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나라 사이의 경계.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북쪽은 가까이 갈 수 조차 없는 벽으로 막힌 나라. 그래서인지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던 다른 나라들의 '국경'의 이미지는 늘 이국적이고 가끔은 낭만적이기까지 했었지요. 굳은 표정의 제복 군인이 깊은 챙의 모자를 쓰고 바리케이드 뒤에 서있고 커다란 트렁크를 한 손에 든 중절모의 남자 혹은 보자기 짐을 든 모녀가 낡은 여권을 내밀며 숨죽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처음, 여행이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 갔던 곳은 유럽이었습니다. 비행기로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려 '입국'이라는 걸 처음 했었지요. 비행기로 어느 도시에 툭 떨어지는 입국은 국경을 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실제로 나라의 경계를 넘은 건 영국에서 프랑스로 도버 해협을 건너는 야간 버스였습니다. 버스에서 자고 있다 일어나서 배 안에서 여권을 보여주는 아주 단순한 절차였지요. 제가 마음에 품고 있던 그 월경(越境)은 아니었습니다. 석 달 동안 여러 유럽 나라들을 다니면서도 다를 게 없더군요. 그때는 유럽이 한 나라도 아니었고 모두 자기 나라 화폐를 쓰고 있었을 때였는데도 기차를 타고 가다 어느 순간 여권을 보여주는 정도의 절차가 반복되었을 뿐, 기대했던 국경도시의 긴장감은 결국 유럽에선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신장 위구르. 카슈가르
카슈가르 모스크
카슈가르 - 소스트 국제버스
돌이켜 보니 제가 그렇게 처음 국경도시를 통해 나라의 경계를 넘었던 기억은.. 여행을 시작하고 아주 한참 지난 07년. 십 수년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거의 대부분 한 나라를 다니거나 비행기나 배를 타고 공항이나 항구로 입국을 했더군요. 제가 기대했던 식으로 국경을 처음 넘은 건, 중국 신장 위구르의 카슈가르(Kashgar)에서 출발하는 국제버스를 타고 파키스탄 소스트까지 가는 여정에서였습니다. 위구르의 땅을 떠나 타지크의 도시를 거쳐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거대한 산맥 귀퉁이의 길을 넘는 버스지요. 버스는 오후 늦게 타지크족의 마지막 마을 타슈쿠르간(Tashikuergan)에 멈춥니다. 이 곳의 초대소(招待所)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국경을 넘는 거지요. 이미 우루무치의 정부 초대소에서 한 번 묵어본 터라 그 딱딱한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같은 버스를 탄 일본 여행자 둘과 함께 같은 방을 쓰게 되기도 했었구요.
타슈쿠르간. 타지크 사람들의 국경도시
카라코람 하이웨이.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다음 날 아침 일찍 타슈쿠르간을 떠난 버스는 다시 산을 거슬러 오르다 드디어 국경검문소에 닿았습니다. 모두 버스에서 내리고, 녹색 제복을 입은 '굳은' 인상의 중국 공안의 지시에 따라 움직입니다. 짐을 검색대에 올리고 채워야 할 칸이 많은 서류를 쓰고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출국 도장을 받습니다. 버스 승객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장을 봐서 돌아가는 파키스탄 상인들. 자주 드나드는 길일 텐데도 그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보이더군요. 중국 공안이 꽤 무게를 잡거든요. 지금도 기억나는 건 결국 모든 절차가 끝나고 파키스탄 측 국경에서 입국도장까지 받고 다시 버스에 올랐을 때 버스의 모든 파키스타니들이 환호를 올리며 우리 세 명의 여행자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떠들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별 트집 없이 중국 공안을 통과하고 자기 나라로 무사히 돌아온 기쁨이었지요. 저도 첫 '국경'을 통과하는 긴장이 그제야 풀리는 걸 느꼈습니다. 방콕에서 중국 비자를 받고, 베이징에서 파키스탄 비자를 받고.. 우루무치로, 카슈가르로.. 기나긴 여정을 지나 드디어 쿤저랍 패스(4770m)를 넘어 파키스탄에 들어온 거니까요. 워낙 험한 산악지역이라 국경엔 작은 휴게소뿐, 마을조차 없는 곳이긴 했지만 파키스타니들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표정이 그 첫 국경 통과의 이미지로 아직 남았습니다. 파미르 고원을 지나 쿤저랍 패스를 넘어,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넘은, 첫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