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린 장편소설
청소년 소설이라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상상력 부족 때문인지, 몇몇 장면은 다소 난해하게 느껴졌다. 계속해서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강원도 고성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반면, 학원과 내신 경쟁 속에서 인서울을 당위로 여기는 서울 고등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독감에 걸려 체육 시간 혼자 교실에 남아 잠든 연우는 깨어보니 "당신은 채집되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투명한 큐브 안에 갇혀 있다. 큐브 안에서 교실 내부와 일어나는 상황은 그대로 보이지만, 창 밖 풍경을 보면 큐브가 우주로 떠나고 있으며, 지구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우는 큐브 속에서 잠을 자고 깨어나는 것을 반복하며, 매번 다시 일어나면 모든 상황이 리셋되어 처음부터 반복된다.
처음에는 SF 소설인 줄 알았는데, 불안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상상 속 이야기인지, 무엇이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연우가 여자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연우의 입장이 아닌, 학부모나 교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입시를 앞둔 고3 교실이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라니. 그렇다고 하자니 처량했고, 아니라고 하자니 아닌 게 아니었다. 그곳은 일종의 온실이었다. 비바람을 막아 주고 추위와 더위도 막아 주는, 원하는 대로 자랄 수는 없지만 정해진 대로 자라기에는 딱 좋은 장소.(p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