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영어공부법 part. 2
제가 생각하는 공부는 이렇습니다. 입력 → 인출 → (반복) → 입력 → 인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영어공부는 더욱 그러하고요. 그래서 입력, 인출, 반복의 3단계로 구분해서 '질리지 않는 영어공부법'을 말씀드려 보려 합니다. 특히, 중년의 영어 공부법을요.
입력은 실제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가장 어렵고, 중요한 단계이지만, 그만큼 지루하기도 합니다. 공부 초창기에는 이 입력 과정에서 욕심을 부리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력 과정에서 필요한 건 용기입니다. 영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고요. 즉, 공부의 시작 단계에서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집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집중력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니, 초반에는 너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몰아치게 되면 지쳐버리기 십상이니까요. 저는 처음 공부하는 분들께 '더 하고 싶을 때 공부를 그만 하시라'고 조언합니다. 그 시간이 5분이던, 10분이던 상관없습니다. 우선 시작한 뒤에 1분만 더, 5분만 더 시간을 늘려가면서 언제 자신이 지루해지는지 가름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루해지는 포인트를 알게 된다면, 역으로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뽀모도로 테크닉’처럼 집중과 휴식을 번갈아 사용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공부하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입력 과정에서 중요한 게 '환경 설정'입니다.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도 입력의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집에서 공부하면, 자꾸만 딴짓이 하고 싶어 지기 때문에, 스터디 카페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공부하면, ‘마감 효과’를 통해 집중력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환경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를 통해 인정의 욕구를 역으로 이용하시는 방법도 추천드립니다. 자기 계발 커뮤니티처럼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함께 공부하고, 인증하며, 이를 통해 공부하는 자신을 인정받게 되면 다음번에 또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슬럼프는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드라마나 볼걸. 이 시간에 잠이나 더 잘까?’ 하는 시기가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괜찮습니다. 정상입니다. 그럴 때는 공부 방법을 살짝 바꿔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공부 난이도를 조금 낮추거나, 오히려 높이는 것도 좋습니다. 영어 단어를 공부 중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단어를 한 번 풀어보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거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원서로 한두 페이지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마존에 들어가시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샘플 페이지를 무료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운로드도 됩니다.) 만약, 말하기가 목적이시라면, 테드나 명연설을 보시면서 따라 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를 빼먹는 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플 수도 있고, 정말 바쁠 수도 있고요. 공부는 매일 하시는 게 가장 좋겠지만, 괜찮습니다. 또다시 시작하시면 되니까요.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건 자꾸만 시도하고, 자꾸만 개선해보고, 자꾸만 반복하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니까요.
저는 영어공부를 해보자고 마음먹은 이유가 딱히 없었습니다. 업무상 영어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중년의 나이에 취업을 위한 토익 점수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요. 외국 여행도 딱히 좋아하지도 않거든요. 아이들도 아직은 어려서 영어보다는 우리말을 가르쳐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어느덧 1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원서 읽기’였습니다. 저는 원서를 읽고 싶었습니다. 외국책을 날 것 그대로의 느낌으로 한 번이라도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번역서를 읽다 보면, 덜걱거리는 문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과연 이 문장은 원서에서 뭐라 쓰여 있길래 이렇게 문장이 어색하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번역서임에도 매력적인 문장도 있었죠. 그럴 때면, ‘과연 이 문장은 원문에 뭐라 써져 있을까? 번역을 잘한 걸까? 작가가 잘 쓴 걸까?’ 궁금했었어요.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 작은 호기심이 이렇게 띄엄띄엄이라도 영어 공부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요. 만약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면, 영어를 어떻게 꺼내고 싶은지, 어떻게 인출하고 싶은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영어가 지루해질 때, 영어가 귀찮아질 때, 그냥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꺼내고 싶은 영어의 모습’을 생각하면 조금은 힘이 나기도 하더라고요.
그렇게 영어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연습장에 빽빽이도 해보고, 예문을 눈 감고 외워보기도 했지만, 저와는 별로 맞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쉬운 영어 예문을 소리 내서 읽는 것과, 쉬운 단어로 만드는 영어 작문이 재밌었습니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재미있는 공부를 하면서, 단어를 조금씩 추가하는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디지만,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원서 읽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은 차마 원서를 읽는다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한 줄, 한 페이지를 읽어 내려가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읽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해석이 잘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신기하고요.
제 얘기가 너무 길었네요. 인출은 말 그대로 꺼내는 일입니다. 입력한 걸 자꾸만 꺼내야만 공부의 보람이 있습니다. 단어를 외웠다면 예문을 읽어봐야 하고, 예문을 적어봐야 하며, 퀴즈를 플어 봐야만 합니다. 공부는 보물처럼 숨겨놓으면 안 됩니다. 가진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면 봄볕 아래 눈사람처럼 녹아 없어집니다. 오히려 자꾸만 꺼내어보고, 자꾸만 다른 것과 연결시켜봐야 합니다. 공부라는 나무는 인출을 먹고 자라는 게 분명합니다.
인출해야 학습이 됩니다. 저는 예문을 번역을 가린 채 소리 내어 읽어보며, 그 뜻을 유추해봅니다. 예문에 있는 단어들이 대부분 아는 단어임에도 해석이 아리송하면, 그때부터 문장 구조를 분석하며 차분히 살펴봅니다. 그렇게 몇 번 시도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그냥 해석을 봅니다. 그리고 ‘아. 이래서 이런 거구나.’하고 이해하기도 하고, ‘뭐야? 이건 완전 관용구네. 이걸 내가 어찌 알아?’하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소리 내서 읽어봅니다. 눈으로 공부한 것을 목소리로 꺼내어보고, 귀로 한 번 더 입력하는 셈이죠. 만약 연설문을 인용한 예문이라면, 마치 내가 연설하는 장본인이라도 된 냥 끊어 읽으며 스피치도 해봅니다. 손동작도 해보고요. 은근히 재밌습니다. 재밌으면 오래 기억할 수 있고요.
인출을 두려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막상 꺼내려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게 정상입니다. 모르는 게 당연하고, 잊어버리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의 뇌, 특히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그 용량이 제한적입니다. 하나를 입력하면, 무언가 하나는 비워야 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장기기억으로 옮겨두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장기기억으로 보낼 수 있느냐? 네, 맞습니다. 바로 반복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돌아서면 까먹는 게 당연합니다. 자꾸만 반복하는 것 밖에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아침에 공부한 것을 저녁에 반복하고, 저녁에 반복한 것을 아침에 확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활용해서 1, 2, 3, 7, 15, 30일 단위로 반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반복의 목적은 모르는 것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가볍게 훑고 지나가도 됩니다. 공부를 일주일 정도만 지속해보셔도 하루에 얼마나 공부해야 할지 감이 오실 겁니다. 내가 하루에 외울 수 있는 단어가 10개 인지, 20개 인지,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공부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는지 아는 것,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가 높아지면, 공부의 효율이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믿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부는 누구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또 공부이기도 하지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공부,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무언가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이미 공부하는 사람 즉, ‘스터디언’이십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마스터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는 잠시 하늘 위에 걸어두시고, 지금은 열심히 앞으로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힘이 들 때면 잠시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반짝이는 원대한 목표를 바라보시고, 또다시 앞을 보며, 그저 오늘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는 공부할 수 있다. 지금 한 시간 정도는 해낼 것이다. 내 앞에 단어 10개 정도는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외울 수 있다.’와 같은 믿음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로, ‘공부’를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