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꺼내보는 풍경 일기
계절이 느껴지는 마당
단독주택 1년 차. 6월에 이사를 와 처음 맞는 겨울이었다. 단독주택의 겨울은 예상보다 춥고 할 일은 많았다. 여름 내내 신나게 심었던 작물들은 차가운 바람에 노랗게 말라죽었다. 작물들을 뿌리째 뽑아내고 화분은 창고에 쌓아 마당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미루고 미루다 결국 그 다음해 봄에 새로운 작물을 심으면서 정리했다. 덕분에(?) 겨울 내내 우리 집 마당은 시들시들하게 죽은 작물들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2016년 겨울은 눈도 참 많이 왔다. 부모님 댁에 살 때는 밤 새 눈이 와도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나설 때면 집 밖의 눈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눈 쌓인 이 집의 마당은 오로지 나와 언니의 관할이었다. 이 집에서 첫눈을 맞았을 때는 오로지 나만 들어올 수 있는 마당에 수북하고 뽀얗게 쌓인 눈이 너무 예뻐 한 발 한 발 정성스레 밟아보기도 했다. 마치 프라이빗한 수영장이 마당에 생긴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작은 고양이 발자국이 귀퉁이에 촘촘히 먼저 생겨있기는 했다. 그 발자국을 보며 웃던 순간도 소소하지만 오래도록 따뜻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기온은 더 내려가고 눈은 어설프게 녹으면서 마당은 빙판이 되었고, 왜 눈이 보슬보슬할 때 빗질을 해야 하는지를 뒤늦게 깨달으며 날이 풀릴 때까지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걸어 다녔었다.
바닥도 얼고 지붕도 얼었다. 처마 밑에는 고드름이 열렸다. 까치발을 들면 천장에 손이 닿을 듯한 낮은 층고의 단독주택이라 현관 처마에 내려온 고드름이 머리에 닿을 듯했다. 길게 얼은 고드름을 하나 똑 떼어 손으로 차가운 기운을 느껴보고 꼭 쥐어 체온으로 조금씩 녹여도 보았다. 차가웠던 공기와 손끝에 전해지던 겨울의 온도가 오롯이 몸에 새겨진 듯 선명하게 생각난다.
단독주택은 열을 잡아주는 윗집 아랫집 옆집이 없어서 외출하고 집에 들어오면 바람만 불지 않는 실외 같은 느낌이다. 겨울에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호호 입김을 불며 들어왔고 집 안에서도 외투를 벗기 쉽지 않았다. 난방을 틀어도 공기가 훈훈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공기가 따뜻해지기도 전에 바닥이 먼저 너무 뜨거워져 공기가 훈훈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도 낭만은 있었다. 어둑해지는 밤이면 어묵탕을 가득하게 끓여 마치 실내포장마차 같은 분위기로 술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라오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로 분위기가 차올라 공기도 뺨도 후끈해지면 마당에 잠시 나가 차가운 공기로 열을 식혔다. 그때의 시원하고 차디찼던 밤공기가 참 좋았다. 열을 식히며 마당에서 올려다보던 오래된 서울의 골목, 가로등, 삐뚤빼뚤 겹겹이 쌓여있던 낡은 집들. 그 모든 것들이 이 집의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들리고, 눈이 올 때는 눈을 만져볼 수 있고, 햇살이 강할 때는 눈이 부신 집. 어떠한 계절에서도 적절한 26도의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집이 아닌 계절에 따라 실내온도가 들쑥날쑥한 집. 온 계절이 집을 그대로 통과하는 집. 몸이 불편하고 귀찮은 집.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즐거운 집. 이 모든 장점과 단점이 좋았던 우리집의 소소한 풍경 소소한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