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in Motion
Dec 21. 2020
어느덧 2020년이 끝나가고 집에서 일한 지 9개월이 되었다. 올해 3월에 미국에서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회사에서 내려온 지침 사항은 일단 '2주 정도 집에서 일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였는데 팬데믹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고 재택근무를 오래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2020년 3월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장비를 차에 싣고 와서 어떻게 집에 이걸 세팅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와중에 평소에 비가 잘 오지 않는 LA에서 비도 계속 내리고 주식시장은 매일 급락하고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식 시장이 너무 떨어져서 내가 가지고 있던 채권을 다 팔고 바닥을 치고 있는 주식들을 사는 등 내 포트폴리오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변해서 정신이 없었다.
전반적인 경제는 아직도 정말 안 좋아 보인다. 최근에 새 돈이 너무 많이 돌아서 많은 자산 가격이 오르고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그게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차를 타고 밖에 나가보면 가게들의 50퍼센트 정도는 망해서 완전히 비었거나 문을 열지 않는다. 내가 일하는 분야인 디자인, 영상 엔터테인먼트 쪽은 그나마 나은 듯하다. 팬데믹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회사들의 재무제표는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디자인하는 친구들도 많이 해고되는 소식을 접했지만 거의 대부분 다시 일을 하는 것 같다.
올해 내가 계획했던 일들이 팬데믹 때문에 무산되어 세상에 대한 원망(?)도 했지만 오히려 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배운 것이 많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자산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매일 관찰하고 주식 외에 다른 자산에도 관심을 갖는 큰 계기가 되어 가격이 아직 저렴할 때 나의 포지션을 잡을 수 있었다.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일이 한번 벌어지니까 내 자산을 지킬 궁리를 계속하게 되고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부터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집에서 일하니 출퇴근하면서 버리는 시간이 없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사람들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재택근무를 하려면 네고해서 겨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식이었는데,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매일 재택근무해도 일 잘되는 것을 깨닫는다. Linked In에서 디자이너를 구하는 포스팅을 보거나 프리랜서를 구하는 회사들의 이메일을 보면, 회사들이 이제는 재택근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LA 지역에 있는 디자이너들만이 아닌 전 세계에 있는 디자이너들에게도 포지션을 열어주는 것을 보았다. 원래 해외 재택근무는 프리랜서 형식으로 꽤 있었지만, 이제는 그 규모가 더 훨씬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미국으로 유학 오고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든다. 한국에 있어도 기술 있고, 영어 잘하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릴 것이다. 미국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다른 전 세계에 있는 디자이너들과 경쟁해야 하니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팬데믹과 재택근무의 보편화로 인해서 다른 나라의 디자이너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진짜 기술 있고 영어만 잘하면 된다.
팬데믹 이후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인해 우리 집 바로 옆에서 대낮에 불타고 있는 경찰차를 실시간 뉴스에서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차피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면 내가 비싼 세금을 내면서 LA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도시를 떠나 조용하고 더 안전한 시골로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렇게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영상 디자인을 좋아해서 당분간 이걸 계속할 것 같지만, 세금 없고 땅값 저렴한 다른 주로 이사해서 땅 사서 농사짓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실제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팬데믹이 너무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고, 나 또한 그에 맞춰 대응하고 있다. 올해 이 팬데믹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완전히 다른 기회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