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 일꾼의 말: 일잘러의 태도를 만들어준 말들
제6의 일꾼(6년간 작은 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냥 그 친구는 목숨을 걸고 버텼던 거지. 나는 그런 말을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사람들이 제일 무책임하더라. 이것도 못 버티면 다른 데서도 아무 것도 못 한다는 말. '이 일도' 못 버티고 나가서 '저 일은' 훨씬 잘 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나?"
그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한 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의 계열사에 입사했다. 업무능력이 뛰어난 덕에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계열사에서 지주사로 발령을 받고,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했다.
이쯤되면 조금 뻔뻔해져도 되련만, 겸손하고 배려하는 태도까지 갖춰 업계 일꾼들 사이에서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꼽혔다. 말 그대로 탄탄대로였다.
회사가 그에게 큰 규모의 행사 기획을 맡긴 일도 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행사 장소는 참가자들로 가득 찼고, 행사에 대한 호평이 잇따라 신문에 게재됐다. 행사가 끝난지 두 주쯤 지났을까, 또 다시 그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초고속 승진이나 글로벌 기업으로의 이직 소식을 기대하며 켠 모바일메신저에는 예상 밖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삶을 져버렸다고.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가 있었던 탄탄대로의 도착지는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일꾼의 죽음은 끝내지 못한 숙제가 돼 마음 한 켠에 남았다.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면 가끔 그 숙제를 펼쳐 답을 찾아왔다. 정답인지, 아니면 오답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숙제를 풀며 지금가지 찾은 가장 그럴듯한 답은 함께 이 일을 겪었던 동료(여섯번째 일꾼)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냥 그 친구는 목숨을 걸고 버텼던 거지. 버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깐. 이것만 버티면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깐.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사람들이 제일 무책임하더라. 이것도 못 버티면 다른 데서도 아무 것도 못 한다는 말. '이 일도' 못 버티고 나가서 '저 일은' 훨씬 잘 하는 일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나?"
당시 그와 같은 업계에서 근무했던 제6의 일꾼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 행사장에서 '역시 기대 이상'이라고 칭찬했던 게 그에게 더 큰 부담이 된 것 같다고 후회했다.
일을 하다 보면 개구리가 된다. 우물이 아니라 회사 안에 갇힌.
회사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에 매달리다 보면 세상은 점점 좁아져 회사가 된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업무 결과가 잘 안 나온다면'이란 가정이 내 세상을 뒤집어엎을 절체절명의 기준이 된다. 이 일 하나 못해도, 업무 결과 좀 안 나와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갈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도 개구리였을지 모른다. 회사가 세상이니 도망치는 방법이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버틸 필요가 없다. 그 우물 안에서 나오면 더 큰 세상을 마주할 수 있으니 그만둬도 괜찮다.
최근 한 후배가 회사 스트레스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만두고 싶지만 주위에 그를 말리는 일꾼들이 많아 스스로도 답이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선배, 저 어쩌죠'라고 묻는 후배에게 '힘들겠지만 조금만 버텨'라는 말 대신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이라고 답해줬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이것도 못 버티고 나가면 안 된다", "도망치는 건 나약한 일꾼이다", "미래를 위해 더 버텨야 한다" 등등. 답은 스스로만 알고 있기에 주위의 말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