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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샬장 Apr 17. 2021

그렇게 조금씩 나의 것이 되었다.

괴담을 가진 기타를 가지게 되었다.

버려진 기타

허무맹랑한 락 키즈 시절, 연습실 구석에는 낡은 빨간색 기타가 한 대가 서있었다. 브랜드로만 보면 꽤 알려진 곳에서 제작된 기타인데, 그 기타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대다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여기저기 부서지고 이리저리 알 수 없는 개조가 이루어져 누구도 쳐다보지 않은 채 그렇게 한참을 처박혀있었다. 


게다가 그 기타는 누군가가 '다시는 기타를 치지 않을래.'라며 두고 간 기타였는데, 그 이후로도 공교롭게도 그 기타의 주인이 된 사람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을 포기하며 '이 기타의 주인은 음악을 그만두게 된다.'라는 괴담까지 얻어 만지기 싫은 상태인 것과 더불어 기분마저 모두가 꺼림칙하게 여기는 기타가 되었다.


그 기타는 락 키즈 시절을 지나 앞날의 불투명함에 잔뜩 겁을 먹고 첫 직장을 가지며, 연습실을 떠나던 나의 손에 넘어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의도는 본래 다루던 악기가 기타가 아니었던지라 직장을 얻어도 기타를 배워 음악을 작곡해가면서라도 음악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기도 했다.


내가 떠나고 얼마 뒤에 그렇게 청춘들의 꿉꿉함을 잔뜩 머금고 있던 영등포 지하 연습실은 화재로 인해 한 명의 안타까운 목숨을 앗아갔고, 그곳의 모든 악기는 소실되면서 공교롭게 버려졌던 기타는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낡지만 낡지 않은 기타


기타를 조금 배우면서 좋은 기타에 욕심을 내어 새로운 기타를 구입하면서 그 기타는 나에게서도 멀어져 갔다. 하지만 어디선가 부품을 얻어와 기타를 고치는 친구에게 부탁해 종종 실험용으로 쓰곤 했는데, 그 덕분에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파상풍이라도 걸릴 것 같다고 아무도 만지기 싫어하던 그 기타는 세월이 지나자 제법 멀쩡한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한참을 남들이 쓰는 기타, 예쁜 기타, 고급 기타 등등 여러 기타를 궁금증에 이리저리 바꾸고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내 기타라고 할 수 있는 기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곁에 한결같이 있던 기타는 그 기타였고, 이 기타가 문득 '나의 기타'였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기타를 누구도 아닌 나의 취향대로 살려내기로 했다.


색상에서부터 바디의 나무, 전선의 재질 하나, 나사의 모양새와 위치 하나까지 모두 원하는 대로 만든 기타는 결국 원래의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넥이라고 불리는 가느다란 나무 막대기 하나만이 남았다. 


새 기타를 살 수 있는 꽤 많은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이더라도 여전히 만만찮은 작업이었던 이 기타를 살리는 과정은 고집과 다행히도 어르고 달래고 윽박을 질러가며 해줄 친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인 것은 술 몇 잔에 넘어와 노동력을 착취당한 애꿎은 친구는 이 기타의 복원 과정을 블로그에 연재를 했고, 그 연재기가 꽤 관심을 얻어 갓 독립한 그 친구의 기타 수리점이 자리를 잡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약간이나마 일조를 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의 짐은 덜었다.  


그 덕분에 이 기타를 종종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조금 생겼는데, 본래의 그 기타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넥이란 부분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기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지만 이 기타가 예전의 그 낡은 기타, 그리고 '펜더(Fender)'라는 브랜드는 더 이상 아니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이 기타는 그렇게 나의 시간과 함께 머물며 기억을 담아 '나의 기타'가 되었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것은 관둔지라 결국에 이 기타는 본래 그 영등포 연습실에서 떠돌던 괴담을 깨뜨리지는 못했는데, 괴담의 주인공이 된 나는 불행함을 느끼고 있진 않는지라 이 기타를 만지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


이 기타를 두고 떠난 전주인들도 괴담과 상관없이 다들 어디선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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