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 <사랑의 불시착>
<별에서 온 그대>, SBS, 2013.12.18.~2014.02.27., 연출: 장태유 / 극본: 박지은 / 제작사: HB엔터테인먼트, 최고 시청률 28.1%
<푸른 바다의 전설>, SBS, 2016.11.16.~2017.01.25., 연출: 진혁 / 극본: 박지은 / 제작사: 문화창고-스튜디오드래곤, 최고 시청률 21.0%
<사랑의 불시착>, tvN, 2019.12.14.~, 연출: 이정효 / 극본: 박지은 /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별에서 온 그대> 속 톱스타와 외계인의 사랑, <푸른 바다의 전설> 속 인어공주와 인간의 사랑.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을 그리기 좋아했던 박지은 작가가 또 한 번 예쁜 사랑 얘기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재벌 상속녀와 북한 장교의 사랑, 무려 분단을 뛰어넘은 사랑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그간 사랑받았던 박지은 작가의 로맨틱 코미디 공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품이다. 작가가 여러 흥행작을 써오며 터득한 노하우가 듬뿍 담긴 작품이라는 거다. 많은 사랑을 받은 전작처럼 이번 작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새로움은 보이지 않고, 전작의 결점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아쉬운 점은 바로 여성 주인공 캐릭터의 활용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여자 주인공 세리(손예진 분)는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 분)와 <푸른 바다의 전설>의 심청(전지현 분)과 같이 누구나 흠모하고 반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그만큼 백치미가 흐르고, 엉뚱하며 유치한 구석이 있다. 심청이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인어공주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고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온 송이나, 형제들보다 더 좋은 사업수완을 인정받고 후계자 자리를 꿰찬 세리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평소와 같은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떨어진 세리는 어이없고 막막한 와중에도 누가 차고 차였는지 짚고 넘어가야 하고, 손가락 하트를 남발하며, 북한식 머리 스타일이 촌스럽다며 불평한다. 그리고 이 모든 행동은 아름다움으로 용서되고 이해된다. 이런 캐릭터 설정은 예전부터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그래서 더 안타깝다. 왜 능력 있는 여자 주인공마저도 아름다움으로만 승부해야 하는 걸까.
박지은 작가의 작품에서 여자 주인공이 아름다운 바보가 되는 것은 그녀들이 놓인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 송이는 그저 민준 옆에 붙어있는 것밖에는 외계인인 민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푸른 바다의 전설>과 <사랑의 불시착>에서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심청과 세리는 무엇 하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애초 드라마의 축이 되는 설정에서부터 혼자 힘으로 무엇을 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여성 주인공들을 놓는 것이다.
북한에 떨어진 세리를 발견하고 도와준 것은 정혁이었다. 정혁은 세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에게 집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돈도 아낌없이 쓰게 하며 결국 마음까지 준다. 마음을 뺏긴 정혁은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녀를 돕는다. 하지만, 세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전화도 안 터지고, 돈도 없는 상황에서 세리는 그저 정혁이 방법을 구해오길 기다릴 뿐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성 주인공은 남성 주인공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줄 수 있는 게 아름다움과 사랑뿐인 상황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쉽게 도태된다.
박지은 작가는 악의적인 인물과 남자 주인공의 대립 구도를 즐겨 사용한다. 이 대립은 극에서 핵심 갈등을 담당하는데, 이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며, 보통 이 갈등의 희생양은 여자 주인공이 되고, 위험에 빠진 여자 주인공을 구하는 것은 남자 주인공의 몫이다.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재경(신성록 분)과 민준(김수현 분)이,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는 대영(성동일 분)과 준재(이민호 분)가 이 갈등의 축을 담당했다.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철강(오만석 분)과 정혁(현빈 분)의 대립에 후계자 자리를 놓고 벌이는 오빠 세준(최대훈 분)과 세형(박형수 분)의 대립까지 더해진다. 그리고 역시 이 갈등상황에서 여자 주인공 세리의 자리는 없다. 세리는 송이나 심청이 그랬던 것처럼 위기에 직면하는 약한 주인공일 뿐이다. 남성 악역들이 갈등을 조장하고, 남성 주인공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리저리 사태를 파악하는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철없고 아름답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저 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리는 남자 주인공을 위험에 빠뜨리는 민폐 캐릭터가 되고 만다.
한편으로 박지은 작가는 정말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여자주인공의 능력치를 낮춰놓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자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든다. <별에서 온 그대>와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 배우가 얼마나 빛났는지, 그리고 <사랑의 불시착>에서 손예진 배우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민폐녀'는 지금까지 수많은 한국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들었던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다. '민폐녀' 대신 '민폐남'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다. 드라마의 두 주인공이 스토리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그를 통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이 보고 싶을 뿐이다. 박지은 작가의 다음 작품은 그간의 공식을 벗어나는 새로운 작품이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