈꾸는 부자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럭셔리 여행 유튜브 채널이재미있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