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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테머 Aug 12. 2020

빈티지 옷 파는 여자

그 돈 주고 왜 빈티지를 사?

"여기 빈티지 옷가게예요? 헌 옷 파는데?"


 가게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게 문 앞을 서성이던 아주머니 한 분의 저 말 한마디는 아직도 내게 꽤나 큰 충격이다. 해외에 비해 빈티지 시장이 덜 활성화되어있고, 빈티지에 대한 인식도 현저히 낮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헌 옷'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며 지은 아주머니의 표정에서 한국에서의 빈티지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얼마나 한정적인지 피부로 느꼈던 날이라서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패션 용어에서 일컫는 빈티지는 '새 옷이 아닌 오래되어 가치 있는 것' , '오래되어도 새로운 것.' 이니까. 하지만 생산 당시의 택까지 달려있는 미사용 제품들도 빈티지에 다수 포함되기 때문에 '빈티지는 모두 헌 옷'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살펴보자면,


 VINTAGE FASHION
어느 일정 기간을 경과해도 광채를 잃지 않는,
가령 한 때 광채를 잃어도 어떤 계기로 돌연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는 매력을 가진
어떤 특징의 두드러진 유행 또는 유행품


사전적 정의만으로도 이렇게 매력적이라니. 역시 빈티지를 '헌 옷'으로 단정 지어 버리기에는 할 말이 많다.



 

 앞선 내 글들에서 빈티지 옷가게를 시작하게 된 경위를 대략 언급한 적이 있다. 가게를 연지 1년 남짓 된 지금은 그때보다 빈티지의 가치를 몸소 느끼고 그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다. 오래된 옷이라고 무조건 근사한 빈티지는 아니기에 사입할 때 가장 크게 중점을 두는 부분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품질과 디테일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이다. 또한 앞으로도 가치가 있을만한 제품이어야 한다.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이라는 점에서 빈티지가 오트 쿠튀르만큼이나 가치 있고 특별할 수 있다는 것을 옷을 구매한 고객들이 직접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넘쳐흐르는 패스트 패션 속에서 빈티지가 빛을 발하려면 빈티지 옷가게 몇 평 남짓을 운영하는 한낱 나의 작은 노력도 일정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다소 거창한 나만의 책임의식도 있다. 하하하.


차별성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중반 이후 유행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면서 빈티지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대두된 건 사실이다. 눈 깜짝할 새 트렌드가 바뀌어 있고, 각자의 개성이 점점 더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더 이상 유행만 따라가기 급급한 건 멋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달까? 나만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찾는 흐름 속에 빈티지 패션도 한 줄기가 된 것이다. 빈티지의 가장 큰 키워드인 '차별성' 말이다. 빈티지를 가진다는 것으로 스스로의 콘셉트를 설정할 수도 있고, 희귀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틀에 박힌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가진 젊은 세대들일수록 이런 문화에 열광한다. 소외된 것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전혀 새로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빈티지를 소비하는 우리가 제법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Resonable    
1. 타당한, 사리에 맞는, 사리를 아는, 합리적인
2. (특정한 상황에) 합당한
3. 적정한, 너무 비싸지 않은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인 'resonable'. 늘 합리적이고 사리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여 지향하는 삶의 태도 중 하나랄까. 각설하고, 빈티지와 뗄 수 없는 단어 'resonable'.

그 물건의 값어치에 따라 값이 매겨져야 하고, 그 값은 적정해야 한다. 빈티지의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일 것. 빈티지는 무조건 저렴할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걸 반증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같은 빈티지임에도 값어치가 다르기 때문. 예를 들어 오래된 샤넬 빈티지라면? 브랜드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 높은 희소성에 값어치가 매겨지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게다가 하우스 브랜드는 헤드 디렉터가 바뀔 때마다 브랜드의 색깔도 조금씩 변화하므로, 호불호에 따라 초창기 브랜드의 색깔을 선호하는 층도 많아 명품 빈티지를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고가의 명품 빈티지라 할지라도 이는 합리적이고 적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근사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을 때 말이다.


 나 역시 명품 빈티지도 간간이 들여오고 있지만, 고가의 퀄리티 좋은 명품 빈티지를 구한다는 게 내게도 썩 쉬운 일은 아니라, 일반적으로 약간의 디테일이 들어가 있으면서도 웨어러블한 해외 브랜드의 제품들을 취급한다. -적당히 재미있는 옷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브랜드의 역사가 깊거나 희소성이 대두되는 제품들이 아닌 경우에는 그 퀄리티에 '합당한' 값을 매기기 때문에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가 형성된다. 경제적인 가격으로 품질이 뒷받침되는, 웨어러블 하면서 적당히 패셔너블한 옷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에게도 참 매력적인 일이다. 빈티지를 팔며 빈티지를 사기도 하는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꽤나 만족스럽다.


버질 아블로,
"10년 뒤 스트릿 웨어는 죽을 것이다"


이 시대가 열광하는 오프 화이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버질 아블로의 2019년 12월 '데이즈드' 인터뷰 내용 중 발췌한 부분이다. 스트릿 브랜드의 TOP 이자 스니커즈씬을 만든 장본인의 이런 발언은 꽤나 주목을 받았다. 인터뷰의 소제목이 자극적으로 뽑히기는 했지만 스트릿 웨어의 몰락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기보단 패션이 향후 10년간 변화되어 갈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나 역시 이 의견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다못해 내 옷장만 보더라도 더 이상 욱여넣을 공간도 없어 의자를 차지해버린 옷들이 넘쳐난다. 망각의 동물인 우리는 그럼에도 또 옷을 사고 쌓아 두기를 반복한다.

버질 아블로도 마찬가지의 의견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티와 후디, 운동화를 소유하고 있는가에 대해. 하여 앞으로는 개인적인 지식과 스타일로 빈티지를 표현하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고, 빈티지 상점에서 쿨한 옷들을 고르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더 이상 박스 프레시 -박스에서 갓 나온 새 상품- 가 아닌 본인 아카이브를 찾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가 됩니다.
위우부띠끄는 환경보호에 동참하고자
종이 포장재만을 이용하여 패킹합니다."

 패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환경문제다. 물론 나 역시 그리 대단히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진 못한다. 일상생활에서 여전히 실수 투성이고 알게 모르게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는 일도 허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인지하고, 할 수 있는 건 실천하고자 하여 사이트를 만들 때 브랜드 소개란과 페이퍼 작성에 가장 처음으로 넣었던 부분이다. 우연히 본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패킹 용품의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던 터라 최소한 패킹할 때 비닐과 플라스틱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 생각은 단호했다. 의류 패킹이므로 충분히 실천 가능한 부분이라 다행이었다. 사실 가격적인 면에서는 비닐 포장재가 월등히 저렴하지만 포기했다. 그마저도 처음엔 미흡하여 재활용되지 않는 박스 테이프와 비닐 스티커를 붙이는 오류를 범했지만, 현재는 종이 박스테이프로 변경했다.  

 

  새 청바지를 한 벌 만드는데 32.5 kg의 이산화탄소와 7,000l의 물이 사용된다고 한다. 세상에. 이쯤 되면 빈티지를 소비하는 우리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두 번 입고 버려지는 옷들은 여전히 넘쳐나고, 새 옷은 끊임없이 생산된다. 패션 업계는 매년 또 새로운 트렌드를 제안할 것이다. 유행하는 아이템은 또 새로 등장할 것이고, 지금의 유행은 사라질 것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다리 찢어진다'는 흔한 이야기를 빌려 부디 아등바등 유행을 쫓지 말 것을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

(아, 물론 그게 본인의 패션 철학이라면 굳이 할 말은 없다.)


특별한 스타일을 가진, 빈티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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