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못하는 동양인이라서 안돼?
미국에서 한국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취업과 연애 같은 주제가 나오면 종종 들었던 말이 "영어 못하는 동양 남자는 뭘 해도 힘들어"였다. 동의한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인종과 피부색에 좋고 나쁨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명히 인종 간의 차이가 있고 대우도 다르다.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느낀 것은, 지역에 따라 틀리긴 하겠지만 백인으로 태어나서 백인으로 사는 게 일반적으로 가장 편하고 안전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동양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태에서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미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느낀 것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나이가 거의 30이 되어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국에 왔다. 미국 문화도 잘 모르고 영어 한마디도 겨우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컸었고 미국 온지 6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도 고생 중이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에 같이 왔던 한국 학생들이 친구를 만들고 정보 공유를 위해 학교의 한국 학생회나 한인 교회에 갔는데, 나는 그런 것에 참여하지 않고 거의 혼자 지냈었다. 일부러 한인 사회를 피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 영어 한 줄이라도 더 해석해서 과제를 마감 전에 끝내야 할 상황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너무 바빠서 아무런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히 일과 과제 중심으로만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학교에 있는 미국인들이나 외국인들과 더욱 많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외국인, 미국인들과 자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보니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영어도 많이 배웠다.
내가 생각하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최고의 방법은 외국인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다. 국적, 인종 다 떠나서 인연만 닿는다면 굳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벽을 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특히 본인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 외국인 파트너를 만나면 한국어를 쓰지 않고 평소에 영어만 쓸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나는 블로그에 글 쓸 때 빼고는 한국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데, 하루하루 이러한 사소한 차이가 영어 실력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 30년 동안 한국에서 한국어 이미 많이 써왔다... 늦게나마라도 하루 종일 영어만 해야 조금이라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 미국에 살면서도 반드시 한국 사람들만 만나서 한국어로 이야기해야 하고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드시는 분들도 있다. 인생은 개인의 취향대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이러한 방식은 미국 문화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느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내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절대 안 돼' 이런 생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도 좋고, 모든 국적, 인종에 관계없이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열려서 좋은 것 같다. 외국인들과의 소통 없이 같은 한국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우리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인종차별' 당한다는 느낌으로 사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다 보면 인종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다른 인종에 대한 선입견 정도는 있다. 나와 다르게 생기면 아무리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 산다고 하더라도 생소한 느낌이 있고 문화적 차이도 있기 마련이다. 백인이라고 해서 이 차별이나 선입견에서 예외는 아니다. 우리 동양인만 차별당하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서양인과의 연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항상 '동양 남자는 힘들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인간의 생각과 느낌은 보편적이다. 대부분의 경우, 한국에서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잘 생기고 예쁘다고 생각되고, 한국에서 친절한 사람은 미국에서도 친절하게 느껴지며 한국에서 돈 많은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돈이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다인종이 모여사는 뉴욕이나 로스 엔젤러스 같은 대도시에서는 국적이나 인종 간의 벽이 다른 지역보다 더욱 낮다. 인종 탓을 하며 안된다며 가만히 있기보다는 꾸준히 자신의 가치를 올리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종을 떠나서 매력 있는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지금 미국에 있는데 영어 못하는 동양인 남자라서 사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 밖으로 나와서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니 미국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