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이 Mar 13. 2020

사람은 무엇으로 사랑하는가

<나 홀로 그대>

<나 홀로 그대>, 넷플릭스, 2020.02.07., 연출: 이상엽 / 극본: 류용재, 김환채, 최성준 /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아무리 이제 평범한 주인공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동안의 비인간 주인공들은 최소한 '생물'이었다. 악마, 귀신, 천사, 선녀, 요괴, 도깨비, 신, 저승사자, 귀신 등등. 아무리 다양한 주인공들이 나와도 말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든, 그 대상이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존재이긴 했다는 거다. 그러나 이런 비인간들을 넘어 이제는 생물도 아닌, 심지어 보이고 들리기는 하나 만져지지 않는 존재까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AI다.

무생물인 비인간과의 사랑은 어쩌면 악마, 신, 초인 등의 판타지적 비인간보다 더 현실적이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천사가 보이거나, 요괴를 발견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사람처럼 보이고 움직이는 로봇을 만나거나 AI 홀로그램을 만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비인간과의 로맨스 SF물은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질문은 드라마를 가치 있게 만든다. 비인간을 사랑하게 된 상황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고민과 생각으로 시청자를 공감하게 하고, 또 이런 사랑이 정말 가능할지, 혹은 가능하지 않을지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봇, AI와의 공존을 의미 있게 다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작품들도 있다.

그런데 <나 홀로 그대>는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작품이 다룰 수 있는 가치 있는 고민들은 다 피해간 모양새기 때문이다.



인간이어야만 사랑할 수 있는가

작품 속 소연(고성희 분)의 로맨스 행보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연은 원래 강우 선배(이기찬 분)를 좋아했지만, 안면실인증이라는 병때문에 자신감이 없었고, 그래서 강우에게 고백하지 못했다. 홀로(윤현민 분)는 그런 소연을 강우와 잘 될 수 있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소연은 홀로를 사랑하게 된다.

안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홀로를 인간인 소연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을 거다. 더구나 그 안경을 가진 사람도 당시에는 베타 테스트 진행 중인 소연뿐이었으니 말이다.

홀로는 인간이 아닌데 내가 좋아해도 되는 걸까? 이 마음이 진짜일까? 너무 오랫동안 외로운 나머지 혼란스러운 건 아닐까? 난데없이 인공지능 안경을 얻게 된 것도 모자라,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소연에게 이런 질문은 자연히 들게 될 마음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소연은 홀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유일한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유람(강승현 분)이나 엄마(이정은 분)에게는 떳떳이 밝히지 못하면서도 본인 스스로 그런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미 사랑하게 된 홀로와 보통의 연인처럼 손잡고, 포옹하고, 키스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할 뿐이다. 이런 소연의 모습은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소연의 고민은 실제 사람 같은 로봇이 등장해서 거기 홀로를 접속시키면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는 문제다. 그럼, 로봇과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 이 문제도 상당히 어려운데 말이다.

보통이 되기 위한 욕구, 보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절망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마음이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동성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외국인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하물며는 나이차이가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수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 사람을 계속 사랑해도 될지, 이 사람과 '연인'이 되어도 될 지.

그런데 소연은 타인에게 쉽게 인정받을 수 없고, 자신과 함께 늙어가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신처럼 숨쉬지도 않는 이 존재를 너무나도 쉽게 사랑한다.



'연인'이 될 수 있는가

네이버 영화에서 영화 <그녀>의 명대사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대사는 "641"이다. 이 대사는 극 중 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분)가 "나 말고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는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었다.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서버를 공유하며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고, 641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테오도르의 실망스런 반응에 사만다는 다른 이들과의 사랑이 당신과의 사랑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딥러닝을 하는 AI의 특징을 담은 장면이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과 이를 바탕으로 형성하는 '관계'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워낙 인공지능과의 사랑을 다룬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참고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 홀로 그대>에도 비슷한 지점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아예 베타 테스트인 홀로의 서버와 새로 출시되는 상업용 홀로의 서버를 분리시킨다. 소연이 사랑하는 홀로가 소연만의 홀로로 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소연만의 인공지능 홀로는 소연 또한 자신만의 소연이 되기는 원하지 않았다. 난도(윤현민 분)가 소연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둘 사이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홀로의 이런 행동은 두 가지로 해석해볼 수 있다. 첫째는 AI인 홀로에게는 사랑한다는 것이 '독점'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바로 '연인'이라는 1:1의 관계로 연결되지 않는 홀로는, 소연을 사랑하지만, 그녀와 1:1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는 역시 홀로는 AI이기 때문에 최초 프로그래밍 당시 개발자인 난도의 어머니가 제1원칙으로 제시한 '난도의 행복'이라는 규칙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한 것이다. 소연과 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보다 내재된 원칙이 우선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진실이든, 둘 다이든, 둘 다 아니든, 이런 홀로의 태도는 소연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소연에게 사랑은 홀로가 하는 그것과는 다를 것이고, 그래서 소연이 홀로와 맺고자 하는 관계 또한 이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AI'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AI가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AI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소연이 홀로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되더라도, 홀로에게 '연인'관계란 무엇인지 알려준다거나, 난도가 홀로에게 소연을 포기하겠다고 말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주며 소연과 홀로가 어떻게 인간과 AI의 '연인'관계를 만들어나갈 지, 혹은 실패할 지 그 고민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작품은 이 문제에 대해 소연도 아닌 난도가 잠깐 고민하다가, 소연이 홀로를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에 소연 옆에 있었던 것은 인공지능 홀로가 아니라 홀로 행세를 한 난도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냥 쉽게 사랑의 대상을 바꿔버린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쉬운 대상으로.



갑분 빅브라더

복합장르가 대세이다 보니 <나 홀로 그대>도 SF 로맨틱 코미디 물이지만, 후반부에는 로맨스보다는 SF를 활용한 '스릴러'적 느낌이 강하게 구성되었다. 하지만 후반부의 스릴러 서사는 로맨스인 전반부 서사보다도 아쉬움이 많았다.

후반부는 AI 인공지능 안경을 개인 CCTV처럼 민간인 사찰 용도로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이 정보를 국정원에 비밀리에 제공하려는 백회장을 저지하는 내용이었다. 백회장을 잡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홀로와 난도, 난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 소연이 안면실인증에 걸린 이유까지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 모두 이때 함께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전에 쌓아두었던 의문이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거나, 혹은 스릴러의 추적 플롯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거나 해야 하는데 후반부 서사는 둘 다 실패했다는 생각이 든다.

난도의 어머니나 소연의 안면실인증은 복선 없이 너무나 급작스럽게 등장한 데다 뻔하고 작위적이었다. 그 수많은 프로그래밍을 두고, 곧 시판을 앞뒀다면서 안경 하나를 두고 쫓고 쫓기는 과정 또한 작위적이었고, 난도가 쫓기는 과정 또한 비상식적이었다.

후반부 서사는 홀로로 시작된 로맨스 서사를 급하게 난도를 통해 종결짓고 쫓기듯 넘어온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복합 장르에서 서사를 혼용하지 않고 단계별로 나눠 쓰는 건 별로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작품이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두 서사 중 하나는 반드시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아쉬움이 있기는 했지만 기분좋고 귀여운 로코의 장점은 가지고 있던 로맨스 서사를 죽이고, 개연성 없는 스릴러 서사를 들고 나오면서 후반부는 재미가 확 반감되어 버렸다.

물론 '빅브라더'에 대한 걱정 또한 기술이 발전하는 사회에서 AI를 두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걱정거리다. 하지만, <나 홀로 그대>라는 굉장히 로맨스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부터, 주요 등장인물이 정치나 수사가 아니라 그저 개발자, 안경회사 직원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사찰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정도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차라리 후반부에서도 소연과 난도, 그리고 홀로의 관계를 더욱 그 감정선에 맞춰 촘촘하게 짜주었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I라는 한국에서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소재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자본과 기술, 그리고 주연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까지 뒷받침 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런 스토리의 아쉬움이 더 강하게 남았다. 넷플릭스에서는 타 방송사에서 보여줄 수 없는, 넷플릭스에서만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보여주기 위해 시도한다던데, 다음에는 좀 더 새롭고 깊은 고민이 담긴 작품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가' 연상호의 드라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