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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12. 2019

월가 투자은행: 취업 바늘구멍

이 정도일 줄이야

나름 2학년 때부터 학기 중에도, 방학에도 이름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해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어렴풋이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회사에 몇천 명의 학생들이 지원하고 100명 미만의 신입사원이 뽑히는 절망적인 통계가 나를 맞이했고, 지원을 시작한 후로는 인터뷰를 따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엎친데 덮친 격, 시민권이 없던 나는 비자를 주는 회사에 들어가야 했고, 그러려면 월가에서 잘 알려져있는 "Bulge Bracket*" 은행들에 지원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앞서 말했듯이 명문대에서도 수요가 굉장히 높은 직업이라 우리 학교에는 취업설명회를 오는 곳도 별로 없었고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이야기해볼 수 있는 선배들도 1-2명 정도에 불과했다.

*Bulge Bracket: 세계적인 은행들로 큰 규모의 기업, 정부등을 상대하는 약 9개의 투자은행들

이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비자 체류기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서의 취업 준비는 미국과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준비하려니 너무 막막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불타던 나는 점점 잠이 줄었고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내 인생 최대의 네트워킹을 펼치던 중,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회사로 오지 않는 Bulge Bracket 은행들의 웹사이트에 직접 지원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렇게 직접 지원을하면 실제도 인사부가 직접 이력서를 보지않고 컴퓨터의 스크리닝에서 거의 대부분 탈락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인터뷰가 들어왔다. 평범한 인터뷰가 아니라 자그마치 3일 동안 하루 종일 HR팀이 우리를 둘러싸고 관찰일지(?)를 써 내려갔는데, 주식분석부터, 가상 기업합병 케이스 스터디, 기업 리서치 등을 하며 매일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며 경쟁해야 했고, 마지막 날에는 하루 종일 인터뷰까지 하는 엄청난 캠프식 인터뷰를 뚫고 드디어 첫 번째 합격 통보를 받았다.


역시 처음이 제일 어렵다더니, 그 후로는 몇몇 다른 미국계 은행에서도 합격 및 인터뷰 제안을 받았지만, 처음 오퍼를 받은 회사가 마음에 들었던 터라 인터뷰 스케줄을 위해 전화한 당시 랭킹이 우리 회사보다 높았던 투자은행들의 HR에게도 "더 이상 이 회사와 인터뷰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해버리고 내심 후련해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는 또 부서를 결정하는 치열한 과정*이 있었지만 여자 저차 다행히 내가 제일가고 싶었던 TMT (Technology, Media & Telecom) 부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각 팀마다 업무량이나 분위기(group culture)가 다르고 많은 사람들이 더 소비자와 연결되어있는 (쉽게 말해 우리가 대부분 아는 회사들) 클라이언트들과 일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항상 더 수요가 많은 그룹들이 있다. 


이제 어려운 부분은 다 끝났어, 일만 열심히 하면 되겠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시작한 나에게 슈트를 입고 높은 힐을 신고 미팅을 다니는 멋진 투자은행 뱅커의 환상이 사라지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부서 신입사원들 중 여자는 나를 포함해 두 명뿐이었고, 그 친구마저도 몇 달 후 그만두어서 결국 나 혼자 남았다. 게다가 첫 두 달은 거의 매주 한 명꼴로 선배들이 그만두는 탓에 일이 점점 늘어났고 '하면서 배우는 거야!'라는 말로 서로를 위로하며 동기들 모두 점점 회사가 집보다 편한 곳이 되었다.


아버지가 입사하셨을 때 첫날 회사를 보시면서 '언제까지 안 잘리고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셨다던데 (30년 넘게 잘 다니고 계신다)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다. 중간 직책(Vice President)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백인 남성들 뿐이었고 (뱅킹의 기본적인 구조와 각 계급의 담당업무는 다음 글에서 나누겠다) 미식축구 이야기, 주말에 골프를 치러가는 이야기 속에 어떻게 껴야 하나, 안 그래도 일이 많은데 농구까지 공부해야 하나 고민 하면서 기업들의 분기별 보고서와 엑셀을 펼쳐놓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뉴욕 월가의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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