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일주일에 80시간에서 100시간 일해?
짧고 굵게, 사실이다. "100 hours a week"이라는 말은 취업 준비를 할 때부터 많이 들었고 각오해왔던 (그리고 사회 초년생의 의지로 굉장히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사항이었기 때문에 처음 일을 시작하고 3주 정도 저녁 10시 전 퇴근을 할 때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불안하기까지 했다.
뱅킹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하는 말은, "집에 갈 수 있을 때 가라"다. 미국은 보통 여름에 졸업하기 때문에 6월에서 7월쯤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데, 한번 바빠지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일단 1년 차 때는 (특히 처음 3개월) 모든 게 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회사 내부의 리소스*를 잘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당히 비효율적인 데다, 2년/3년 차 애널리스트들이 맡고 싶어 하지 않는 어카운트를 떠맡기 때문에 일이 굉장히 많다.
여기서 어카운트란 클라이언트, 즉 우리에게 일을 의뢰하는 기업들을 말하는데, 보통 한 어카운트(클라이언트) 당 한 명의 MD가 있지만, 뱅크 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카운트나, 여러 회사들을 인수해서 성장한 큰 기업들에는 더 많은 MD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사공이 많아져 배가 산으로 가게 되어있다. 보통 피치북들이 30-40 버전을 거치고 나서 완성된다면, 이런 어카운트는 거의 100차례의 수정을 거쳐 완성되는 PPT들이 다반사인 데다 MD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서열** 정치싸움에 내 등이 터지지 않도록 지켜야 하는데 그것도 참 머리가 아픈 일이다.
MD A가 시켜서 3일 밤낮으로 일한 페이지들을 MD B가 완전히 바꾸고 MD A는 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페이지들을 만들 때가 많은데 이런 뫼뷔우스의 띠에 갇히면 200시간 일하고 ~10-15페이지밖에 만들지 못하는 경우나, 미팅 10초 전까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버전 FFF***로 수정하는 일이 생긴다.
*기본 리서치를 해주는 "Business Information Services", 로고 작업이나 회사 양식에 맞게 PPT를 수정해주는 Graphics team, 프린트팀 등 뱅킹을 서포트해주는 내부 부서들이 있다
**뱅크에 얼마나 수익을 가져오는지, 팀에서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등에 따라 MD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다
***PPT나 엑셀을 수정할 때마다 'version up'을 하고, 마지막 클라이언트 미팅에 쓰이는 자료엔 vF(version Final)를 붙인다. 하지만 미팅 시간이 임박했을 때 급하게 시니어로부터 수정 요청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때는 시간이 없으니 계속 F를 더한다. F가 많을수록 주니어들이 고생했겠구나 측은해진다
그런데 하루 종일 앉아서 뭐해?
일주일 일하는 시간을 말해주면 사람들이 대부분 도대체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서 뭘 하는 건지, 진짜 계속 일을 하는지 물어본다. 물론 밥도 못 먹고 숨도 못 쉴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하루 종일 일이 이어지는 날도 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기사를 읽거나 리서치 자료를 조금 보다 퇴근하는 날도 있다.
보통 하루의 2~4시간 정도는 미팅이나 콜, 즉 캐치업(catch-up)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이 캐치업을 통해서 받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미팅 PPT를 만드는 일을 한다. 애널리스트일 때는 대부분 엑셀을 많이 다루고 AVP 레벨부터는 프로젝트의 틀을 잡고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PPT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몇백 시간 일해서 60페이지 자료를 만들었는데 MD가 미팅 하루 전에 처음으로 피드백을 주면서 50페이지를 삭제하고 20페이지를 새로 만들게 할 때도 있으니 항상 마음을 비우고 일하려고 노력한다.
일은 크게 피치북(pitch book)과 라이브딜(live deal)로 나누어지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뱅크가 지속적으로 피치북을 통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클라이언트가 그 일을 진행하고 싶다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수료나 업무 범위 등을 결정한다) 뱅크를 고용하면서 라이브딜이 된다. 보통 라이브딜을 할 때가 더 바쁘고, 클라이언트가 무슨 자료를 언제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일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피치북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이 성사될 확률이 더 낮아서 딱히 이력에 도움이 된다거나 클라이언트 경험을 쌓는 게 아니기 때문에 뱅커들은 대부분 라이브딜을 선호한다.
개인적으로 뱅킹을 하면서 스케줄적으로 제일 힘들다고 생각되는 건 아마 단 하루도 예상하기가 힘들고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우리가 많이 하는 말 중에 "you are always on someone else's schedule"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내가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항상 다른 상사들의 스케줄에 맞춰서 일해야 한다는 거다. 그 일이 개인적인 일인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아이들의 축구경기를 보러 가야 한다거나 주말에 가족여행이 있으면 전화가 올 때까지 5분 대기조로 밤까지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가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서 저녁 6시쯤 퇴근 준비를 하려는데 시니어 호출로 미팅룸에 들어가서 일을 받고 결국 새벽까지 일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아직도 당일날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컨펌하기가 어렵다. 물론 이제 4년 조금 넘게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저녁을 먹고 다시 와서 일한다거나 급한일이 아니라면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경우도 많지만 언제 어디서 급한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상 가지고 있다.
그래도 많은 일들이 그렇듯, 매년 경험이 쌓여갈수록 각 상사들의 일하는 스타일이나 선호하는 자료 레이아웃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늘면서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MD가 되어서도 종종 주말에 출근하거나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있으니, 9am - 5pm 직업을 꿈꾼다면 금융안에서 뱅킹이 아닌 다른 분야를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