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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ul 21. 2024

나의 첫 시 읽기

월트 휘트먼의 '바다로 돌아가는 사랑'을 읽고(아티초크)

나는 이제껏 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때 국어시간에 문학과 시를 '배우기'는 했지만 문학과 시를 '배운다'는 건 어떤 걸까. 주제는 무엇이고, 화자는 누구이며, 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냐는 등 그것은 소위 '정답'을 찾는 과정일 뿐이었다. 문학에 답이 있는가. 나는 답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에 공감을 할 수 없었다. 맞고 틀리고로 가르는 문학수업에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다. 지금에야 내가 문학과 책읽기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당시에는 국어시간이 고통이었다.


독일어를 배우면서 독일어를 통해 나는 문학의 묘미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독일어로 책을 읽음을 통해서이기도 하지만, 독일 방송에서 문학을 가지고 토론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서 사람이 문학을 얼마나 좋아할 수 있는가, 사람에게 문학이 어떠한 존재일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특히 독일어권 사람들에게 '시'는 특별했다. 우리나라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이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만큼 독일어권 사람들에게 시는 특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설에 대해서뿐아니라 '시'에 대해서도 내가 뭔가 세상에 존재하는 특별한 아름다움 한가지를 놓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나 아쉬움 같은 것이 늘 존재했다. 그래서 아티초크 출판사에서 월트 휘트먼 시집 '바다로 돌아가는 사랑'의 서평단을 모집한다고 했을때 냉큼 신청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대감과 한편으로 두려움을 가진채로 말이다.


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게 있을까? 내가 무엇을 느껴야할 지 모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있는 그래도의 시를 천천히 음미하고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그래도 와닿는 게 없으면 그만인 것이고, 뭔가 느꼈다면 그시가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인 게다. 


우선 책 날개의 시인에 대한 소개를 읽어본다. 맥락없는 읽기도 좋지만 워낙 유명하다고 하니 궁금증이 일었다. 월트 휘트먼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두세기 전에 태어난 사람으로 보인다. 편집자나 인쇄기술자등 출판계통에서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만 읽어봤을 때는 자연속에서 자연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살아간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다. 


추천사를 보면 쟁쟁한 작가나 학자들이 그의 시에 애정을 표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두사람 있다. 바로 '토마스 만'과 'E.M. 포스터'이다. 토마스만은 좋아하고 싶은 작가이고 E.M. 포스터는 영화화된 그의 책에 흥미를 가졌었다. 어쨌든 추천사를 보니 그가 어느시대에 많이 읽혔는지 대략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를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시에서도 주제는 다른 문학장르에서처럼 '인간사'일거라 생각한다. 누구는 사랑을 노래하고 인간의 고통을 노래하기도 하고 꿈이나 희망, 자유를 노래하기도 할 것이다.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는 우선 '나'라는 존재가 강하게 드러난다. 



나는 자아를, 평범한 개인을 노래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적이라는 말, 집단이라는 말을 표명한다
 20쪽, '자아를 노래한다 One's-Self I sing'



그러나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나'는 사사로운 욕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자유롭고, 강하고, 단단하면서도 열린 존재로서의 나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와 동등해보인다. 



나 찬미하노라 나 자신을, 노래하노라 나 자신을.
그대도 내가 하는 대로 하라,
나를 이루는 모든 원자, 그대 또한 이루고 있으니.
22쪽,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그의 시에서는 나의 존재와 다른 존재와의 어우러짐을 노래한다. 



나의 영혼은 맑고 향기로우며, 나의 영혼이 아닌 모든 것 또한 향기롭구나. 
26쪽,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나는 나 자신의 특질을, 그리고 건강하고 깨끗한 사람의 모든 신체기관과 특질을 환영한다. 


한 치라도, 그 한 치의 입자 하나라도 더러운 것은 없으며, 그 어느 것 하나까지 덜함이 없이 모두 똑같이 두루 알게 되리라.  
27쪽,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김춘수의 '꽃'을 보면 다른 대상을 내가 명명함으로 인해 비로소 존재한다 부분이 나온다. 어떻게보면 인간의 오만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월트 휘트먼은 대상을 그 반대이다. 나와 다른 대상이 동등하다고 여기며 대상을 정의하려하지 않는다. 




풀이 뭐예요? 어린아이가 풀을 한 움큼 뜯어 와 물었다.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풀이 무언지 그 아이가 모르듯 나도 모르는데.
31쪽,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그는 보통의 사람들이 가진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거의 두세기 전의 사람인데, 여성과 남성에 대해서도 아이나 어른에 대해서도 곤궁한자나 부자에 대해서도 편견이나 차별적 시선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나가는 낯선 이여! 내가 얼마나 갈망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바라보는지 그대는 모른다
그대는 내가 찾던 남자일 것이다, 아니면 내가 찾던 여자일지도(꿈처럼 떠오르는 생각이다)
57쪽,지나가는 낯선 이여 To a stranger



읽다보니 마치 나에게 쓴듯한, 후대에 그의 시를 읽을 사람들에게 쓴 시가 보인다.



생기에 가득찬 지금 옹골지고 눈에 보이는 나, 나는 마흔 살, 미국은 여든세 살,
지금부터 백 년 뒤 혹은 수백 년 뒤에 올 사람에게,
이 글들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대에게, 그대를 찾아 바친다오,
이제 옹골지고 눈에 보이는 그대가 나를 찾아 나의 시를 실현하고,
내가 함께 있어 그대의 동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는 이여,
옹골지고 눈에 보이는 이, 그대여,
나는 그대와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오.
(하여 내가 지금 그대와 함께 있지 않다고 너무 확신하지 마오.

- 67쪽, 생기에 가득찬 지금 Full of LIfe Now



그의 시를 읽으면서 역동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에 대해 감사함을 갖게 된다. 하루하루 숨쉬고 생각하며 내가 만나는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나에 대해서 말이다. 또한 나의 주인은 나이기에 그들과 얼마든지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나를 둘러싼 생명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낀다. 시 속에서 너와 내가 동등한 존재로서 연결되듯이 이 시를 썼던 월트 휘트먼과 우리는 시를 통해서 연결된다. 그는 어쩌면 시를 통해 생명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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