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치과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쓰면서도 웅장해지네요. 저는 이것보다 더 도전적이고, 결정적이며 아름다운 한 해의 마무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약 5년간 (아니 어쩌면 평생) 도망다녀온 치과 치료를 시작했다는 것. 그것은 제가 올해를 멋지게 마무리하기로 작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행복 편지를 쉬는 동안 저는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오키나와에 가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런 담대한 도전을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키나와에서 저의 십수 년 치아 동반자 금니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치실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정말 아무런 신호 없이 댕그랑, 금니가 세면대 속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옆에 있던 딸 아이가 보더니 “돈”이라고 했습니다. 동전인 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그래 딸아, 이건 진짜 돈이다, 돈. 내가 앞으로 쓸 돈. 저는 속으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속으로만요.
한국에 돌아와 귀한 금니를 손에 꼭 쥐고 치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금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금니의 이웃 어금니.
그 애가 문제라는 건 저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늘 시리거든요. 항상 시리기 때문에 시리기 전의 느낌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괜찮았는데, 의료인의 눈에 비친 제 이는 그렇지 않았나 봐요. 그 자리에서 신경 치료를 권유했고, 갑자기 이의 1/2을 댕강 날려버리고 왔습니다.
12월이 가기 전에, 2022년이 가기 전에 인생의 숙제 같았던 치과 치료를 시작했더니 저는 뭐랄까 강해진 느낌이 듭니다. 썩은 부분은 다 도려내 버리고 반짝거리는 도자기로 무장할 저의 어금니만큼이나 정신도 같이요.
이런 시작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제일 하기 싫고, 가장 무서워했으며, 피할 수 없다면 영원히 피하고 싶었던 일을 어라라? 갑자기? 이렇게 떠밀려서 합니다. 사실 엄청 무서웠지만, 누군가에게 끌려가서라도 치료하고 싶었어요. 영원히 시한폭탄을 이에 안고 살 수는 없으니까.
2022년을 아쉽지 않게 보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내주지 않는다고 오래 머물러 주지도 않고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도 아니지만요.
올해 뭔가 이뤘을까 떠올려보았을 때 그래도 체크리스트에 동그라미 치고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저는 충분합니다.
내년에는 찬물도 실컷 벌컥 벌컥 마실 겁니다.
2022년 12월 23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