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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Mar 06. 2020

'작가' 연상호의 드라마

<방법>

<방법>, tvN, 2020.02.10.~, 연출: 김용완 / 극본: 연상호 / 기획: 스튜디오 드래곤 / 제작: 레진 스튜디오




이쯤 되면 연상호 감독은 정말 화수분처럼 스릴러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이야기꾼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아는 사람만 아는 애니메이션 감독에서 <부산행>을 통해 실사 영화를 섭렵하고, <얼굴>로 그래픽 노블에 도전하고, 최규석 작가와 함께 <지옥>으로 웹툰에 뛰어들더니 이제는 드라마 극본까지 쓰셨다. 아무리 예전부터 구상 중이던 이야기들을 이제 쏟아내는 것이라고 해도 대단한 열정과 속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여름 개봉 예정인 영화 <반도>와 캐스팅에 들어간 영화 <지옥>도 있다. 연상호 감독의 스릴러 세계는 이제 시작인가보다.

물론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는 어떤 형태이든 많은 사람들이 찾고 즐길 수 있겠지만, 특히 대중예술에서는 각각의 분야가 모두 '돈을 벌어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산업의 유행, 특성, 이야기 구조, 주 고객이 원하는 스토리텔링 등 맞춰야 할 것이 정말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연상호 감독/작가가 아주 대단해 보인다. (비록 모든 작품이 흥행하거나 사랑받지는 못할지라도) 계속 도전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해가는 모습이 뚝심 있게 느껴진다.

두 시간 짜리 이야기와 16시간 짜리 이야기는 분명히 다르다. 훨씬 많은 양의 스토리와 각각의 회에 시청자를 잡아둘 완급조절, 그리고 TV 시청자가 원하는 수준의 스토리텔링까지. <방법>으로 보는 연상호 작가의 드라마 데뷔전은 꽤 성공적이다.



"클릭 한 번만으로 증오심을 표출할 수 있는 시대"

<방법>의 기획 의도에 있던 표현이다. 연상호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 안에 담긴 작가 스스로의 고민과 통찰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부산행>이 그랬고, 지금 연재 중인 <지옥>이 그렇다. 작가는 작품 안에 작가가 끊임없이 질문하던 내용을 적재적소에 넣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클릭 한 번으로 증오심을 표출'한다는 이 표현은 굉장히 와 닿았다. SNS가 발달하면서 나는 나쁜 마음보다 좋은 마음에 집중했다. 쉬워지는 관심표현에 주목했고, 쉬워지는 관계 형성에 주목했다. 내 이런 생각처럼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의 가벼움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도 많았다. 그러나, <방법>은 그 이면의 나쁜 마음에 대해 다룬다. '어둠의 대나무 숲'이나 유명 연예인에게 악플을 다는 것처럼, 누군가를 증오하고 누군가가 안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표현하기 쉽게,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게 되었는지.

누군가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욕구, 누군가를 욕하고 싶은 욕구는 사실 자연적인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이나 말을 할 것이고, 대놓고 자랑스럽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일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고, "남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귀가 듣는다"고 했다. 예로부터 우리는 남의 행복에 기뻐할 수만은 없고, 남이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해왔다. 본능적으로.

작품은 이런 자연스러운 욕구를 건드린다.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처럼 쏟아낸 말에 누군가는 실제로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하며.

아직 8회차이기 때문에 앞으로 진종현(성동일 분) 회장이 포레스트라는 SNS에 올라온 저주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쁜 마음을, 그리고 한 번쯤 해봤을 행위를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풀어준 것에 놀랐다.


가장 한국적인 방식의 오컬트

<방법>은 진종현 회장의 몸에 씌인 '악귀'와 싸우는 소진(정지소 분)의 이야기. 결국 '오컬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컬트는 최근 한국에서 드라마/영화를 불문하고 정말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워낙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휩쓸듯 만들어졌기 때문에 후발 주자인 <방법>으로서는 다소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전작과의 차별점도 그렇고, 사람들이 아직도 오컬트 장르의 작품을 보고싶어 할지, 지겨워하지는 않을지도 그렇고. 처음 <검은 사제들>이 등장했을 때의 새로움이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은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이 우려를 말끔히 해소했다. 기존의 작품들은 '한국형'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왔지만 아무래도 '엑소시즘'을 다루다 보니 핵심적인 역할을 사제, 목사 등의 특수한 직업군, 그것도 서양에서 온 직업군들에게 그 역할을 주었다. 목사지만 불교 및 밀교와 연관지어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려 했던 <사바하>나, 귀신을 쫓는 주인공이 '영매'인 <빙의> 정도만 약간 결을 달리했을 뿐이다.

그러나 <방법>은 정공법으로 '무당'을 들고 나왔다. 예전부터 한국 시청자에게 가장 익숙한 무당과 굿, 그리고 예로부터 '저주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방법한다'라는 단어를 핵심 소재로 사용할 뿐 아니라 방법을 하기 위해서는 사주 보는 것처럼 한자 이름이 필요하다거나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일본에서 신물을 공수해와 그 신물로 굿을 펼치는 등의 작은 포인트까지. 여러 익숙하면서도 한 끗씩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방법>은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쉬운 지점

8회까지 진행된 지금, 그래도 아쉬운 지점은 있었다. 뭐, 흠 하나 없이 완벽한 작품을 찾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울 테니. 간략하게 몇 가지 짚어보려고 한다. (당연히 강한 스포일러가 있다.)

5화부터 소진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전개가 좀 늘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4화까지는 소진과 종현의 전사, 소진이 종현을 방법하고자 하는 이유, 진희(엄지원 분)를 영입하면서 첫 번째 방법의 희생자가 나오고, 종현의 물건을 구해 방법을 시도하는데 진경(조민수 분)이 신물을 구해와 역살을 날리는 것까지 아주 많은 내용이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펼쳐져 확 집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5화 이후 소진이 역살을 맞은 뒤 다시 회복하고, 진희와 성준(정문성 분)이 포레스트에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아내고, 양 진영이 서로의 정체를 알아가는 8화까지의 진행은 앞의 진행에 비하면 다소 느린 감이 있었다. 물론 16화 내내 휘몰하치는 전개일 수는 없겠지만 점점 볼수록 힘이 빠지고, 뒷내용이 많이 궁금해지지 않아서 아쉬움을 느낀 것 같다. 하지만, 진경이 죽고 9화부터는 다시 템포가 빨라질 것 같으니 기대의 여지는 있다.


스릴러 얼개가 느슨한 지점들도 아쉬웠다. 중간중간 사건이 끼워맞춰지는 지점에서 다소 편의적이거나 어거지스러운 느낌도 없지는 않다. 특히 압권이었던 부분은 8화에서 진경을 죽게 하기 위해 진경이 고용한 조선족 조폭들이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 것. 분장은 그렇게 세게 하시고는 애기동자 (천주봉, 이중옥 분) 하나를 처리를 못해 죽어나가고,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고 뜬금없이 진경이 탄 지하철에 못 탄다거나 하는 부분이 아쉬웠다. 주인공들의 능력은 영적 능력이지 수사가 아니니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지점이 있겠지만 이렇게 몰입을 깨는 부분은 안타깝다.


마지막으로는 '예쁘장한' '언니'인 진희다. 단순히 연상호 작가가 개인적으로 엄지원 배우의 외모를 좋아해서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식의 묘사가 다소 뜬금없고, 등장인물의 관계성을 약화시킨다고 봤다.

처음 소진이 진희를 자기 편으로 만드려는 것은 진희의 기자적 면모를 높게 사서이지, 언니가 필요해서가 아니다. '언니'라는 단어는 물론 일상에서 혈연관계가 아닐 때도 많이 쓰이긴 하지만 가족적인 느낌이 강하다. 소진이 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도 아니고, 진희가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둘은 갑자기 20여 살의 나이차를 뛰어넘고 '언니 동생' 관계를 형성한다. 동년배인 진희의 남편에게는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개그코드로 사용하는 것은 덤이다.

'예쁘장하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진희는 극 중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예쁘장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는 자신을 납치한 진경에게서도. 그리고 이것은 하도 많이 등장해 거의 진희를 설명하는 수식어처럼 되어버렸다. 물론 엄지원 배우는 아름답다. 그러나 '진희'에게 예쁘장함이 필요한가 하면 이건 생각해볼 문제다.

진희는 작품의 주연 중 유일하게 영적 능력이 없는 캐릭터다. 사실상 가장 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진희가 어필해야 할 것은 '기자'라는 직업과 '사명감'에 알맞은 추진력과 치밀함, 그리고 행동력일 것이다. 그래서 소진과 한 편을 형성하고 있는 진희가 소진을 충분히 도와 결국에는 진종현 회장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그러나 작품에서 진희는 뜬금없이 적을 물리치는 데 쓸데도 없는 친화력이나 아름다움을 어필하고 있다. 이런 식의 묘사는 작품 내에서 진희의 지위를 설정하는 데 오히려 독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작품 내에서 약자인 진희는 어쩔 수 없이 민폐 캐릭터가 될 소지가 많다. 영적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일반 시민이니 말이다. 따라서 진희가 처하는 상황이 '민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진희가 작품에서 어떤 특정한 역할을 당당히 수행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소진을 돕기 위해 기자일까지 접고 이 일에 몰두하고 있는 진희는 '언니'라고 불리며 어느새 소진의 보호자 역할만을 (사실 보호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힘이 없기 때문) 하고 있고, 그 기자적 능력은 이미 잊혀져 버렸다.

주연 등장인물 중 무려 세 명을 여자 캐릭터로 설정하고, 이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방법>의 매력이 더욱 컸는데 (보통 오컬트에는 신부가 필요하고, 신부는 남자이니) 강력한 악역 진경은 이제 죽었고, 남은 진희가 소비되는 캐릭터이다 보니 더욱 아쉬운 것 같다.



이제 <방법>은 2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꾸준히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는데, 포레스트의 비밀과 소진과 종현의 연결고리 등 아직 풀려야 할 내용이 많이 남아있다. 끝까지 뚝심을 잃지 않고 나가 유종의 미를 거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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