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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여우 Aug 09. 2024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립현대미술관은 내가 자주 가는 곳이다. 경복궁 옆이라는 위치도 좋고, 새로운 전시를 볼 수 있고, 그리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모, 내 동생이 일하는 곳이다.


동생이 미술관 경비원 분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최근 읽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생각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일한다면 정말 행복할 거 같다. 메트로폴리탄이 고전 유물 중심의 상설전시 위주라면 현대미술관은 현대&당대(Modern & Contemporary) 미술의 기획전 중심으로 조금 더 역동적이다.


동생이 우리에게 야외 전시를 보여주겠다며 미술관 뒤쪽으로 데리고 갔다. 

응? 이게 전시라고? 그냥 정원이 아니고? 종친부마당에 있는 정영선 작가의 조경 작품이었다. 

현대미술관 종친부마당

조경작품은 종친부 경근당과 어우러져서 봐야 한다. 경근당은 조선시대 관아건축이면서 궁궐건축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현대미술관을 자주 왔지만, 원래 이 공간이 어떠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영선 작가는 기존 정원이 서양 조경이라 우리의 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새롭게 정원을 조성했다.

종친부 경근당과 조경

석축을 설치한 조경은 궁궐 뒤뜰에 있는 계단식 정원이 연상되었다. 작품이라고 인지하못할 만큼 이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궁궐 건축과 정원, 그리고 인왕산이 다.

종친부마당
종친부마당에서 본 인왕산

종친부마당에 서면 인왕산이 보인다. 비 온 뒤 인왕산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게 한다.

정선 <인왕제색도>

정영선 전은 미술관 지하 1층 7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조경을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 생소했다. 현대미술관에서도 조경 전시는 처음이라고 한다. 회화, 조각에 국한되어 있던 미술관에 사진, 애니메이션이 들어오고, 건축이 들어오고, 이제 조경이 들어왔다고.

정영선 전 (현대미술관 서울 7 전시실)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주제가 시적이다. 실제 정영선 작가는 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정영선 작가는 한국의 1세대 조경가이다. 경주 불국사 유적지 복원, 대전엑스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아시아 공원, 예술의 전당, 선유도공원, 국립중앙박물관, 희원, 제주 오설록,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 숲길...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조경사와 역사를 함께 한다. 올해 유키즈에도 출연하셨고, 다큐영화 '땅에 쓰는 시'도 나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동안 작업해 온 수많은 프로젝트의 기록물 전시이다. 즉, 도면과 사진이 대부분으로 벽면을 따라 작가의 작품이 연대순으로 전시되어 다.

정영선 조경 전시 (현대미술관 서울 7 전시실)

자칫 기록물 나열에 그칠 수 있 전시를 영상과 바닥전시를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구성했다. 상부에 설치한 파노라마 스크린에서 계절 별로 변화는 아름다운 조경을 보여주, 바닥을 올려 만든 하부 공간에 쇼케이스를 설치하여 관람객이 걸어가면서 벽면뿐 아니라 발 밑으로도 전시물을 볼 수 있게 했다. 다채로운 전시 연출은 정적일 수 있는 아카이브 전시를 다이내믹하게 만들어준다.

조영선 조경 전시 : 바닥전시

바닥 전시는 사이즈가 큰 청사진 도면을 가까이에서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걸어 다니며 바닥을 보는 행위가 한 공간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동화되는 우리 조경 감상 태도와도 연결된다.


나는 교사가 되기 전에 전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 했었다. 박물관 전시 인테리어는 건축,  토목, 그리고 조경 업체와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그때 많이 보았던 조경 도면이 이제 달리 보였다.


작가가 한 많은 프로젝트 중 도슨트 설명에서 가장 관심 있게 들었던 것은 한강 샛강과 선유도 공원이었다.


작가가 한강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여의도 샛강에 버드나무를 제거하고 주차장과 축구장을 조성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었다. 정영선은 한강관리사업소 소장님을 모시고 한강으로 가서 시를 읽어주면서, 유일무이 한강 유영 습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샛강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공사비, 설계비를 안 받아도 되니까, 물 전문가, 곤충전문가, 물고기 전문가, 풀 전문가, 수생식물 전문가를 불러 생태  연구를 요청했고, 지금의 아름다운 생태 공원을 지켜내셨다.


그때 읽어준 시는 김수영의 ''이라고 한다.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선유도 공원은 옛 정수장을 활용한 국내 최초 재활용생태공원이라고 해서 처음 생겼을 때 궁금해서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선유도에 공원을 만들려고 공모를 했을 때 제출안 모두 기존 정수장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정영선 작가의 안만 제외하고. 정영선은 기존의 정수장을 그대로 활용해서 수생물을 통한 자연정화의 장소로 재탄생시키고자 했다. 예산도 가장 적게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특색 있고 아름다운 선유도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선큰가든

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경복궁 바로 옆 건물이라 층고를 높게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지하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다. 하지만 넓은 선큰으로 지하라는 느낌을 별로 받지 않는다. 이 선큰 공간에 정영선 작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 정원은 인왕산을 형상화하여 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7 전시관은 이 공간 옆으로 전시와 함께 볼 수 있다.

 

儉而不陋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BC 4C)에 새로 궁궐을 짓고, 건축에 대한 평가를 한 말이었다.

정영선 작가는 '한국의 미'를 '검이불루 화이불치'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 전날 미술 교사를 위한 유홍준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교수님도 우리나라 '미'를 상징하는 말이라며 강조하셨다.


정영선은 평생에 걸쳐 식물을 사랑하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삶을 강조해 왔다.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여전히 현직에서 일하고 계신다.


정영선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9월 22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exhId=202401150001735

예수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현재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 전시도 하고 있다. 아이가 직접 참여할 수 있 공간이 많아서 아이는 이 전시를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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