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제외하고 국경을 육로로 넘을 기회가 가장 많은 곳 중엔 가까운 인도차이나 반도가 있습니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북쪽으로 거대한 중국까지 여러 나라가 맞닿아 있지요. 예전에는 사회주의 국가이거나 군사독재 정권이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로 외국인에게 국경이 막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미얀마가 풀리면서 거의 대부분 큰 무리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되었지요. 아, 모든 국경이 외국인에게 허용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만.
태국 서쪽, 미얀마와 맞닿은 국경도시 매솟의 미얀마 시장
미얀마 국경도시 미야와디로 나가는 매솟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골든 트라이앵글. 사진 아래편은 태국, 왼편은 미얀마, 오른편은 라오스
태국 북부 치앙칸과 메콩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 보이는 라오스 국경. 외국인에겐 닫혀 있다
인도차이나의 나라들은 서로 이웃이지만 천년을 두고 서로 그 땅의 패권을 두고 밀고 밀리면서 싸워온 나라들이지요. 버마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지금의 태국-라오스 지역의 왕국들, 그리고 그 아래 크메르인들의 나라와 북쪽에서 내려온 중국의 남쪽 민족들은 차례대로 그 땅을 나눠가지면서 아마 지금의 '국경'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사실 국경도시의 분위기가 제대로 나는 게 사실 인도차이나의 나라들이지요. 태국의 미얀마 국경도시인 메솟에는 거대한 미얀마 시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에 타나카를 칠한 미얀마인들입니다. 미얀마의 샨족 자치주의 국경 쪽에는 대부분 중국 한족들이 보이구요. 중국 위안화가 더 잘 통합니다 라오스에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보이 국경으로 가는 길에는 라오 민족만큼 베트남 사람들이 많지요. 태국과 라오스의 국경이 길게 이어지는 메콩강을 따라가다 보면 돌을 던지면 닿을 것 같은 가까운 강을 사이에 두고 라오스 아이들과 태국 아이들이 서로 벌거벗고 헤엄을 칩니다. 양쪽 아이들을 섞어 놓는다고 가려낼 수도 없을 것 같더군요. 마약 산지로 유명했던 골든 트라이앵글의 뷰포인트에서 내려다보면 미얀마, 태국, 라오스의 '국경'을 대충 섞여 건너 다니는 강물이 보입니다. 국경이란 게, 어쩌면 그런 거지요.
태국 농카이에서 라오스 비엔티엔으로 이어지는 우정의 다리
2007년 배로 왕복하던 시절의 태국 치앙콩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 2012년 우정의 다리 준공 후의 오피스
베트남 라오카이 - 중국 야오족 자치구 허커우 국경다리
라오스로 이어지는 중국 남부 모한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국경의 양편. 미얀마 타칠렉 - 태국 매싸이
강을 경계로 국경이 나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쪽 나라를 나가서 저쪽 나라로 들어가는 그 사이에 '다리'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태국 북쪽에서 미얀마를 만나는 매싸이(태국)-타칠렉(미얀마) 국경도 그렇고 태국 서쪽 매솟에서 미얀마 미야와디를 잇는 국경도 다리를 건너지요. 이런 다리들은 대부분 이름이 '우정의 다리'더군요. 한 나라의 수도로는 드물게 국경도시인 라오스 비엔티엔은 대통령궁 바로 앞을 흐르는 메콩강 너머가 태국 땅입니다. 아, 태국 농카이로 건너가는 우정의 다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긴 합니다만. 베트남 라오까이와 중국 야오족 자치구 허커우(河口) 국경 역시 홍강을 건너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강 아래 편에서 보이는 야경은 어느 건물이 베트남이고 어느 건물이 중국인지 건물에 붙어있는 네온의 글씨를 봐야 알 수 있지요. 태국 북부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이나 루앙남타로 넘어가는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넘는 국경인 치앙콩(태국) - 훼이싸이(라오스) 국경은 넓은 강폭 탓인지 양 강둑에 이미그레이션 오피스가 있고 짐을 들고 쪽배로 강을 건너는 곳이었는데 몇 년 전에 우정의 다리가 생겨서 이제는 배를 타고 건너진 않게 되었더군요. 강변에서 수속하고 쪽배를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는데요.
라오스와 이어지는 베트남 중부 산악지역의 보이 국경
산맥 가운데에 있는 국경들도 있습니다. 라오스 남쪽 도시 아따포(Attapeu) 동쪽에는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보이(BoY) 국경이 있는데 아따포에서 버스로 거의 세 시간이 걸립니다. 이 지역이 예전 베트남전 때 호치민 트레일로 불리던 험준한 산악지형이어서 그 안에 다른 도시가 별로 없지요. 산악지역 도로를 이리저리 한참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이미그레이션 오피스가 툭 하고 나타납니다. 여기서 베트남 동쪽의 다낭까지도 대여섯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높지는 않지만 험준한 산길을 계속 달려야 되거든요. 베트남은 북쪽에만 산이 있는 게 아니더군요. 중부의 라오스와의 국경지역은 대부분 울퉁불퉁합니다. 그래도 두 나라 사이에는 꽤 여러 국경이 있는 편인데 외국인에게 얼마나 열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방금 말한 보이 국경은 2007년부터 외국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했는데 라오스 빡세에 있던 제가 정말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 내용을 발견해서 시도를 했던 곳입니다. 실제로 보이 국경에서 제 여권을 보더니 공문을 확인해 보고서야 도장을 찍어 주더군요. 당신이 이 국경으로 넘어가는 첫 번째 한국인이라면서요.
라오스 비엔티엔과 태국 농카이, 우돈타니를 연결하는 국제버스
중국 윈난 성 시솽반나 징홍에서 라오스 루앙남타로 가는 국제버스
베트남 껀떠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는 로컬 버스
요즘은 중국과 인도차이나 나라들 사이엔 대부분 국제버스가 운행됩니다. 두 나라씩 넘어가는 경우는 잘 없지만 중국 남부 도시들에선 대부분 라오스나 베트남의 큰 도시들까지 운행을 하고 라오스에서는 캄보디아나 태국의 도시들로, 태국에서도 라오스나 캄보디아로 매일 로컬버스나 대형 여행사 버스들이 수도 없이 넘나듭니다. 그래서 길에서도 국제버스들을 자주 보게 되지요. 국제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고 해서 여권 컨트롤까지 대신해 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개인이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처리되는 효과는 있습니다. 짐 검사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넘어갈 때도 있구요. 어떨 때는 차장(?)이 여권을 죽 걷어가서 처리해 주기도 하고 한꺼번에 많은 외국인이 단체 비슷하게 몰려드니 옛날에 악명 높던 국경관리들의 '시간 끌면서 돈 뜯기' 같은 것도 요즘은 많지 않은 것 같더군요. 실제로 올해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들어갈 땐 로컬 국제버스를 탔다가 외국인이 달랑 세 명뿐이어서 조금 민폐를 끼치기도 했지요. 버스 차장이 이미그레이션의 도장 찍어주는 관리 앞에서 계속 얼쩡대고 있으니 인상을 쓰면서 바로 처리해 주더군요. 작년 미얀마 입국할 때도 비슷했구요. 그래도.. 공항에서 입국할 때와는 기분이 많이 다른 건 국경을 '걸어서' 건너는 그 기분 같은 것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국경검문소와 그 근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섞여있을 때 생기는 그 묘한 긴장감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주는 짜릿한 자극 같은 것 때문이겠지요.
태국 치앙콩, '국경'이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
아마 앞으로도 여러 번, 어떤 형태로든 국경을 넘어갈 일이 또 있겠지요. 거대한 유럽이 되고 나서 그 안에선 여권을 꺼낼 일도 없어지긴 했지만, 제가 느끼는 이 '국경'이란 게 꼭 그런 물리적인 건 아닐 테니까요. 여전히 유럽에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고, 그 선을 넘으면서 느끼게 되는 그 '다름'.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게 저 같은 여행자들이 또 길 위로 나서는 이유일 테니까요. 그래서, 제 국경 이야기는 계속될 겁니다. 기왕이면 오래 계속되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