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힘이 필요해
시험 전이면 언제나 악몽을 꿨다. 거의 항상 쫓기는 꿈이었던 것 같다. 어떤 꿈에서는 친할머니가 갑자기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더니 나를 쫓아왔다. 그냥 쫓기기만 했다. 이유도 없이. 무엇 때문에 이런 악몽을 꾸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사 시험을 치르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지를 제출하는 악몽을 꾸고서야 알았다. 그동안 시달렸던 악몽은 바로 시험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음을.
그렇다. 나는 알게 모르게 시험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시험 전에는 늘 걱정이 앞섰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혹시 시험 범위를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공부 안 한 데서 시험 문제가 나오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에 시달렸다. 게다가 내 점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점수 이상 여부를 확인한답시고 모든 학생이 다 듣는데서 1번부터 마지막 번호까지의 점수를 불러줬다. 가나다 순으로 정하는 출석번호로 인해 강 씨에다 ㄱ으로 시작하는 두 번째 글자를 가진 나는 언제나 1번이었다. 학급 친구들은 1번 점수를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가 없는 환경인 것이다.)
학창 시절 이후로는 시험 치를 일이 거의 없을 거라 여겼지만, 그 이후로도 임용 시험, 1정 연수 시험, 컴퓨터 자격증 시험, 토익 시험, 한국사 시험, 거기다 최근 IELTS까지 시험은 계속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긴장과 걱정도 계속되었던 것. 다행히도 학창 시절 때만큼의 스트레스는 아니었는지 그때와 같은 악몽을 꾸지는 않았다. 다만 소화불량으로 인한 입맛이 없어지는 증세만 생겼을 뿐. 내가 선택한 시험이었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내 점수가 공개적으로 불릴 일이 없음에도, 여전히 공부하지 않은 데서 시험 문제가 나올까 봐 전전긍긍했던 탓이다.
늘 시험 전 불안에 사로잡혔던 내가 처음으로 평안하게 치른 시험이 있다. 바로 2016년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치렀던 IELTS.
그때 나는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 유학휴직을 신청하기 위해서 평균 7.0을 넘는 점수가 필요했다. 정말 간절했기에, 일과 운동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했다. 함께 파견 온 분들이 주말을 이용해서 베트남 곳곳을 여행하는 사실이 무척이나 부러웠지만 나는 내가 바라보아야 할 곳만 바라보기로 했다. 간절한 만큼 열심히 공부를 했고, 동시에 간절한 만큼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도 많이 되었다. 내가 투자한 모든 시간이 허사가 되어버릴까 봐. 화상 수업으로 나의 쓰기 수업을 담당해주신 선생님에게 내 고민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분이 충분히 잘하고 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더 돕겠다 하심에도 나는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험일이 가까워질수록 역시나 예전처럼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했다. 어느 날 '제가 원하는 점수를 꼭 얻게 해 주세요! 제발이오. 제발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던 중 문득 깨달았다. 내가 불안해하고 시험에 앞서 두려움이 가득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너무 연연하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일뿐이다. 시험 문제가 어떻게 나오든, 내가 연습한 데서 나오든 그렇지 않든 그건 출제자의 손에 달렸다. 채점자가 말하기, 쓰기 점수를 어떻게 매기든 그건 정해진 기준에 의한 그의 재량이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 내 통제권 밖의 범위에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내 통제를 벗어난 일로 인해 늘 초조했고, 불안했고, 걱정이 많았고, 시험에 앞서 전전긍긍이었던 것.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걸 기도를 통해 깨달았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이렇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것으로 평온해질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했다.
그 기도 후에는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도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은 전혀 없었다. 그저 시험일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잘 활용하고자 애썼다. (아, 물론 스피킹 시험 전에 살짝 긴장하긴 했지만, 그 자리를 회피하고 싶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혹시나 어떤 일을 앞두고 걱정이 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분이 있다면, 그 불안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분야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비우고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곳에 전력을 다 한다면 본인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적어도 본인의 실력은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들도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덧.
결과를 말하자면, IELTS는 예상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었다. 감사히도 휴직제도를 통해 유학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영국에서 정말 공부하고 싶었던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다음에 IELTS 시험을 치르게 된다면 그때도 그 시험을 준비하는 것에만 절대적으로 내 시간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