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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mo Kang May 04. 2019

껀떠 Cần Thơ. 메콩 델타의 보석 2

사람 소리 가득한 골목, 헴(hẻm)

골목길을 좋아합니다. 정확히는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는 걸 좋아합니다. 북경의 후하이(后海)의 오래된 골목 후퉁(胡同)을 목적 없이 걷는 것도 좋았고 상해 특유의 거주형태인 룽(弄) 안쪽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도쿄 고엔지(高円寺)의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이나 네즈(根津)의 구불구불한 동네길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것도 정말 좋아합니다. 대부분의 오래된 도시의 '구시가'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의 담이나 벽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가끔은 막혀있기도 한 골목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리스본 알파마의 골목들은 그야말로 제 멋대로 이어져서 한참 걷다 보면 전혀 다른 곳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당황할 때도 생기지요.


Bến phà Xóm Chài


헴(hẻm)은 베트남에서 이런 골목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드엉(đường)이 '길'이라면 헴은 골목. 이 '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곳이 껀떠에 있습니다. 강변 호치민 동상 옆의 선착장 벤파쏨차이(Bến phà Xóm Chài)에서 낡은 페리를 타고 강을 건너면 hẻm의 번호가 쓰인 작은 골목들의 입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다닐 수 없고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다닐 만한 폭의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이어집니다. 작은 구멍가게들, 음식점도 가끔 보이지만 대부분 생활을 하는 집들이지요. 베트남은 더운 나라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많은 집들이 문을 닫지 않고 열어놓고 생활을 합니다. 밖에서 훤히 다 들여다 보이지요. 이웃들만이 아니라 저처럼 지나가는 행인에게도 밥을 먹고 누워 있고 TV를 보는 모습들이 다 노출됩니다. 늦은 밤이 되면 문을 닫기는 하는데 그 역시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아서 잠을 자는 매트리스나 해먹이 밖에서도 보입니다. TV들이 대부분 대형인데 각 집에서 나오는 TV 소리들이 섞입니다. 가끔 노래방 소리와 대화하는 사람들, 술 마시는 사람들, 아이들이 웃는 소리까지 헴은 온통 사람 사는 소리들이 가득합니다. 해먹에 부부가 누워 드라마를 보고 그 옆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집들 사이를 걷고 있자면.. 저 골목 끝에는 저를 기다리는 집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도 듭니다. 기왕이면 해가 질 시간 정도에 가면 더 좋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 구멍가게에서 만나 얘기하는 할머니들, 저녁 준비하는 사람들, 저녁을 함께 먹는 가족들을 볼 수 있거든요.


껀떠대학교   Trường Đại Học Cần Thơ


또 다른 분위기의 헴이 모여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껀떠대학교 앞 동네지요. 껀떠대학교 앞 큰 도로를 건너면 작은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길이 있습니다. 입구에는 '오빠'라는 이름의 한국식 고깃집도 있지요. 그 오른쪽 작은 골목 입구로 들어가면 껀떠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사는 헴들이 이어집니다. 언뜻 보면 교도소처럼 보이기도 하는, 긴 복도에 방들이 이어지는 형태의 집들이 많습니다. 방 하나에 몇 명씩 함께 사는 것 같고 가운데는 오토바이들이 주차되어 있고 빨래들이 줄에 가득합니다. 제가 이 골목들을 다닐 때는 늦은 오후였는데 이미 학교에서 돌아온 학생들이 당구장에 피시방에, 카페에 여기저기 모여 있더군요. 딱, 옛날 신촌 하숙집 골목 같은 분위기랄까요. '추리닝' 바람에 깔깔대며 쫓아다니는 학생들 사이를 걷다 보면 막다른 골목. 또 다른 길로 가도 막다른 골목. 이 쪽엔 특히 막다른 골목이 많더군요. 결국 지도를 켜고서야 큰길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옷가게와 음식점이 복잡하게 이어지는 대학가 특유의 분위기가 가득한 거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가득합니다. 노점 가게도 많아서 좁은 인도는 걷기가 힘들 정돕니다. 바게트 공장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맛이라도 볼 텐가? 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잠깐 이어진 눈빛 대화에 기분이 조금 따뜻해집니다. 껀떠, 베트남 서남쪽의 이 낮고 넓은 동네 골목까지 흘러들어와서 이런 마음들을 조금씩 나눠 받고 있었습니다.


Nguyễn Thị Minh Khai
안락 시장 Chợ An Lạc
시장 카페


탄안 시장 Chợ Tân An


껀떠대학교에서 강으로 이어진 대학가에서 강변을 따라 닌끼어우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은 오래된 시장들이 연달아 있습니다. 안락 시장(Chợ An Lạc)은 크진 않지만 전자제품류나 의류, 신발류 같은 전문상점들과 음식점들이 모여 있습니다. 껀떠 성당도 이 길에 있지요. 조금 더 올라가면 길이 갈라지면서 과일, 농산물, 수산물들을 파는 노점들이 가득한 큰 시장 탄안 시장(Chợ Tân An)이 나옵니다. 오래된 식당들, 오토바이를 타고 저녁 장을 보러 온 껀떠 시민들. 시장 카페, 철물 시장, 그 사이사이로 역시 좁은 골목들이 복잡하게 이어지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표정의 노인들 사이로 공을 차는 남자아이들과 그 뒤를 쫓아다니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뛰어다닙니다.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 안으로 사라지면 건너편 성당 안에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지요. 껀떠 강 다리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이 오래된 시장길은 서서히 하루를 닫기 시작할 겁니다. 헴. 작은 골목들을 끼고 마주 보는 껀떠 사람들의 집들은 다시 모여든 가족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들로 채워집니다. 물끄러미, 그 주변을 서성이는 여행자는.. 밤이 깊어 새벽을 생각할 시간이 될 때까지 골목을 나와 길과 길을 배회합니다. 껀떠에선 보름달이 되면 강물이 중력에 끌려 올라와 길 위로 올라온다고 하더군요. 붉은색 호텔 네온이 보름달에 끌려 올라온 강물에 비치네요. 집에서 멀리 와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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