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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Apr 23. 2019

국경. 끝과 끝이 만나는 시작 2

인도 - 파키스탄 - 아프가니스탄

한국 같은 섬나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웃나라들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게 마련이지요. 그 국경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곳들이 많고 산이나 강처럼 자연적 경계가 기준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웃들과 영토분쟁이 있는 나라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철책이나 장벽 같은 구조물은 거의 없고 띄엄띄엄 국경을 경비하는 곳들이 있을 뿐입니다. 적어도 제가 드나든 국경들은 그랬지요. 그런데 그중 현재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군사적 충돌도 가끔 일어나는 곳 중 대표적인 곳이 파키스탄과 인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들이 파키스탄과 인도를 오갈 때 가장 많이 드나드는 펀잡(Punjab)의 와가(Wagah)-아타리(Attari) 국경에서는 양국의 의장대들이 펼치는 국기하강식이 인기입니다. 서로 자국의 국기를 들고 화려한 장식의 의복과 동작으로 경쟁적으로 펼치는 행사라 많은 사람들이 보러 가지요. 저는.. 이동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라호르 역
라호르 바드샤히 모스크
인도와의 크리켓 경기를 함께 응원하는 파키스탄 남자들


인도 아타리 국경에서 암리차르 시내로 가는 릭샤꾼
암리차르 시크교 성지 골든템플


이 국경에서는 의외의 기억이 있습니다.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와가 국경까지 와서 출국 수속을 밟고 나면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인도 아타리 국경까지 자기 짐을 가지고 걸어가야 하는 공간이 있는데 제 무거운 배낭을 끌고 가던 저는 그 길 한가운데서 반대편에서 오던 일본 여행자 한 명을 만났습니다. 이 친구, 학교에 가듯 작은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짐을 인도에 두고 잠깐 라호르 정도를 둘러보고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저는 그렇게 작은 괴나리봇짐 하나를 들고 여행하는 어린 여행자를 보고 괜한 마음에 감동을 해서 말을 걸고 말았지요. 파키스탄도 인도도 아닌 길 중간에서 커다란 짐을 든 한국 아저씨와 작은 봇짐 하나를 든 일본 청년이 멈춰 서서 한참 얘기하고 있는 장면도 생각해보니 국경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인 것도 같네요.

 

라호르와 암리차르는 둘 다 크고 오래된 도시들이라 국경도시의 분위기는 찾을 수 없고 심지어는 두 나라가 영국에 의해서 분리(‘The Partition’이라고 부르지요)되기 전엔 같은 펀잡 주의 도시들이었으니 오히려 비슷한 점이 많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흘러서 한쪽엔 오래된 모스크들이, 다른 쪽엔 시크교 사원(암리차르는 '골든 템플'이 있는 시크교의 성지입니다)들이 있는 다른 나라의 도시들이 되었지요. 제가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넘어올 무렵 두 나라 사이에 가장 큰 스포츠 전쟁인 국가대항 크리켓 경기가 며칠 동안 열리고 있었는데.. 라호르에서 아침에 본 신문과 다음날 암리차르에서 본 신문의 헤드라인이 전혀 다른 톤이어서 한참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전 날까지는 식당에서 파키스탄 남자들과 파키스탄 크리켓 팀을 응원하다 다음날부터 인도 남자들 사이에서 인도 팀을 응원하고 있었으니까요.


페샤와르 대학교
파슈툰 족의 '국경도시', 페샤와르


파키스탄은 동남쪽으로 인도와 닿아 있지만 북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을 접하고 있습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 가는 오래된 길이 이어집니다. 그 끝에 이천 년 전 쿠샨 왕조의 수도였던 고도(古都) 페샤와르가 있지요. 무굴 왕국의 악바르 황제가 이름 붙인 이 도시는 그 이름 자체가 ‘국경도시’라는 뜻이라는군요. 페샤와르에도 파키스탄 경찰과 군대가 있지만 이 지역은 용맹한 용병으로 유명한 파슈툰 족(아프간 족과 같은 민족입니다) 자치주입니다. 제 눈에는 다 같아 보이는데 파슈툰 족과 파키스탄 사람들은 다른 민족이라더군요. 천년도 더 된 거대한 미로 같은 시장과 백 년이 넘은 대학과 호텔들이 있고 그 사이로 분홍색 화려한 장식의 버스들이 다닙니다.

 

이 '국경도시'에 일주일을 머무르고 있다가 어느 다른 여행자의 꼬임에 빠져 조금 위험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페샤와르에서 차로 조금만 더 서쪽,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가면 유명한 카이버 패스가 나옵니다. 멀지는 않은데 그 사이가 파슈툰 족 자치주와 FATA라고 불리는 연합 부족 자치주의 경계입니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있는 부족들의 연합체가 다스리는, 두 나라의 완충지대이면서 두 나라의 정부나 군경의 영향력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지요.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지역인 카이버 패스는 고대 비단길의 핵심 통로이기도 했고 지금도 오래되고 특이한 물건들이 거래된다는 시장이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아프가니스탄은 한국인 여행금지 국가여서 어차피 국경을 넘어가지는 못했겠지만 그래도 로컬 트럭을 타고 '국경' 시장의 분위기라도 보고 오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지요. 사실 카이버 마켓은 생각보다 크지도 않고 물건도 특별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페샤와르에서 카이버 마켓에 이르는 그 길과 주변의 황량함은.. 수천 년 국경도시의 쓸쓸함 그 자체였습니다. 길을 떠도는 영혼들을 부르는 소리 같다고 할까요.


칼라쉬 밸리 발란구루 신전
칼라쉬 밸리에서 아프가니스탄 국경 방향 산길
칼라시 밸리 산속마을 가족들
칼라쉬 밸리 룸부르 마을 세라 가족들
아프가니스탄 마을 아이들
치트랄 정육점 형제와 할아버지
치트랄 시내


페샤와르에서 북쪽으로 산을 여럿 넘어 열 시간 정도 올라가면 힌두쿠시 산맥 기슭의 상업도시 치트랄(Chitral)이 나옵니다. 여기서 다시 서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면 독특한 복장과 외모의 사람들이 사는 칼라쉬 밸리가 있습니다. 훈자 왕국과 더불어 유럽인과 비슷한 외모를 지녀 알렉산더 원정 때 건너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자주 얘기되는 곳이지요. 심지어는 칼라쉬 사람들은 무슬림도 아닙니다. 샤머니즘에 가까운 토착 신앙과 자신들의 문화를 아직까지 많이 가지고 있지요. 이 곳 역시 아프가니스탄과 접해있는 지역인데 워낙 깊은 산속 인 데다 경찰이고 군대고 계곡 입구 정도까지 초소를 만들어 놓았을 뿐, 실제 산속 사람들 마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머무르던 어느 날 민박집주인이 손으로 그려준 종이 한 장과 도시락이라고 싸준 짜파티 몇 장을 들고 더 깊은 산으로 트레킹을 갔습니다. 길 비슷한 곳과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고 집이 나타나고 가끔은 길을 잃으면 또 어디선가 아이들이 나타나서 길을 알려주는 식의 트레킹. 그러다가 산길 어디에서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서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사진을 보여주니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아프가니스탄 땅으로 넘어가지는 않은 듯한데 국경이 애매한 곳이니 그쪽 사람들이 산을 넘어오거나 난민 비슷하게 그 근처 산속에서 아예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먼 나라에서 온 저한테야 누가 칼라쉬 족이고 누가 아프간 족인지도 어차피 잘 몰랐겠지만.



파키스탄과 인도도 그렇지만 이렇게 '부족'이 단위가 되어 집단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에게.. 국경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잠깐 생각이 들었습니다. 훈자 왕국의 후예들 역시 종교도 조금 다르고 (수니나 시아가 아닌, 이스마일리 종파라지요) 사는 방식도 많이 달랐는데 칼라쉬 계곡의 사람들은 그냥 떼어 다른 지역에 갔다 놓아도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일 만큼 달라 보입니다. 물론, 모든 게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고 경제적 고립을 피하려 파키스탄의 대도시에 나가서 돈을 버는 칼라쉬 남자들이 많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그들 양식의 집에서 그들 자체의 옷을 입고 그들의 말을 하며 삽니다. 그들에겐 아마 파키스탄 사람들보다 아리안 족의 일파인 아프간 족이 자신들과 더 가깝게 보일지도 모르지요. 소위 '단일민족'인 한국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부족과 국가가 가진 또 다른 의미들이 있을 겁니다. 아, 국경과는 또 다른, 부족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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