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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흔 Aug 07. 2022

죄를 사과하지 않는 아빠에게

사과하지 않겠다면 부녀의 연을 끊겠다는 결심

나의 아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안 됐던 자다.


가정을 꾸려선 안 되는 사람이 어쩌다 가정을 꾸린 탓에, 가족들에게 일생 동안 죄만 저지른 자가 나의 아비다.


나는 사춘기가 지난 후부터 아빠에게 아빠의 죄를 분명한 언어로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아빠의 지속적인 언어적·육체적 폭력이 잘못됐다는 것, 그게 자식들의 정신 건강과 가치관에 지대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 아빠가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을 무책임하게 평생 방기해온 것, 그러면서도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비겁하게 요구하여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 끊임없는 외도로 엄마와 자식들을 슬프고 힘들게 한 것, 그렇게 바람피운 것은 본인이면서 아무 근거도 없이 엄마를 의심하고 모욕하는 의처증이 끔찍하다는 것, 가족들 앞에서 대놓고 외도 상대와 통화하는 건 정신 나간 몰염치한 짓이라고 매번 크게 외쳤다. 아빠의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아빠는 사과는커녕 잘못이 뭔지 인정조차 한 적이 없다. 늘 뻔뻔하였고 언제나 과도하게 당당하였다. 그리고 아빠가 더 이상 엄마를 때리지 않는다거나, 자식들이 다 장성하고 나서야 몇 년 동안 약소하게 경제 활동을 했다는 사소한 개선만으로도 가족들은 "아빠 이제 정신 차렸다"라고 얘기를 했다.


아빠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그렇게 힘들고 아팠는데도. 사과나 반성의 마침표 하나 없이 그냥 과거로 묻고 잊을 수 있다고.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과하지 않는 자를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내가 결혼해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게 된 후, 엄마 아빠가 서울과 먼 고향 근처로 이사한 뒤로는 예전만큼 아빠의 악행과 뻔뻔함을 자주 보지 못했고 덕분에 내 기분도 꽤 안정적이 되었다. 하지만 명절이나 휴가를 계기로 가족을 만나고 오면, 어김없이 어두운 생각과 의문이 깊어졌다.


아빠는 자식들과 사위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욕설을 내뱉고 엄마를 무시하는데, 여전히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빠를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는 게 맞나? 그건 아빠를 용서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반성하고 사과할 줄 모르는 자를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마음이 얼마나 넓고 좁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과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라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2021년 여름 언니들과 남동생이 함께 모처럼 휴가를 맞춰 온 가족이 엄마 아빠 사는 지역의 근교로 여행을 갔다. 그때도 당연히 아빠는 다혈질이고 뻔뻔했는데, 내 귀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다독가인 아빠는 지방으로 이주한 뒤 더 탐욕적으로 책을 많이 빌려 읽었다. 그리고 당시에 인격장애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본인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일부러라는 듯 더 떵떵거리며 말했다. 다른 가족들은 아무도 그 말에 호응하지도 그렇다고 지적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아빠에게 일일이 대응하는 데 지쳐있는 탓이다. 책이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을 텐데라고 웃으며 지나갔다. 하지만 아빠의 그 뻔뻔한 말이 너무 황당해서 나한테는 며칠 내내 해소되지 않는 질문으로 남았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며, 5천만 원만 주면 이혼하자고 제안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의 부부 관계가 깨진다면 전적으로 유책 배우자는 아빠 쪽인데도, 아빠는 재산이 없다며 엄마에게 5천만 원을 요구한 것이다. 엄마는 입으로 이혼을 달고 살면서도 막상 실행할 용기는 없으므로 당신에게   없다며 유책 배우자의 이혼 요구를 눙쳤다. 나였다면 진작에 맨몸으로 쫓아냈을 텐데.


그저 혼돈이었다. 가족 안의 가해와 피해, 책임과 무책임을 수십 년 동안 똑바로 정의하지 않고 불편하다며 입밖에 꺼내지 않은 탓일까. 모든 죄를 저지른 장본인인 아빠는 책임 없는 피해자나 할 법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며칠간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아빠가 가족들에게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아빠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 입장을 글로 정리한 뒤, 가족들이 모여 있는 톡방에 마지막으로 글을 남기고 퇴장했다.


OO에 다녀올 때마다 우리 가족, 특히 아빠에 대해 생각이 많아집니다. 긴 시간 고민 끝에 앞으로 남은 인생 아빠를 보지 않는 것, 부녀 관계를 사실상 끊는 것이 나를 위해 더 나은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는 가족들이 모이거나 딸로서 아빠를 대면해야 할 때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빠가 저지른 악행은 잊었다는 듯 화목한 가족을 연기하는 것에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와 슬픔을 느껴왔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다 모여서 짐짓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들이 오히려 더 강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아빠가 수십 년간 엄마에게 행한 육체적·언어적 폭력, 그러느라 수십 번 부서뜨린 가재도구들, 가정폭력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자식들에게 가한 정서적 학대, 부인과 자식에게 부끄럽지도 않은 듯 일삼은 외도, 성실히 가족을 부양하지 않은 무책임함 등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이제라도 모든 가족들 앞에서 사죄·반성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도 없이 다 잊은 척, 괜찮은 척하기가 이제는 싫습니다.
말뿐인 사과가 아니라 인격이 바뀔 정도의 반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변화와 반성 없이는 앞으로 아빠와 어떤 말을 섞거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고, 조금의 소통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카톡방도 나갈 것이고 아빠가 참석하는 가족 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다른 가족들과 개별적으로 보는 건 괜찮습니다.
갑작스러운 통보 때문에 다른 가족들의 마음에 불편함을 줬다면 사과합니다. 하지만 충동적인 결정이 아닌,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이므로 어떤 변수가 생기든 제 마음은 그대로일 겁니다. 뼈저린 반성도 없이 섣불리 연락하거나 제3자가 화해를 시도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날부터 약 1년 남짓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아빠는 사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 탓에 나는 아빠를 용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아빠를 피해야 하니 명절에도 엄마를 보지 못하고, 가끔 당일치기로나마 엄마만 불러 점심을 먹고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불편함은 있다. 그래도 사과하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혼란스러움,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참기 힘들었던 모순의 역겨움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마음이 한결 건강해졌다.


이런다고 아빠가 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빠는 아마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반성 같은 거 모를 수 있다. 그래도 나의 고집과 부재를 통해, 그가 일말의 양심의 가책 아니 최소한의 언짢음이라도 느낀다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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