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테머 Mar 01. 2020

적어도 나는 무조건 좋은 상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상사 스트레스보다 무서운 부하 직원 스트레스

 자신했다. 아니, 확신했다. 내가 직급이 높아지면 난 저 사람과는 다른 좋은 상사가 될 거라고 단언했다.

한 치의 의심 없이 내 머릿속 미래의 나는 '엄청' 좋은 상사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내게도 관리자 타이틀이 붙었다. 직원과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일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 어떤 상사일까.


  사회생활을 하며 거쳐온 곳곳에 몇 명의 윗사람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의 선배들부터 각 조직의 직급 체계에 따라붙은 각종 직함을 가진 사람들, 일하던 매장의 사장님 등 내가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거나 일을 시키는 사람들을 '윗사람', '상사'라고 칭한다면 꽤 많은 윗사람이 있었다. 여려 유형의 윗사람들과 지내며, 훗날 연차가 쌓여 내가 누군가들의 윗사람이 된다면 '난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모습은 절대 보이지 말아야지' 하는 이미지를 종종 그려보곤 했다. 그리고 그건 나에게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허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벌써 깨닫고 있는 중이라니. 나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더라도 그저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인 '상사'만 없으면 회사 생활은 순탄하리라 생각했던 내가 오만했다.


 나는 온라인을 기반에  작디작은 개인 사업체 외에 명의 아르바이트생과  명의 직원이 있는 F&B 매장의 점장으로 근무 중이다. 개인 사업체는  그대로  혼자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일의 진행과 결정, 그에 따른 결과 모두 오롯이 나의 . 때문에 스트레스가 아예 없다고는   없지만 비교적 없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매장 근무는 다른 이야기. 좋은 상사 노릇이 어려울게  있겠냐고 생각했던 내가 맞닥뜨린 현실이 상상을 초월함을 제대로 체감하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상사' 그리 거창한  아니다. 그저 개개인의 사적인 부분은 터치하지 않으며 공과 사의 선을 지키는 상사,  일은 스스로 하는 상사, 함께 일하는 이들을 믿어주는 상사, 조금  욕심을 내보자면 원칙만을 고집하며 내세우지 않는 '유연함' 있는 쿨한 언니 같은, 누나 같은 상사. 결론부터 말하자면  혼자 이런 가치관과 의지를 가졌다고 한들 무조건 이런 상사가   있는  아니었다.



 

 사회화를 거쳐 성인이 되어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문제에 직면했다.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성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어른 대 어른으로, 상사 대 부하직원으로 말이다. 내 직업은 윤리 선생님이 아니며, 그녀는 내 제자나 자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황스럽고 낯설고 어려운 문제다.


 한 번, 두 번 직원의 거짓말을 눈치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나의 심증일 뿐이지 않나 라는 이유로 눈 감고 넘기기를 반복했고, 정말 내가 모르는 거라 생각했던 건지 고질병이었던 건지 그녀의 거짓말은 점점 더 잦아졌다. 혼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무지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소한 것들까지 거짓을 말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싫었다. 어쨌든 나의 호불호를 떠나 업무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남에게 자기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못된 버릇과 본인이 저지른 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상사로서 넘길 부분은 아니라는 판단하에 조곤조곤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바닥을 보며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답답하기도 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내 논점을 흩트리기 싫었고, 그 순간 전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의 선생님이 아니고, 나는 너의 도덕 수준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업무적으로 방해가 되는 수준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나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행동이니 자제하라는 말이었다.-말을 잘 못해서 사실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대략 내용은 비슷했으리라.- 시종일관 '네'만 하던 그녀가 내 말을 잘 알아들어 앞으로는 고쳐질 문제겠거니 생각했던 건 내 욕심이었고, 무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문제의 반복 끝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상사의 조건 중 '함께 일하는 이들을 믿어주는 상사'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 나는 이제 웬만한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해 시킨 일도 두 번 세 번 직접 확인을 해야 비로소 안심한다. 쉬는 날에도 그녀에게 일을 믿고 맡길 수 없어 전전긍긍하며, 출근하자마자 해결하지 못한 일들을 부랴부랴 확인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그녀와 나 모두에게 불행이다.




 쉬는 날, 혹은 퇴근 후 일로 연락하는 상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피치 못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당장 알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인데 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는 건지. 몸이 회사를 떠나 있는데도 머릿속을 회사에서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는 느낌이었고 괴롭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용기 있게 "저 쉴 때는 연락하지 마시죠"라고 하지는 못했다. 점장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는 출근과 퇴근을 명확히 분리하고 싶은 사람이기에 직원과 아르바이트생 친구들에게 퇴근 후 일절 연락하지 않으며 그 흔한 단톡 방도 만들지 않았다. 한 아르바이트생이 어떤 이슈로 단톡 방을 만들었던 때에도 그 이슈가 해결된 즉시 단톡 방을 없앴다. 어떤 면에서는 단체 창이 의사소통에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편한만큼 사소한 것들까지 무심코 단톡 방에 공유하는 게 당연시되고, 근무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계속적으로 업무내용이 전달되는 건 회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다. 구식이지만 우리가 공유해야 하는 내용들은 매장에 로그북을 두고 수기로 써가며 체크한다. 내가 이렇게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고자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직원들에게 쉬는 날 연락하지 않음은 기본이고, '내가 쉬는 날 꼭 내가 알아야 하는 내용, 오직 나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일을 제외하고 매장의 웬만한 이슈는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해결할 것'이 우리 매장 매뉴얼. 나는 모두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요즘 스타일'의 근무행태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는 법. 직원 스스로 해결하면 안 되는 이슈를 스스로 해결해버리는 탓에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으며,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퇴근해버려 뒷수습이 불가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 것이다. 쉬는 날 웬만하면 연락하지 말라던 나에게 연락하기가 무서웠다는 대답을 들은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그저 주관적인 내 기준에서의 좋은 상사가 되려는 노력이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다른 면에서 불편한 상사였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일의 중요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직원이 답답하기도 한 오만가지 생각.


 공과 사를 절대 구분하고자 했던 나는, 이제 잘 모르겠거나 어떤 이슈가 생기면 내게 연락하라고 했다. 이제 우리 직원은 쉬는 날에도 이것저것 내게 물어온다.... 하하.. 쉬는 날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발전이다만. 제 일은 스스로 하는 것도 모자라 직원의 일까지 해주는 상사가 되어가는 중.

좋은 상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본사의 간섭이 크지 않은 편이고 자체 매뉴얼이 엄격하게 정해지지 않은 편이라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 선에서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다. 나는 제법 매뉴얼이 엄격한 곳에서 배우며 힘들게 일했던 터라 우리 매장의 매뉴얼은 꽤 느슨하게 만든 편이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로만 매뉴얼화했고, '라떼는 말이야'하며 꼰대의 면모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생색도 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바쁘지 않은 매장이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또한 내가 꿈꾸는 업장-출근이 몸서리치게 싫거나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며, 매장에서 일하는 게 제법 즐거운, 시간을 때우는 게 아닌 배우고 얻을 것이 있는, 일의 기본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의 분위기가 되려면 이 정도의 매뉴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걸까?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직원이라니. 화가 났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라떼는 말이야' 화법을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별 수 없다. 사실이니까! 지금 당장 다른 매장에 가서 하루만 일해봐도 알 일이다. 지금 본인이 얼마나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 서로 불편하고 힘들어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서 일을 최대한 줄인 내 입장에서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매장이 바쁘지 않으면 출퇴근도 제법 유연하게 조절해주고, 쉬는 시간도 조금 더 주고, 언니처럼 권위적으로 대하지 않는 건 우리 매장의 안정적인 분위기와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한 내 노력이었지만 고작 내게 돌아온 건 대충대충 일하는 모습이라니. 쿨한 언니가 이래도 저래도 좋게 좋게 넘어가 주겠거니. 어쩌다 한번 버럭 하면 그때 하면 되겠거니. 하는 태도라니. 쿨한 언니 같은 좋은 상사되려다가 매장이 개판되기 오 분 전이다. 두 번만 유연했다가는 직원이 '저 오늘 기분 안 좋아서 출근 안 할게요' 할 판이다.


쿨한 언니 같은 좋은 상사되기도 실패다.


나는 언제쯤 좋은 상사가 될 것인가.

좋은 부하직원이 들어오면 그제야 좋은 상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어쩌면 모든 상사는 결국 좋은 상사가 될 수 없는 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결국 무기계약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