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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Feb 25. 2024

너의 이름은 맥시

꼬똥 드 툴레아, Merci!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만큼의 책임을 맡고 감당하겠다는 의지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중년의 미혼 여성인 난 그 책임을 누군가와 나눌 수도 없으니, 온전히 내 몫이다.


어릴 적부터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꿈만 꾸어왔으나,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의 보호자일 테고, 그래서 기다림에는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 공존한다. 견종을 선택하고 브리더에게 처음 연락한 것은 4년 전 즈음이었고, 마음을 정한 건 9개월 전 즈음이다. 예약 당시 1년 반 후에 선택권 연락을 준다고 했는데, 데려오는 시기가 당겨져 예상치 못함에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며, 조급함과 기대감도 더해졌다.


나의 MBTI는 INTJ이다. 쓸데없는 상상을 늘 하는 N이며, 닥칠 수많은 변수들을 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마음의 준비와 계획의 시간이 필요한 J이다. 반려동물도 없으면서 왜 이름 고민을 꽤 오랫동안 했을까에 대한 설명의 시작이다.

대학원을 다닐 때 존경하는 교수님의 반려묘의 이름은 파블로였다. 교수님이 좋아한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이름에서 따온 사랑스러운 고양이, 파블로를 2009년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인사 차 방문한 교수님 댁에서 마주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으로 선택한다는 발상이 멋져서, 15년 전, 그 당시 ‘만약 내게도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이란 가정하에 수컷이라면 ‘렌조’라고 불러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이테크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 렌조 피아노/Renzo Piano란 이름 자체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건축가의 외모 또한 말쑥한 데다, 1937년생이신데 여전히 정정하고, 왕성히 활동 중인 점도 좋았다. 그의 건축을 보면 차가운 소재이지만 정갈하고, 청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 처음 뉴욕에 갔을 시기인 2006년에 Morgan Library and Museum을 증축, 레노베이션 한 건물이 대중에 공개되었다. 더 유명한 휘트니뮤지엄 보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는 이 건축물에서 마음의 안식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3년을 머무는 동안, 내겐 힐링의 공간 중 하나였다.


그렇게 막연히 남자아이 이름을 마음을 오래 담아 두고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2019년 여름 오빠가족이 토이푸들 수컷, 모찌를 데려왔다. 내가 동물을 좋아하니, 여행을 좋아하는 오빠가족의 반려견을 꽤 빈번하게 돌보게 되었다. 성견이 되었을 때 3kg을 예상한 모찌는 6.5kg이 되었고, 장롱면허에 뚜벅이인 난 이동가방으로 안고 다니며, 더 큰 강아지가 가족이 된다면 나의 부족한 체력이 문제가 되겠구나를 깨달았다. 물론 모찌가 내 반려견은 아니지만, 여전히 자주 놀러 올 텐데 동성의 동물들은 서로 질투하고, 경쟁을 할 확률이 높다고 하고, 꼬똥은 푸들보다 훨씬 덩치가 크니 아무래도 체구가 작을 확률이 높은 암컷이 낫겠지? 라 판단했다.


그러면 어떤 이름이 좋을까? 다시 고민의 첫 페이지로 돌아간다. 꼬똥 드 툴레아라는 견종은 마다가스카르의 국견으로 목화솜/코튼이란 뜻을 가졌다. 견종 이름 자체가 프랑스어이니깐, 불어 중에서 고민을 해볼까? 부르기도 인지하기도 쉽게 2음절이면 좋겠다. 프랑스어 수업을 A2까지 수강했으나, 그 마저도 모두 말끔하게 기억에서 사라져, 아는 단어가 바닥이긴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Merci이다.


매일 부를 때마다 감사함을 가지며 부를 수 있겠구나. 원어에 가깝게 발음한다면 2음절이다. 소리가 예쁘고, 글로 적었을 때 형태도 예쁘다. 일반적인 한국어 표기법인 ‘메르시’는 발음이 어렵다. ‘ㅎ’ 발음을 빼고 적어, ‘맥시’라고 기입한다면 다른 사람도 어렵지 않은 이름이겠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이름일 뿐이지만, 의미는 나만 부여하는 것으로 족하다.


Merci is the most common way to say “thank you” in French.

Maxi/ Maxie means “the greatest” in Latin.


소리가 유사한 영어이름의 어원도 거창하지만 나쁘지 않다. ‘파리의 마레지구의 편집숍, Merci 매장도 참 예뻤는데, Merci라고 적힌 의류나 소품도 마음만 먹으면 구입할 수도 있겠네.’ 라며, 마멜의 Merci 매트를 주문했다.

Mochi & Merci의 이니셜을 생각하면 M&M'S 초콜릿이 떠올라서 귀엽다.  푸들과 꼬똥, M&M’S로 일러스트를 그려도 귀엽겠다.

“Merci야, 내가 처음 선택한 가족이구나. 나의 가족이 되어줘서 고마워. 처음이라 서툴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가족과 친구가 되어줄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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