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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머리영 Feb 04. 2021

영혼 없는 남자. 3

문부정씨를 소개합니다

2006년. 새댁은 남편과 함께 장을 보는 중이었다. 컬투가 광고하는 맛있는 우유, 아니면 연아가 매일 마시는 우유를 번갈아 구입해왔다.


남편은 갑자기 다른 우유를 집어 들더니 이게 더 싸다고 했다.


"100ml당 가격 비교해봐."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그걸 계산까지 하자는 건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아내에게, 그는 가격표 아래 100ml당 금액이 적혀있다고 안내했다. 과연 깨알 같은 친절함을 그제야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살림을 맡기게 되었다. 따로 정해진 생활비나 용돈은 없었다. 그저 서로가 짠돌이, 짠순이가 되어 아껴 쓰다 보면 자연히 매달 생활비가 비슷했다.




에세이 쓰기 단톡 방에 밀 키트 밥상이라며 패밀리 레스토랑 분위기의 사진이 올라왔다. 신세계를 경험했다는 '오픈박스'를 소개하는 글과 함께. 


"그 동네에도 생겼다는데요?"

다음에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는 내게 들어온 반가운 정보였다. 군산 도심에서 벗어나 은파호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미룡동은 군산 사람들에게 '미룡섬'이라 불려지는 곳이다.


우리 동네 어디에 생긴 거지? 한길문고에서 나와 차에 시동을 걸며 내비게이션에 이름을 입력했다. 일 년 이상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네비 화면은 '오픈박스'도, 'open box'도 찾을 수 없다는 답만 내놓았다.


"네비에는 없는 오픈박스는 어디에 있나?"

일단 집으로 도착해 스마트폰을 찾아들며 혼잣말을 하는데 용케 알아들은 아이가 외친다.

"엄마, 저기잖아!" 큰 딸이 창밖을 가리킨다.


저번에 차로 지나오면서 얘기했었다고 하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보다. 도대체 언제 그런 얘기를 나눈 건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로운 건물이 세워진다고, 무슨 무슨 가게가 생기면 좋겠다고 서로 얘기한 건 기억난다. 그  자리에 '오픈박스가 오는구나!' 했던 가까운 기억은 온데간데없다.


장바구니를 챙겨 걸어가면서 기억을 되짚어 보는 사이 도착한 오픈박스 미룡점. 나는 샐러드 한 봉지와 꽃빵이 들어있는 밀 키트, 볶아먹을 양념된 고기를 집어 들었다.




"직접 양념한 거야?" 

주말이라 한 상에 앉은 남편은 굳이 확인했다.


"아니."


"그럼 그렇지."


'오픈박스가 생겼는데, 거기 밀 키트들이 요새 유행인데, 나도 가봤는데, 애들은 맛있게 먹었는데'와 같은 말은 잘근잘근 씹어 꾸역꾸역 삼켰다.


'그럼 그렇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수저를 그만 내려놓다. 긴가민가 했던 나의 남편은 오늘도 이렇게 살기로 했다. 문부정 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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