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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Mar 06. 2021

시험관시술 데뷔(1)

가능성은 1%

나팔관 조영술과 혈액검사 그리고 남편의 정액검사.

할 수 있는 검사를 마치고 원인을 알았으니 속은 후련했지만 후련만 했지 더 나아가는 방향을 알면서도 주저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인공수정조차 가능성이 희박하니 시험관시술을 권유 받았지만 망설여졌다.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이지만 마음과 몸이 많이 힘들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특히 실패의 경험까지 인정할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스스로 많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결과는 나와 남편 둘 다 안녕하지 않았고 대략 우리의 난임 원인은 이러했다.

정자의 양, 운동성, 모양 중 정상을 받은 항목은 없었고 모두 최하위 성적을 지녔다.

나팔관이 꼬여 있어 그나마 건강한 정자조차도 힘든 관문이 있었으며 자궁의 나이는 실제 내 나이보다 더 늙었다.  폐경도 나이보다 이르게 찾아올 것이라는 소견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시험관 시술을 해도 임신의 확률은 1% 정도일 것이라 했다.


한동안 우리 삶에 산부인과에 다녀온 이야기는 없었다. 병원에 다녀오기 전보다 현실을 열심히 집중하고 살았다. 아무일을 겪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처럼 침묵했다. 현실을 마주하기 벅찬 부분은 희박한 가능성과 생체 기능 저하말고도 재정적인 부분, 시간적인 부분들까지 고려하니 더욱 입이 무거워졌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슬픈 표정으로 울먹이며 내가 미안해. 게임 안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두도록 노력할게. 안 좋을 것은 예상했지만... 흐흑..... , 한동안 말을 못하는 그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시험관 시술이란 단어가 금기어인 것 처럼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제주로 오면서 삶이 소박해졌다. 지금 벌어 지금을 먹고 살고 조금 먼 미래까지는 계획하지 못할 소박한 삶이었다. 살고 있는 지역이 제주이니 시험관 시술을 받을 곳이 제주라면 몰라도 다른 지역이라면 비행기 값, 체류비, 병원비 등 감당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직장에도 이러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쩌면 장기간의 휴가도 받아야 했다. 또 어렴풋이 짐작이 되겠지만 제주는 의료시설이 취약하다.

더욱이 시험관 시술이라는 특별한 분야는 유명한 병원을 알아본다.

힘든 과정 끝에 배아를 잘 정착시켜주실 유명한 의사선생님께 진료받기를 갈망한다. 나또한 하게 된다면 신뢰하고 따라갈 수 있는 병원을 가고 싶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렵고 조명이 꺼진 듯한 하루하루가 지속됐다. 그럭저럭 살다보니 새해 계획했던 가족 구성원 번성을 하기 위한 작은 불씨도 꺼져가는 듯 했다.

그렇게 계절은 바뀌었지만 나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주변인들은 또다시 인생의 이벤트를 겪기 시작했다. 갈망하는 내게 생기지 않는 이벤트. 마음이 점점 옹졸해져갔다. 이벤트를 겪는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도 고문이었다. 이성과 감정이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이러다가 마음도 몸도 녹이 슬어버린 인간처럼 삐그덕대며 지금보다 더 그럭저럭한 삶을 살 것 같다.

그 누구도 더이상 내게 뭐라 하지 않지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이제는 시험관 시술만이 최선인 것을 알지만 문턱조차 밟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 무렵 제주에서 알게 된 언니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마침 남편분이 산부인과 전문의이신 언니가 선뜻 알아봐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과 의사선생님의 성함을 소개받고 우리는 침묵했던 우리의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재정의 문제, 시간의 문제는 의지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특히 (긍정이 아닌 부정적 상황의) 마음을 잘 정돈해야했다. 만일이라는 단어로 미래를 시뮬레이션 해야했다. 상실감과 아픔을 직면하는 연습을 하고 시작하는 시험관 시술이라니...

가능성의 수치가 우리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소박한 삶이라 늘 제로썸인 나날에서 약간의 썸을 모아둔 금액을 남편에게 털어놓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조금만 더 모으면 시험관 한 번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지원이 있다고 하니 지원 신청을 해서 도움을 받기로 한다.

직원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만큼 작은 마을기업에 다니고 있으니 인력의 손실이 크다. 또 내 자초지종 사정을 말하고 장기휴가를 청하는 일은 무척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상황이 열리니 마음이 열리고 검사를 다녀 온 지 꼬박 8개월만에 출발라인에 서게 되었다.


나팔관 조영술을 받았던 광주의 병원에서 진료기록지와 검사기록지를 받아 서울의 (ㅁㄹ와 ㅎㅁ) 산부인과를 내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리 첫 날을 감안해서 예약을 했다.

1%도 가능성이기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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