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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Oct 23. 2019

MBC ‘드라마틱’ 유니버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소설 원작, 웹툰 원작, 영화 원작… 다양한 원작을 가진 드라마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콘텐츠 IP 사업이 활발해지는 추세 속에서 트랜스 미디어의 한계는 사라졌다.

웹툰은 드라마 시장에서 특히 사랑받는 소재다. 최근 웹툰을 즐겨 읽는 젊은 독자가 많아지면서 2~30대를 사로잡을 만한 트렌디한 작품이 다수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웹툰 원작 드라마만 생각해 보아도 <쌉니다, 천리마 마트>, <조선 로코-녹두전>,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까지 3편이나 된다.

원작을 ‘잘’ 리메이크하는 것은 리메이크 작품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드라마를 통해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와 원작을 본 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 모두를 사로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웹툰과 드라마는 기본 포맷도, 작품을 대하는 소비자의 태도도, 회차마다 제공하는 콘텐츠의 양도 매우 다르다. 그래서 웹툰의 캐릭터, 배경, 줄거리를 드라마의 문법에 맞게 다시 쓰는 것이 참 중요하다.

앞서 밝힌 대로 <어쩌다 발견한 하루> 역시 <어쩌다 발견한 7월>이라는 웹툰을 드라마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리메이크 과정에서 특히 독특한 지점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웹툰을 드라마로 바꾸면서도 만화 속에서 자아를 갖게 된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드라마 안에 다시 만화를 구현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2화 / 내가 만화 속 캐릭터라고?


다들 만화/웹툰을 어떻게 드라마로 탈바꿈시킬지 고민하고 있을 때,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이에 더해 드라마와 만화의 경계를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표현할지까지 고민해야 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벌써 8화까지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평가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두고 볼만한 드라마’다.



로맨틱 코미디라도 이건 좀...

작품에서 주인공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다. 주인공이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작품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갈등상황을 모두 주인공의 스타일대로 풀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단오(김혜윤 분)다. 맨 처음 자아를 가지는 캐릭터면서, 하루(로운 분)를 찾아내고, 운명을 바꾸기까지의 여정이 모두 단오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흡인력이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게 만든다면,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드라마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단오는 웹툰에서의 캐릭터가 거의 그대로 온 만큼, 행동의 개연성은 잘 짜여 있는 편이다. 하지만, 그만큼 잘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하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오 캐릭터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 글이 단오 역할의 김혜윤 배우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원래도 배우의 연기에 관대한 편이며, 오히려 이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김혜윤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스테이지에서의 단오와 섀도에서의 단오에 차이를 주는 부분에서.)

단오는 작가가 정해놓은 대로 움직이는 스테이지에서의 모습과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섀도에서의 모습이 매우 다른, 거의 이중인격과도 같은 캐릭터다. 이때 제작진은 단오가 자아를 갖게 된 캐릭터이며, 그래서 만화 속에 갇혔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매우 다르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만화 속의 단오는 심장병에 걸려 연약하고, 어린 시절부터 백경(이재욱 분)이라는 한 사람만 좋아하는 연약하고 차분한 캐릭터. 그래서 자아를 깨달았을 때의 단오는 거의 왈가닥에 가까울 정도로 활발하고 쾌활하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6화 스테이지(왼쪽)와 섀도(오른쪽)의 단오


물론, 이렇게 180°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두 가지 모습을 설정해두는 건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대부분의 분량에서 흥분한 톤의 목소리와, 큰 손짓, 발짓을 보여주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단오의 상황은 사실 처절하다. 어느 날 보니 자신이 만화 속 인물이고, 주인공도 아닌 엑스트라이며, 심지어는 작가가 자신을 심장병으로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단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반쯤 흥분한 상태를 유지한다. 단오의 과한 행동 뒤에 감정은 묻히고, 상황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결국 시청자도 단오의 문제가 무엇인지, 어디서 단오를 측은해하고, 단오의 변화를 응원해야 할지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단오야 과하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전형적인 학원 로맨스 순정만화의 배경이 되는, 재벌형 고등학교가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다. 최근에는 완전히 대단한 재벌만 다니는 학교보다는, <스카이캐슬>이나 <열여덟의 순간>처럼 중산층과 상류층 사이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아지는 추세라서 이런 재벌형 고등학교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오랜만에 보는데도 사실 재벌형 고등학교는 그 등장 자체만으로도 식상한 느낌이 있다. 그런데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스리고는 여기에 더해 이전 드라마의 어떤 재벌형 고등학교보다 화려함을 자랑한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1~2화


특히 내 눈에 띄었던 것은 옷이었다. 1~2화에서 한 시간 동안 단오는 무려 동복 2벌, 하복 3벌의 다른 교복을 입고 나오는데, 이것도 리본만 바꾸거나 하는 간단한 변화를 준 건 뺀 숫자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스리고는 딱히 정해진 규율이 없는지 주인공들뿐 아니라 거의 모든 출연진이 매회 교복이지만 교복 아닌 교복 같은 옷을 입고 나온다.

드라마 안의 세상이 만화이기 때문에, 언제 유입되는 시청자여도 이것이 만화 속 세상이라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 와닿게 하려고 일부러 더 자유롭게 입게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만화 속이라는 특수 상황에, 홀로 자아를 깨달은 특수한 주인공, 거기에 실제 같지 않은 환경까지 더해져 ‘과하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든다. 


    

오그리토그리 말고 달달구리

나는 ‘오글거리는’ 걸 원체 싫어하는 터라, 가끔 드라마를 보면서 질색할 때가 있다. 주인공이 공공장소에서 프러포즈하거나, 입에 담기도 싫을 정도로 닭살이 돋는 멘트를 내뱉을 때, 나는 자주 비웃거나 ‘얼씨구’를 외치며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만화에서는 그런 적이 별로 없다. 나의 ‘오글거림’의 허용치가 만화와 드라마에서 다른 까닭이라고 결론 내렸다. 같은 내용의 대사라도, 2D 속에서 내뱉는 것과 3D 속에서 내뱉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던 거다.

<어쩌다 발견한 7월> 4화, <어쩌다 발견한 하루> 2화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 오는 아쉬움은 이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 만화를 구현하다 보니, 만화와 드라마 사이에 있는 ‘오글거림’의 적정선을 자주 넘겼고, 그래서 과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오글거리는 건 싫어하지만, 사실 모든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조금씩 오글거린다. 조금의 판타지도 없이, 감동을 줄 수 있는 대사나 행동 하나 없이 진행되는 작품이 있을까, 실제 내 친구가 한다면 충분히 오글거릴 대사나 행동이라도 이야기 속에서 감동하고 곱씹게 만드는 게 이야기의 힘이다.          


줄타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움직이는 섀도와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스테이지를 분리해두고,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스토리처럼, 다소 유치하더라도 달달하게, 힘낼 때도 있지만 슬플 때도 있게, 다채로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벌써 채널을 돌리기에는 이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야 남자주인공 하루가 말을 하기 시작했고, 원작 웹툰의 스토리 외에 다른 스토리가 펼쳐질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만한 떡밥도 많았다. 점점 주인공들의 얘기가 풍성해지고, 단오와 달리 차분한 하루가 이야기의 두 축이 되면서 지금의 과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중화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가 단오의 이야기였다면, 앞으로는 단오와 하루의 이야기다. 단오와 하루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갈지, 이번 수요일에도 난 <어쩌다 발견한 하루>를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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