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의 마지막인 2019년이 저물어 간다. 단순 인기나 판매량 등으로만 2010년대 가요계를 리뷰하려면 음원 강자들과 아이돌 음악들로만 수렴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한국 가요계의 양상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으므로 시대와 상황에 맞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각 키워드 별로 정리하려 한다.
세 번째는 ‘텔레비전 예능 음원’이다. “슈퍼스타 K”(2009)와 “나는 가수다”(2011)의 등장 이후, 신인 가수를 뽑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 기성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 또한 활성화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2010년대 후반이 드라마 삽입곡 강세였다면, 2010년대 초반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음원 차트의 주요 테마였다. 또한 “무한도전”의 경우 정기적/비정기적 가요제를 개최하여 음원 차트에서 큰 힘을 발휘했는데, 점차 가요제의 규모와 질이 향상된데다 무한도전 팬층과 음원 차트 주요 소비자의 연령대가 일치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시즌제로 운영되지만, 시리즈 전체를 포괄하는 대표곡을 선곡하려 노력했다. 생략 혹은 누락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작사 · 작곡: 이영훈 / 원곡: 이문세 / 편곡: 김지수
“슈퍼스타K2 Top 11 Part.4”(2010.10.26.)
2010년 방영된 “슈퍼스타 K2”에서 최종 3위를 차지한 ‘장재인’이 ‘이문세 특집’ 때 선보인 곡으로, 이문세 정규 5집(1988)의 수록곡을 리메이크했다. 특유의 복고풍 취향 덕인지 곡 해석이 굉장히 뛰어났으며, 특유의 음색과 탁월한 감정 조절 능력을 바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개인 사정으로 출연 당시의 화제성을 유지할 만큼 활동하진 못했지만, 지금도 조용하지만 꾸준히 활동 중이다. 2019년에 드러난 일련의 사태로 인해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전체가 의심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슈퍼스타 K2의 엄연한 결실.
한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외에도 <하늘을 달리다>(허각), <빗속에서>(존박), <본능적으로>(강승윤), <세월이 가면>(박보람) 등 다수의 경연곡이 사랑받았다. 원곡의 인기를 상회한 <본능적으로>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곡의 인지도가 상당한 편이었음에도, 원곡을 크게 해치지 않은 선에서 새로운 색채를 입혔기에 큰 부담이나 거부감 없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결승곡 <언제나>의 공정성 문제 등 여러 논란이 있긴 했으나, “슈스케” 시리즈의 초기 흥행을 이끌었음에는 틀림없다.
작사 · 작곡: 윤항기 / 원곡: 윤복희 / 편곡: 지그재그노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3-2 네티즌 추천곡”(2011.05.22.)
좋든 싫든 “나는 가수다”는 2010년대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기성 가수를 경연 붙인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재도전/번복 논란, 출연자 태도 및 불화 논란, 고음 지상주의 문제 등 방영 내내 여러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나 가창 · 편곡 · 연주 · 믹싱 · 리마스터 등 ‘질 좋은 음악’을 위한 최고의 환경을 조성한 점, 자취를 감출 뻔했던 가수들이 공중파에 출연한 점, 선곡과 청중평가단 편성 등에서 세대 간 분배를 고려한 점, 그리고 어디서도 보기 힘든 조합을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인기’만큼은 제대로 끌었다. 혹자는 당시 양산되던 아이돌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나는 가수다”의 초기 공신들을 꼽으라면 ‘박정현’ · ‘김범수’ · ‘와이비 YB’ · ‘김경호’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나가수를 이끌고 지탱했으며, 다시 말해 이들의 활약은 한 곡으로 설명할 수 없다. 반면 ‘단일 음원의 임팩트’ 면에서는 '임재범'의 <여러분>을 빼놓을 수 없다. 가창자 입장에서 생의 굴곡 없이는 도전조차 힘들고 수용자에게도 진입 장벽이 다소 높은 곡이었음에도, 임재범의 굴곡진 삶이 단일 무대에 녹아들며 청중평가단과 시청자들의 엄청난 호평을 이끌어냈다. 프로그램 최초로 기립 박수를 받고, 모든 것을 쏟아 낸 임재범이 자진 하차하며 이 곡은 전설로 남았다. 특히 원곡자들(작곡가 윤항기 · 가수 윤복희 남매)이 이례적인 호평을 남겨 화제가 되었으며, 이 곡의 여운은 꽤 오래 이어졌다.
당시의 경연이 손에 꼽을 만큼 치열했다는 점에서 <여러분>의 위상은 더욱 높아진다. 해당 경연은 개편 기준 1라운드 2차 경연이었는데, 당시 경쟁곡들은 <늪>(김범수) · <아름다운 강산>(비엠케이) · <나와 같다면>(김연우) · <런 데빌 런>(와이비) · <사랑이야>(이소라) · <소나기>(박정현)이었다. 참고로 이 경연과 합산된 1차 경연에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박정현) · <넘버원>(이소라) · <빈 잔>(임재범) · <미련>(김연우) · <그대 내게 다시>(비엠케이) · <그대의 향기>(김범수) · <마법의 성>(와이비)가 연주된 상태였다. 이 모든 곡들의 화력과 인기를 뚫어내고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곡이 <여러분>이었다.
작사: 유재석, 이적 / 작곡: 이적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07.02.)
“무한도전”은 TV 예능 음악 현상의 핵심이었다. 정식 가요제만 5회, 연말 콘서트는 7회 개최하며 음원 차트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이는 갈수록 높아지는 음악적 퀄리티와 막강한 팬덤의 화력 증명이라는 장점도 있었지만, 기존 음악인들에게 반발을 사기도 했다. 특히 중소 규모의 인디 뮤지션들에게는 가뜩이나 차트 진입 기회가 적은데, 그마저도 박탈해버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그 인디 뮤지션들이 아닌, 중견급 아이돌 기획사들이었다는 점은 해당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렸다. 한편 가요제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상당히 질 좋은 음악을 공급했기에 좋은 음악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는 커져가는 가요제 규모와 이에 반비례하는 예능 특유의 재미의 중간쯤에 선 특집이었다. 콘서트 형식으로 규모를 키운 첫 가요제이면서도, ‘정재형’ · ‘바다’ · ‘이적’ · ‘싸이’ 등의 출연자들로 인해 예능적인 재미도 아주 반감되지는 않았다. 이 가요제에서는 <순정마초>,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바람났어>, <죽을래 사귈래>, <정주나요>, <압구정 날라리>, <흔들어주세요>가 공연됐다.
방송 이후 <바람났어>가 가장 흥행했고, <순정마초>가 음악적으로 가장 크게 조명받았으며, <정주나요>의 말랑함이 재평가받았다. 그 중 가장 크고 긴 여운을 남긴 곡은 공연이 끝난 뒤 텅빈 무대에서 부른 <말하는 대로>였다. 피아노 하나 위에서 유재석과 이적이 번갈아 노래를 부르는데,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여내 마음을 울린다는 호평을 받았다. 자전적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당시의 유재석의 성과를 더욱 드높이는 동시에 잔잔한 희망과 여운을 남겨 호평받았다. 가요제 공식 출전곡은 아니지만 사실상 해당 가요제의 테마곡으로 기억되며, 이후의 “무도 가요제”에서 <말하는 대로>의 감동을 뛰어넘은 곡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작사 · 작곡: 신중현 / 원곡: 신중현과 엽전들 / 편곡: 장준호
“슈퍼스타K3 Top 11 Part.3”(2011.10.17.)
경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여러 법칙 혹은 규칙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장 막강한 출연자는 무대와 평가에서 고전하며, 우승하지 못한다.’였다. ‘울랄라세션’은 이에 해당할 수 있는 참가자였다. 각 멤버의 특색이 뚜렷한데다 그 밸런스가 좋아 보컬 그룹으로서 시너지가 뛰어났고, 장르 수용 폭이 넓은데다, 안무를 이용한 무대까지도 완성도가 높았다. 아마추어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다른 출연자들보다 기본값이 높아졌고, 수준 높은 활약을 보이더라도 눈에 띄지 않았다. ‘너무 잘해서’ 우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이런 흐름은 <미인>(신중현과 엽전들) 무대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슈스케”에 참가하지 못한 5번째 멤버 ‘군조’를 위해 <미인>을 선곡하고, 리더 ‘임윤택’이 위암 투병 중임에도 밝은 태도 임하는 등의 스토리 텔링이 더해져 울랄라세션은 조금 더 이목을 끌게 되었다. 바로 그 무대에서 울랄라세션은 본인들의 장점을 모두 발휘하며 극찬을 이끌어내고, 비시청층에게도 화제가 되었다. 긍정적이고 밝은 캐릭터, 뛰어난 성량과 멤버들의 시너지, 활기 넘치는 안무 등이 조화되어 3연속 슈퍼세이브*를 완성했다. 해당 회차(10회)의 시청률이 해당 시즌 최고를 기록했고, 울랄라세션은 이후 <서쪽하늘>이라는 레전드 무대를 하나 더 만들며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 슈퍼세이브: 심사위원 최고점자는 문자 투표에 상관없이 탈락이 면제되는 규칙
작사 · 작곡: 정지찬 / 원곡: BMK / 편곡: 홍소진, 권태은
“보이스 코리아 Part 2”(2012.04.16.)
“보이스 코리아”는 특별했다. ‘보는 음악’과 ‘아이돌 산업’의 최전선에 섰던 것도,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춘추전국시대를 이끈 것도 엠넷이었다. 그 프로그램들 사이에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과 ‘루키즘’이라는 자극적인 셈법이 존재했고, 이는 대중 사이에서 암묵적인 대전제가 되어 갔다. 이 두 가지 흐름을 타지 않으려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탄생했는데, 그 또한 엠넷에서 방영되었다. 그래서 “보이스 코리아”는 특별했다. (사실 참가자 간 불화를 유도하는 악마의 편집은 없었지만, 무대 시작과 동시에 프로그램을 끝내는 식의 낚시성 편집은 있었다.)
다만 시청자들은 이미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었고, 악마의 편집 없는 “보이스 코리아”는 심심하다는 평을 들어야 했다. 소위 ‘레전드’라 불릴 무대 없이 평이하게 흐르는 전개 또한 아쉬웠다. 일반 텔레비전으로 보기에도 무대 환경이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 않았고, 이는 곧 거대한 규모의 “슈스케”나 최고의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던 “나가수” 등과 비교되었다.
그럼에도 ‘유성은’의 <비나리>(심수봉), ‘이소정’과 ‘나들이’의 <코뿔소>(한영애), ‘우혜미’의 <필승>(서태지와 아이들) 등 볼만한 무대들이 종종 나왔다. 그중 최고는 ‘손승연’의 <물들어>(비엠케이) 무대였다. 그간 “보코”에 드물던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하는 동시에 비시청층의 화제성 또한 끌어들였으며, 단박에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그리고 <비와 당신의 이야기>(부활) 무대를 통해 사실상 경쟁을 마무리했다. 이때 당시 한국 나이로 20세였다.
작사: 최은하 / 작곡: 윤일상 / 원곡: 김조한
“K팝 스타 시즌 4 ‘사랑에 빠지고 싶다’”(2014.12.07.)
“K팝 스타” 시리즈 심사위원으로 ‘유희열’이 합류한 것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이전 심사위원이었던 ‘보아’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존 심사위원들과는 시각과 지향점이 다른 사람이 합류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성격이 바뀔 수 있었다. 종전까지는 ‘케이팝’으로 묶이던 한국 아이돌 음악에 집중되었다면, 유희열 합류 시기인 시즌 3 이후부터는 각종 뮤지션과 싱어송라이터들 또한 부담 없이 “케이팝 스타”에 지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권진아’ · ‘샘김’ · ‘한희준’ · ‘이수정’ · ‘우예린’ · ‘안예은’ · ‘김윤희’ 등이 주목받으며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다.
‘정승환’의 등장은 “K팝 스타 시즌 4”, 유희열, 그리고 정승환 본인에게도 호재였다. 주입식 · 도제식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특유의 주관과 시크한 태도를 드러냈던 정승환은 <사랑에 빠지고 싶다>(김조한)를 통해 프로 수준의 감수성과 호소력을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삶의 이유나 고독에 대해 고민하며 읊조리는 무거운 곡을 19세의 오디션 참가자가 온전히 자기 감성으로 소화하는 광경은 경이로웠다. 당시의 심사평은 아래와 같다.
“이렇게 노래하는 가수가 없기 때문에 가요계에 나와야 한다.” (박진영)
“그냥 가수다. 제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발라드 남자 가수 특집을 한다면, 정승환 군을 맨 마지막 주자로 해서 스페셜 무대를 꾸밀 것 같다.” (유희열)
열기는 그대로 실시간 차트로 이어졌다. 2분 남짓으로 짧게 편곡된 이 곡은 오디션 참여곡으로는 이례적으로 음원 발매 직후 실시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각종 라디오에서 신청이 쏟아졌다. 월간 기준으로도 2개월 동안은 20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총 6개월 간 100위권을 유지(멜론 기준)했다. 이 시즌에 정승환은 최종 2위를 차지했고,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에 합류하여 가수로 데뷔해 <너였다면> · <이 바보야> · <눈사람> · <우주선> · <십이월 이십오일의 고백> 등을 발표했다. 시즌 5에서 유희열의 단독 권한으로 ‘안예은’을 다음 라운드로 진출시킨 장면과 함께, “케이팝스타” 6개 시즌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작사 · 작곡: 박병규 / 원곡: 최용준 / 편곡: 필터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Part 3”(2015.11.04.)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은 단기간 사랑받고 어느 순간 잊힌 가수들을 다시 불러오는 프로그램이다. 섭외의 방향성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어쨌든 초기에는 ‘원 히트 원더’에 가까운 가수들을 다시 불러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상 “무한도전 – 토토가 특집”이 불러 온 복고 열풍의 연장선에 선 프로그램이었고, 따라서 ‘이지 izi’의 보컬 ‘오진성’의 충격적인 등장 전까지 10~30대에게 ‘아주 잘’ 어필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이른바 ‘슈가송’을 리메이크하는 ‘역주행송’ 또한 ‘세대 공감’의 취지에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음원 성적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었다. 대부분 원곡의 압승으로 마무리되는 와중에도 지금까지 가장 사랑받은 역주행송은 ‘멜로망스’ 버전의 <유 You>일 것이다. 원곡과 전혀 다른 매력을 살린 동시에, 시대적 조류인 ‘감성적 어필’에 성공하며 음원 차트에서 흥행했다. ‘세대 공감’의 기치를 가장 잘 구현한 곡이다.
그럼에도 ‘로꼬’와 ‘크러쉬’ 버전의 <아마도 그건>을 선곡한 이유는 공연 당시 “슈가맨”의 인지도 차이 때문이다. <유>는 이미 “슈가맨”의 인기와 인지도가 높아진 시즌 2에 공연되었기에 흥행에 유리했다. 반면 <아마도 그건>은 시즌 1의 3회에 공연되었다. 5회에 ‘오진성’이 출연하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그건>은 크러쉬 · 로꼬 · 필터의 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유>가 대형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가장 성공적인 세대 공감을 구현했다면, <아마도 그건>은 중소 프로그램이 이뤄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 프로그램의 인지도 차가 심한 상황에서도 발매 직후 주간 차트 20주 연속 100위권(가온 기준)에 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오랫동안 흥행했으며, 사실상 <유>의 미리보기와 같았다.
작사 · 작곡: 신해철 / 원곡: 넥스트 / 편곡: 팻뮤직(송민수 · 임현기 · 김혜원)
“복면가왕 62회”(2016.06.05.)
2015년 4월에 정규 편성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초기 흥행을 이끈 것은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로 출연한 ‘김연우’였다. 처음으로 4회 연속 우승하며 장기 집권에 성공했고, 체형 · 연령대 · 턱선 · 점의 위치 등을 분석해가며 가왕의 정체를 분석하는 현상이 새롭게 떠올랐다. 이후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 ‘여전사 캣츠걸’ 등의 장기 가왕을 이어받은 이가 바로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었다. ‘음악대장’의 인기는 ‘클레오파트라’를 뛰어 넘을 정도였고, 단숨에 일종의 신드롬으로 떠올랐다. 주특기인 록/메탈을 고르지 않더라도 꾸준히 활약하며 입지를 공고히했고, 결국 가왕전 역대 최다 연승 기록(9연승)을 보유하게 됐다.
<라젠카, 세이브 어스>는 신드롬의 시작이자 정점이었다. 주류 장르에서 밀려난 메탈 장르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부르고, 경이적인 고음을 소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임팩트를 선보였다. ‘하현우’ 특유의 날카로운 음색과 단단한 발성이 곡에 흐르는 비장미를 잘 표현했으며, 가면을 썼음에도 곡의 감정선을 뛰어나게 표현하는 등 음악대장의 강점이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음악대장의 장기집권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애초에 ‘편견 배제/타파’라는 초기 지향과 달리 프로그램이 오래되어 일종의 패턴과 편견이 생겨버렸고, 이로 인해 신선도가 떨어지고 공정성 논란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음악대장과 같은 임팩트를 선사하는 가수가 다시 나오지 못하자, 단발성 출연자들이 화제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음악대장 이후 4연승을 기록한 장기 가왕만 9명이지만, 음악대장만큼의 임팩트를 선사한 가왕은 없었다.
작사: 비와이, 사이먼 도미닉 / 작곡 · 편곡: 그레이
“쇼미더머니 5 Episode 3”(2016.07.02.)
이전까지 “쇼미더머니”는 아이돌 래퍼와 그에 대한 견제 구도, 정치 논란, 악마의 편집 등으로 화제 몰이를 해왔다. 그래서 인기도 있었지만, 논란과 피로도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리네어’의 득세와 맞물려 트랩 장르와 머니 스웨거가 힙합의 주류인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비와이'는 다른 노선을 탔다. 현실 친구 ‘씨잼’과의 건전한 경쟁 의식과 독실한 신앙심 등으로 견실한 이미지를 쌓아 올려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샀다. 무엇보다 그의 랩 자체가 탄탄하고 잘 들렸다. 날카로운 목소리, 라임 배치, 발음, 독특한 그루브 등 장점과 매력이 많았다. 이 모든 강점을 집약한 <포에버>를 첫 솔로 무대로 내놓음으로써 “쇼미더머니 시즌 5”는 그 자리에서 종결되었다. 말 그대로 ‘신들린’ 듯한 래핑에 청중과 시청자들이 빨려들었고, 시즌 3의 ‘바비’를 압도하는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포에버>와 대결을 펼친 무대가 탄탄한 프로듀싱과 기민한 기획이 돋보인 <호랑나비>(보이비)였음을 감안하면, 수많은 기획과 연출을 랩 하나로 압도하는 이른바 ‘새로운 랩 스타’의 시작을 알린 셈이었다.
작사: 김하온, 식케이 / 작곡: 그루비룸, 식케이 / 편곡: 그루비룸
“고등래퍼2 Final”(2018.04.14.)
청소년 대상의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고등래퍼”는 문제가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아직 서툴지만 자기만의 본질적이고 진실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칭찬을 받기도 했으나, 출연자들의 자질/인성 논란과 화제 유도를 위해 위의 장점을 외면하고 대립각 조명에만 집중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프로그램 외적으로는 ‘힙합 유망주 발굴’의 긍정적 측면보다는 ‘인맥 힙합과 방송사의 안일한 편집’ 등의 부정적 측면이 더욱 두드러졌다. 특히 시즌 1의 우승자는 물론 화제의 중심이었던 인물들이 범죄 및 인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나아가 힙합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
이 흐름은 시즌 2에서 뒤바뀌었다. 독특하고 통통 튀는 시각의 ‘김하온’과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이병재(빈첸)’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묘한 시너지를 선보였고, ‘조원우’ · ‘이로한’ · ‘오담률(친칠라)’ 등 전체적으로 실력이 향상되고 뒷말이 없는 출연자들이 주목받으며 전작보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대중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북>(이로한 X 오담률), <바코드>(김하온 X 이병재) 등의 곡들이 높은 음원 성적을 보였다.
<붕붕>은 시리즈의 화려한 피날레인 동시에 김하온의 지향점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이다. 나이다운 신선함과 패기, 나이답지 않은 사유와 뚜렷한 철학을 바탕으로 ‘식상하지 않은 긍정적 메시지’를 완성했다. 독과 증오 없이도 이토록 건전하고 경쾌할 수 있음을, 가사의 내용 충실도와 청각적 만족도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음을, 김하온은 무려 경연 프로그램 결승에서 라이브 무대로 선보였다. 여행하되 방랑하지 않고, 떠다니되 표류하지 않는 김하온의 이미지를 잘 구현한 ‘그루비룸’의 프로듀싱 능력 또한 발군이었다.
작사: 야인초(김봉철) / 작곡: 한복남 / 원곡: 손인호 / 편곡: 임현기
“미스트롯 Death Match II”(2019.04.05.)
“내일은 미스트롯”의 우승자 ‘송가인’의 등장은 중·장년층에게는 등장 자체가 희망적이다. 판소리 전공했던 이력을 기반으로 ‘정통 트로트’에 특화된 창법을 구사하며, <용두산 엘레지> ·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오랫동안 텔레비전에서 찾기 힘들던 곡들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세미 트로트 기반의 출연자들 사이에서 정통 트로트를 내세운 점, 선정적 의상과 몸놀림을 지양한 점 등이 가산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복스런 인상’ 또한 한몫 하지 않았을까.) 잊힌 옛 명곡들을 훌륭히 소화해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분명 큰 성과이며, 이를 누구보다 ‘잘’한 송가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자격을 증명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정통 트로트 수요층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거의 첫 사례라고 봐도 될 정도로 ‘송가인’은 일종의 ‘신드롬’으로 부상했다.
반면 생각할 점도 많다. 인기에 힘입어 전국 투어를 돌고 미국 공연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송가인만의 히트곡은 없다. <찍어>는 ‘우승 포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을 뿐 누가 불러도 거기서 거기인 값싼 공산품이며, <엄마 아리랑>을 비롯한 정규 1집의 곡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미디어는 여전히 ‘송가인 현상’에 집중할 뿐 ‘송가인 음악’에는 관심이 없다. 팬층 또한 신곡들보다는 옛 명곡에 더 마음이 가는 모양새다. 송가인 팬들의 주장만큼 ‘최고의 가수’인지 의문 부호가 따르는 이유이다.
음악계 전체로 넓혀보자. ‘송가인’과 ‘유산슬’ 같은 일종의 열풍에 대해서는 어마어마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냉정히 말해 이는 ‘정통 트로트 잘 부르는 젊은 가수’와 ‘대단한 예능인’에 한정되어 있다. 이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트로트계의 곤궁한 입장, 그리고 이들 정도가 아니면 트로트에는 관심이 없는 현 대중음악 향유층의 냉정한 현실이 더 잘 드러난다. <한잔해>의 ‘선 병맛 후 중독’ 현상, <아모르 파티>와 <천태만상> 등의 참신한 시도들은 ‘트로트 문법’을 지켜 성공한 곡들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송가인 팬층은 세미 트로트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했던 중장년층들이 중심이다. 따라서 송가인의 성취가 ‘정통 트로트 잘 부르는 젊은 가수’에 그친다면 언제든 대체자에게 밀릴 수 있다. ‘포켓돌 스튜디오’와 ‘TV 조선’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한 이미지 소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어쨌거나 “내일은 미스트롯”과 ‘송가인’은 음악 예능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작사: 소연 / 작곡 · 편곡: 소연, 빅싼초
“퀸덤 Final 컴백 싱글”(2019.10.25.)
1990년대 최초의 ‘아이돌’ 가수들이 탄생한 이후, 아이돌의 이미지는 회사의 시스템과 결부되었고 자연히 ‘수동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 ‘양산형 발라드’ 논란 이전에 2010년대 초반에는 ‘양산형 아이돌’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018년 데뷔 이후 ‘(여자)아이들’이 주목받은 요인은 2010년대 중반 몰아친 청순·발랄 컨셉을 탈피한 독보적 정체성이었다. 반면 “컴백전쟁 퀸덤”에서는 팀의 자체 프로듀싱과 멤버들의 시너지가 주목받았다. ‘자작돌’이 많아진 시점에서 멤버들이 작사·작곡에 이름을 올리는 건 흔한 일이자 단순한 정보이다. 그러나 ‘아이돌판 나는 가수다’의 특성을 띠는 “퀸덤”에서 소연은 정보가 아닌 과정을 선보였다. 구성원의 특성 · 각 미션에의 효과적인 전략 · 청중의 기대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기대를 상회하는 무대를 구현하는 과정까지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나머지 멤버들 또한 소연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의건을 개진하고, 합의된 지향을 뛰어나게 소화함으로서 단단한 팀워크를 선보였다.
‘마마무’의 입지 증명, ‘오마이걸’의 재발견 사이에서도 <라이언 Lion> 음원과 무대가 묻히지 않은 것은 분명 (여자)아이들의 저력이다. 그저 ‘아기 맹수’ 수준일 줄 알았던 일부의 시선을 뚫고 대관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