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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초이 Jan 28. 2021

나는 해외사업 전문가 ep.1

종횡무진 세계를 누비며 일하다

영어를 할 줄 아는 IT분야 인력은 상당히 수요가 많다. 국내든 국외든 공공이든 민간이든 업무 체계와 데이터 프로세스를 모두 디지털화해서 시스템으로 처리를 해야 하고 이미 구축을 했다고 해도 바뀌는 신기술에 맞게 하드웨어나 소프트 웨어를 바꾸기도 하고 유지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걸맞게 나는 바빴다. 개인적으로 포지션에 대한 불분명함이 가끔 혹은 자주 나를 불안하게 또는 불행하게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바쁘기도 했다. 사실 이 해외업무 덕분에 십 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자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졸업할 때 토익점수 하나 가지고 입사를 했다. 간단한 문장을 말할 수는 있었으나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운이 좋게 국제협력 업무를 하던 내 선임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얻어걸려서 그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내가 적합해서가 아니라 당장 그 업무를 할 사람이 없었다. 영어실력이 검증되지 않아서 회사에서도 약간 업무 배정을 주저했지만 담당 팀장님이 밀어붙였다. 그리고 바로 출장을 간 곳이 UN회의였다. 


첫 출장에서 내가 한 역할은 각 국가별로 관세나 무역과 관련한 업무에 표준 규약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동향 파악과 국내에 적용할 만한 신기술 같은 온/오프라인 자료들을 최대한 학습하고 국내에 적용할 만한 것들을 파악해서 가져오는 일이었다. 이것저것 잡무에 회의장 쫓아다니며 듣고 받아 적고 하느라 무지 피곤했지만 나는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걸 태어나서 처음 느껴봤다. 박물관처럼 생긴 콘퍼런스장에서 좋은 케이터링 푸드를 두고 커피잔 들고 대화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나를 들뜨게 했지만 사실 이것보다는 이런 지적인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서 지적인 대화를 하루 종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사실 너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영어가 늘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사실 그것도 내가 발견한 재능 중 하나다. 언어를 남들보다 좀 빨리 배운다는 거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나에게 언어적 감각이 약간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스스로 느꼈다.


처음으로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나 스스로의 어떤 가능성을 조금 발견했었던 것 같다. 한번 그렇게 다녀오고 나니 나에게 기회가 계속 주어졌다. 첫 출장을 잘해서가 아니라 역시 그 포지션을 할 적당한 사람이 같은 팀에 없었다... 두 달 뒤에 벨기에로 갔다. 동행한 공무원 분과 프레젠테이션을 함께 준비하고 나는 슬라이드 2장 기술부문에 한해 처음으로 발표를 했다. 그것도 운이 정말 좋게도 어린 신입사원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공무원분의 선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미숙하고 실수도 많았지만 기회는 주어졌고 나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사실 거의 스크립트를 그냥 읽었다. 두 번째 출장을 마치고 3개월 후 또 세 번째 출장.  


일본에서 열리는 UN콘퍼런스, 두 달 뒤 또 벨기에. 첫해에 4번의 출장을 누군가와 동행하기도 하고 혼자 가기도 했다. 횟수만큼 나의 부족한 실력만큼 그 첫 해 그 임무를 맡는 동안, 나는 남들 자는 시간에 코피 터져가며 준비를 하고 스터디를 해야 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코피가 났다. 하지만 그 과정이 괴롭지 않고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출장 준비, 출장 기간, 출장 다녀온 후 보고서 쓰는 기간만을 일적으로 즐겼다. 나머지 기간의 국내 체류기간 동안 다른 프로젝트는 항상 불안과 시달림의 연속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후회되고 그때 같이 일했던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연차와 해외 출장 횟수가 쌓이고 3년 차가 되자 해외 파견 기회가 생겼다. 나는 정말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남미의 한 국가로 1년 반 동안 체류하며 프로젝트를 해야 했다. 이번엔 꼭 가야 하는 게 아니라 팀장님으로부터 먼저 가겠느냐는 의사를 물어왔다. 장기체류인 데다가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고 거기서 외로울까 봐 많이 걱정이 됐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두 번 생각 안 하고 가겠다고 했다. 어떤 기회인데 이걸 놓치랴 싶었다. 그렇게 나는 이민 가방 2개 짐을 싸서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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