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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Nov 22. 2019

육아 우울증에서 빠져나오는 중입니다

소홀해진 브런치와 다시 시작한 수학 공부

브런치에 글을 쓰기는커녕, 부지런한 작가님들이 꼬박꼬박 올려주는 글조차 읽지 못한 채로 쌓여만가고 있다.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흘러간다.


둘째의 수유 텀이 제법 길어질 즈음부터 혼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말에 몰아서 장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보니 주중에 하루나 이틀쯤은 마트에 다녀와야 했다.

그렇지 않은 날은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더운 여름 동안 집 안에만 갇혀 생활해야 했던 첫째는 가을이 되자 매일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더위가 가신 탓인지 체력 또한 급격하게 좋아져 웬만해선 지치지도 않는다. 놀이터에 한 번 나가면 좀처럼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고, 겨우 설득해서 데리고 들어오면 좁은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뛰고 구르고 점프하고.

어쩌다 비가 와서 밖에 못 나가는 날에는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는다. 저녁이 되면 온갖 종류의 장난감들이 골고루 섞여서 집안 구석구석을 굴러다닌다. 퍼즐은 왜 맞추질 않고 조각조각을 사방에 흩뿌리고 다니는지, 벌써 몇 조각이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요즘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부쩍 말도 많이 늘어서 이제는 나와 남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나름의 논리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토를 달기 일수다. 어질러진 장난감을 정리할 때도, 밖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힐 때도 한두 번 말해서는 절대 듣지 않는다. 좋은 말로 여러 번 타이르다가 그래도 안되면 놀이터 안 간다고 협박도 하고, 장난 좀 그만 치라고 윽박도 지르고, 내 컨디션이 영 별로 인 날은 "그만 좀 해!"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잦아졌다.


둘째의 이유식까지 시작하는 바람에 더 바빠졌다. 6개월이 되어 하루 한 번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먹이기 시작한 게 벌써 한 달반이 지났다. 7개월인 지금은 하루 두 번 꽤 많은 양을 이유식으로 먹는다. 제철 채소와 월령에 맞는 단백질로 레시피를 짜고 재료를 사서 조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너무 배가 고프거나 졸리지 않은 타이밍에 잘 맞춰서 먹이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낮잠은 또 왜 이리 짧게 자는지. 30분씩 두세 번 자는 게 전부이다 보니 재워놓고 돌아서서 잠깐 설거지하고 오면 벌써 개운한 얼굴로 해맑게 웃고 있다.    


이러다 보니 낮 시간에는 도무지 여유가 없다. 외출도 잦아지다 보니 예전보다 체력 소모도 커져, 저녁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겨우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나면 아무것도 할 기력이 남아 있지 않다. 가벼운 인터넷 기사 정도는 읽을 수 있지만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기 위해서는 집중력이 필요하고, 집중해서 읽고 싶기에 자꾸 나중으로 미뤄두게 된다.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다. 체력과 집중력의 문제도 있지만, 글을 쓸수록 내가 가진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점점 글을 쓰고자 하는 의욕도, 글을 쓰는 재미도 사그라들게 되었다. 콘텐츠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지금은 그저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가능한 수준에서 꾸준히 써 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은 하면서도 좀처럼 글쓰기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그동안 미뤄두었던 공부를 최근에 다시 시작했기에 더더욱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힘이 좀 남아있는 날에는 수학책을 붙들고 씨름해야 했다.

이대로 애들 키우며 나이만 먹다가는 나중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여유가 생겼을 때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언제쯤 다시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직을 하든 안 하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수학을, 그중에서도 통계를 전공했지만,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듯이 건성으로 공부한 탓에 빈 껍데기 같은 학위만 덩그러니 받아 들고 간신히 졸업을 했고, 전공과 크게 상관없는 회사에서 몇 년 근무하다 그만둔 뒤로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후회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체기처럼 늘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학위는, 언젠가는 메꾸어야 하는 내 인생의 빈칸이 되어 투명하지만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통계 검정이라는 일종의 자격증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전공도 살릴 겸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한 지 7년, 수학을 손에서 놓은 지도 7년이다.

수학이라는 게 그렇다. 벽돌을 쌓아 올려 건물을 짓듯, 논리로 다져진 견고한 구조 위에 개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건물의 모양을 갖춘 상태에서 새로운 개념과 논리를 더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한번 손을 놓아버리면 그동안 머릿속에서 공들여 쌓아 올린 건물이 차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7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릿속은, 각종 수학 개념들이,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 위에 굴러다니는 벽돌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상태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논리적 구조가 없다 보니 거의 백지상태나 다를 바가 없다.


잔해 속을 더듬어 부서진 벽돌조각을 찾아 붙이는 작업이 쉽지 않다.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예전 같지 않은 두뇌와 집중력으로 공부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교과서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보면 읽는 순간에는 분명 알 것 같은데 돌아서면 개념이나 수식이 생각이 안 난다. 게다가 통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미적분조차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미칠 지경이다. x제곱을 미분하면 2x인 건 기억이 나는데, 지수함수, 로그함수, 삼각함수의 미분은 어떻게 하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열심히 책을 뒤져보지만 왜 그렇게 되는지 이해하는데 한참이 걸리고, 하나를 파면 또 다른 개념에 줄줄이 달려 올라온다. 멱급수가 뭐였지? 합성함수의 미분은 어떻게 하는 거드라? 역함수는?

내가 지금 수학 공부를 하는 건지 고구마를 캐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낮에는 두 아이와 씨름하고, 밤에는 기억나지 않는 수학 개념들과 씨름하며 몇 주를 보내고 나니 나는 완전히 방전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극심한 육아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아침에 눈 뜬 순간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엄마, 아침 먹자!'라며 재촉하는 첫째가 귀찮아 죽을 것 같았고, 우는 모습마저도 그저 귀엽기만 하던 둘째의 울음소리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첫째에게 시리얼과 빵과 우유를 꺼내 덜어주고, 둘째에게 분유를 먹인 다음에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첫째가 뭔가를 요구할 때마다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질렀고, 울며 보채는 둘째를 안아주거나 이유식을 먹이면서도 계속 인상을 쓰고 있었다. 심한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물 한 모금 삼키지 않았고, 첫째의 점심도 챙겨주지 않아 첫째는 빵이나 시리얼 과자 젤리 등으로 하루 종일 허기를 달래야 했다.     

두 아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 벅차고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반복해서 찾아왔다.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내가 죽고 나면 이 아이들은 어떡하지? 밥도 안 챙겨주고 소리 지르고 짜증만 내는 엄마는 없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루 종일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편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퇴근 후에 나와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았지만, 나는 그런 남편이 내 고통에 너무 무감각한 듯 보여 더욱더 극단적인 말과 행동으로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 가까이를 앓고 나서야 겨우 다시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렵고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수학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브런치의 글도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로 2주 가까운 시간이 흐른 듯하다. 다시 제로가 되었다.

오랜만에 쓰고 있는 이 글도 매끄럽게 써지지 않아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완성도와 상관없이 어쨌든 발행해 볼 생각이다. 그래야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 우울증이 반복되지 않도록 생활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지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남편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만,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저 이번처럼 지독한 증세만은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어느 정도의 짜증과 분노와 우울한 기분의 무게를 견디며, 아이들이 클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육아라는 것이 싫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한 순간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기적이고 자기 감정인 우선이 나라는 인간이, 육아를 통해 인내를 배우고 내가 아닌 타인을 우선순위에 두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육아 우울증도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 이렇게 한 번씩 고통을 겪을 때마다 나 자신이 조금은 성장해 있었으면, 조금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나마 다시 쌓아 올린 벽돌들이 다시 무너져 내리기 전에, 손 놓고 있는 수학 공부를 다시 할 수 있는 집중력도 하루빨리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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