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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흔 Mar 02. 2022

엄마가 도망칠까 봐 무섭고, 이혼 안 해서 미웠다

왜 나를 지옥에서 꺼내주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를 때린 것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아마 언니들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처음’부터 집에서 폭력은 일상이었다. 서울에서 처음 살았던 단칸방, 다음으로 이사 간 빌라, 제일 오래 산 아파트, 엄마의 식당, 식구가 머문 모든 공간에 아빠의 폭력에 관한 기억과 폭력이 남긴 물리적 흔적이 상흔처럼 남아 있다.


아빠가 도대체 엄마를 왜 그렇게 때렸는지는 전혀 기억 나지 않고,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폭력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내가 아는 한 아빠의 분노에는 그럴 만한 이유나 참작할 만한 사정이 요만큼이라도 있었던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계기와 왜곡된 사고 회로를 통해 과도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다.


아빠는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간 자식들 앞에서 공공연히 폭력을 일삼았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다양한 장면들이 마치 비디오처럼 뇌리에 남아 있다. 엄마가 방에 들어가라고 하면 우리는 덜덜 떨면서 방문 뒤에 숨었다. 아빠가 엄마를 매질하는 소리, 목을 조르는 소리, 손에 잡히는 아무거나 던지는 소리, 엄마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자매들과 문 뒤에서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치면 어떡하지?


공포였다. 저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 엄마가 너무 괴로워서 우리를 두고 도망치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저런 남편과 얼굴 맞대고 살 바에는 금쪽 같은 자식들이 눈에 밟히더라도 혈혈단신 떠나는 게 어린 마음에도 합리적인 선택인 것 같았다. 죽음이든 도망이든 엄마의 부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엄마도 텔레비전이나 소설에 나오는 ‘나쁜 엄마’들처럼 우리를 버리고 도망칠까 봐, 그리고 무서운 아빠 밑에서 우리가 폭력의 다음 희생양이 될까 봐 너무 두려웠다.


얼마나 순진한 착각이자 망상이었는지. 엄마는 열심히 사는 보상 대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의 육체적 폭력은 꽤 오래 지속됐지만 엄마는 도망칠 엄두도 내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랑 싸우고”(엄마는 가정폭력을 이렇게 표현한다) 기분이 상하면, 흔한 소주 한잔할 줄도 몰라서 자식들 줄 책을 한 꾸러미 샀다. 부족한 형편에 계획에 없는 물건을 사는 충동구매로 분을 풀었는데 그조차 립스틱이나 옷가지도 아니고 겨우 애들 책. 엄마는 아빠의 폭력으로 인해 자식과 당신의 관계가 흔들리거나 끊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해본 사람이었다. 얼마나 바보 같고 엄마 다운지. 그 탓에 가난한 우리 집은 책이 부족한 적은 없었다.


엄마는 왜 이혼 안 할까?


엄마가 도망칠까 봐 무섭다는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의구심으로 바뀌었다. “엄마는 왜 이혼 안 하지?” 아빠가 집에서 하는 게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바람은 피운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빠는 제대로 돈을 벌지 못했고 엄마 식당이 모든 생활비의 출처였다. 애초에 엄마 혼자 가사·육아·돈벌이를 도맡고 있으니 이혼하더라도 고통의 원흉인 아빠만 제거하는 셈이었다. 이혼하면 아빠는 돈 한 푼 없이 맨몸으로 쫓겨날 것이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99% 야기하는 한 사람만 도려내기에 이혼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였다.


엄마가 죽을까 봐 또는 도망갈까 봐 문 뒤에서 덜덜 떨었던 우리는,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누구랑 같이 살지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네 명 다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남동생이 없을 때 언니들한테 걔 혼자 아빠한테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다. 아무리 엄마가 돈을 벌어도 네 명이나 키우기는 힘들고, 형평상(?) 아빠한테도 자식 한 명은 있어야 할 것 같고, 어쨌든 엄마와 자매 셋이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서다. 언니들은 남동생이 너무 불쌍해서 안 된다고 딱 잘랐다. 그때 우리에게 부모의 이혼은 언젠가 다가올 것이 뻔한 미래였다.


왜 우리를 저 악당한테서 구해주지 않아?


하지만 우리들의 자못 심각한 이혼 계획은 아무짝에 소용 없는 짓이었다. 일단 당사자에게 의사가 없었다. 엄마는 아빠를 내쫓을 시도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아빠를 버리지 않아?” 의구심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다. 내가 아빠와 일대일로 대거리가 가능해질 만큼 똑똑해지고 자아가 생기고 난 뒤에는 엄마한테 대놓고 종용했다. 엄마 이혼해. 저런 남자랑 살지마. 그래도 엄마는 코웃음만 쳤다. 난 진심인데.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어머니 중 가장 내 엄마와 닮았던,  <와일드>의 바비(로라 던).


엄마가 왜 아빠랑 헤어지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참고 사는 주요한 이유인 경제적 사정은 아니다. 우리집 재산의 구할 이상은 엄마가 번 것이니까. 이혼 가정에 대한 주변의 시선? 자식들이 결혼할 때 흠잡히거나, 아빠 없이 입장할 그림이 두려워서? (어차피 난 남편과 동시입장해서 상관 없는데) 한 동네 사람과 결혼한 엄마의 친척이 곧 아빠의 친척이어서? 아빠에 대한 일말의 연민? 어떤 마음이 제일 컸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이유일 것이다. 믿기 싫지만 엄마는 그런 아빠를 아직 사랑하는 걸 수도 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를 원망했다. 지금도 원망하고 있다. 아빠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감정과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감정의 강도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가정폭력의 심각한 피해자이지만, 피해에 적극적으로 반격하지 않는 바람에 우리까지 한 지옥에 오랫동안 가둬버린 또 다른 가해자라고 느꼈다. 의도치 않게 악당의 인질로 잡혔으면서, 자식이라는 추가 피해자를 탄생시켜 악행에 노출시켜버린 공범. 불쌍하고 가엽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악당의 인질이자 공범이다. 그 모순이 내내 나를 괴롭혔다.


물론 엄마가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뭐였든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서였음을 안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으니까. 엄마가 이혼하지 않아서, 아빠라는 지옥에서 구해주지 않아서 나는 몹시 불행했다. 그래서 엄마를 뼛속까지 사랑하지만 덜 존중했다. 소중한 엄마를 존중할 수 없어서 나는 더 괴로웠다. 엄마가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다면, 훨씬 더 엄마를 사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알았던 엄마는 여전히 아빠와 살면서 홀로 인질로 남아 있다. 나는 어쩔  없이 자력 구제를 선택했다. 결혼을 계기로 아빠와 함께 사는 집에서 벗어났고, 엄마가 이혼하지 않을 거라면 나라도 아빠와 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뒤로는 아빠를 보지 않는다. 당면한 고통에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불쌍한 엄마를  미워할  있게 됐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가, 가여운 피해자가 이제라도 스스로 구하길 바란다. 그건 내가 어찌할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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