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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플러그 Jul 06. 2022

영어 이름, 꼭 만들어야 하나요?

외국 생활, 한 번쯤 생기는 질문

"한국인은 왜 영어 이름을 써? 다른 나라 아이들은 자기 원래 이름 그대로 사용하는데, 한국인은 굳이 영어 이름을 쓰더라."


아일랜드 어학연수 시절, 어학당 B 선생님의 사모님이 한국 유학생 몇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셨다. 그때 잠시 앉았던 B 선생님이 했던 말. 단순히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거였다. 그러나 때로는 수업 중 굉장히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 그였기에 저 말 안에는 '한국인은 참 유별나다.'라는 말이 생략된 것처럼 들렸다.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건방지다고 여겼다. 한국인과 결혼한 것을 보면 한국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가진 것은 아닐 것도 같은데, 정말 뭘 몰라서 저렇게 묻는 건지. 뭐라고 답해야 하나.



감사하게도 호주에 파견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약 3개월간. 그때 내가 썼던 영어 이름은 Judy. 그 당시에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영어권 국가에서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 이름인 Judy를 내 영어 이름으로 정했다. 나중에 파견을 함께 갔던 분들이 "주~디" (주둥이를 이르는 경상도 방언)라고 놀리기에 그제야 내가 이름을 잘못 정했구나 했지, 영어 이름 사용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함께 갔던 분들이 다들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고.


다만 갸웃했던 것은 있었다. 베트남에서 온 친구가 베트남식 자기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독일, 에콰도르, 그리스 등지에서 온 친구들도 그대로 사용한다. 비슷한 언어권이라 본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베트남의 언어는 좀 다르지 않나? 물론 완전히 그대로 사용하진 않았다. 앞부분만 짧게 끊어 Thao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다른 베트남 친구도 자기 이름 중 발음하기 쉬운 부분만 떼서 Min이라고 소개한다. 신선했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이니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이름을 줄일 수 있구나. 그럼 나도?



호주 연수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원어민 업무 담당자가 되었다. 영어 원어민에게 내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데, 호주에서 익혔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영어 이름을 쓰는 게 참 유별나게 느껴지기도 했다. 멀쩡한 한국 이름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바로 이름 뒷글자만 따서 'soon'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see you soon, soon!"이라고 하면 기억하기 쉬울 거라 했다.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니 잘못 기억하지 않도록.


내 이름은.. 심지어 한국인도 정확하게 발음해주지 않는다. 특히, 경상도인들이 갱수이라고 부르는 내 이름을 외국인이 어떻게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나는 여권을 만들 때 알파벳 한 자라도 줄이기 위해 일부러 Gyeong이 아닌 Gyung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여권을 보여주면 공항에서는 나를 "규-웅-순"이라 부른다. 잘못 불리는 내 이름을 듣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어떻게 발음하나 가만히 지켜보기도 하고. 그러나 이름을 읽거나 부를 때 곤혹스러워하는 그들을 계속해서 보느니 아주 짧고 기억하기 쉽게 "See you soon, soon."으로 내 이름을 각인시키기로 했고, 이후는 내 영어식 이름은 SOON이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도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랬기에 B 선생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면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왠지 그 성격이라면 했을 법하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내가 해 준 답은 이러하다. 한국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우니 너희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그랬더니 B가 말한다. 발음하기 어렵더라도 굳이 영어권 아이들에게 그렇게까지 맞춰줄 필요가 있느냐,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그들이 너희들 이름을 발음하는데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옳은 것이 있겠나? 다 스스로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하면 될 일이지. 다만, 한국 이름은 촌스러운데 반해 영어 이름은 훨씬 멋있어 보인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유가 아니라면(한국 용산 추모 공원은 촌스럽고,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는 멋있지 않냐는 영어 사대주의 사고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도 내 한국 이름을 그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줄이거나 살짝 변형시켜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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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발.

스타벅스 주문 시, SOON이라고 말한 내 이름을 어떻게 듣고 쓰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누구는 나를 고소한단다. 하하.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일랜드에 사는 동안 스타벅스에 많이 찾아가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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