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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Nov 21. 2020

초콜릿이 녹을 땐 슬픔도 녹아내려 #5

다섯 번째 피스 #달콤한맛


고백하자면 이 글은 나의 첫 번째 초콜릿 콘텐츠가 아니다. 페이스북이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던 2010년대 초반. 제대로 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법도 모르던 풋내기 시절 무턱대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 적이 있다. 초콜릿이 주제였다. 페이지 이름 역시 주제에 충실하게 딥촉 dip choc이었다.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예전 작업물을 들여다보다 숨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당시에는 분명히 감성충만 낭만가득 이미지였지만 다시 보니 발로 만든 것 같은 창피함이 온몸을 덮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딥촉 페이지는 어설픔과 어색함 덩어리였다. 셔터를 누르기 전 그 흔한 필터 하나 씌우지 않고, 영혼을 갈아 넣어 작품 같은 사진을 만들어내지도 않았다. 이미지 보정을 해도 밝기, 대조, 온도조정 정도. 카드뉴스는 사진이 안보이거나 글이 안보이거나 양자택일. 콘텐츠의 시작은 눈 앞에 있는 초콜릿, 초코칩 쿠키, 초코 브라우니, 초코 빙수를 찍어 올리기. 끝은 간단한 맛 표현, 가격 소개였다. 가끔은 다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보내주는 주변 맛집 사진들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어설퍼도 참 많이 어설프던 시절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대략 6개월가량 페이지를 운영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볼품없었던 실력으로 이끌어갔던 페이스북 페이지가 지금까지 해온 모든 SNS 활동 중에 팔로워 수 1위라는 것. 페이스북 외에도 유튜브, 아프리카tv,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운영 기간도 제각각이고 목적도 모두 다르지만 플랫폼 별 대략적 팔로워(구독자) 수는 ▲페이스북 5,000 ▲유튜브 2,400 ▲아프리카tv 1,000 ▲인스타그램 900 순이다. 수치를 적으면서도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여전히 제작능력 자체가 뛰어나다는 평을 스스로에게 주지는 못한다. 모두 합해도 수치 자체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포토샵도 제대로 못 다루던 21살의 나와 비교하면 프리미어 프로, 인디자인 작업도 무리 없이 해내는 28살의 나는 7단계 이상 능력치 강화를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제작의 문제가 아니라면 기획의 문제, 

기획의 문제도 아니라면 확산의 문제.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를 꼽자면 ‘꾸준한 재미’ 일 것으로 추측해본다.




처음 초콜릿 콘텐츠를 만들던 나는 마냥 들떠 있었다. 무엇이 잘 될지 재지 않았고, 돈이 되는 쪽이 어디인지 따지지 않았으며, 최적의 업로드 타이밍을 분석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맛을 만날 기대를 안은 오늘을 가득 채우는데 집중했다. 하루는 친구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을지로 일대의 초콜릿 가게들을 여행했다. 한 가게의 사장님이 선물로 주신 오렌지 필 초콜릿의 맛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또 하루는 마트 초코칩 쿠키의 1인자를 가리겠다고 칙촉과 촉촉한 초코칩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속> 윌리 웡카같은 엉뚱한 방법으로 매일매일 초콜릿과 함께 즐거웠던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언제나 즐겁다. 괜찮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도 갖춰져 있다. 능력치가 레벨업 하는 동안 디자인 툴과 함께 분석 툴을 다루는 법도 세트로 익히게 됐다. 잊고 지냈던 과거지만 아직 과거 이상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해왔던 다른 콘텐츠들도 모두 즐거움이 끝이 없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꾸준한 재미’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거에 If를 붙여 무엇하겠냐만 체계적인 방법을 알았더라면 첫 번째 도전이 훨씬 더 원대해졌을 것이다. 아직도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붙어 다니는 ‘초콜릿’이 주인공이니까. 관점을 바꾸어 보았다. 다시 초콜릿을 ‘주인공’으로 만들면 가능한 것 아닌가? 



자연 앞에 놓인 인간의 나약함에 한없이 무기력했던 2020년.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주인에게 다시 왕관을 돌려주기로 한다. 공기처럼 늘 함께이기에 오히려 알지 못했던 지속 가능한 아이템. 글을 쓰지 않아도, 영상이나 이미지로 제작하지 않아도 놓지 않을 존재.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과의 거리가 멀어져도 언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견고한 녀석.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속 천송이(전지현)의 대사가 떠오른다.

“인생에서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거, 

한 번씩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느님이 주신 큰 기회가 아닌가 싶다.”


진아의 초콜릿 왕국은 이제, 멈추지 않고 돌아갈 것이다. 



© JINA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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