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넌 뭘 원해?
영국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받았던 IELTS 점수 덕에 일이 쉬이 풀리고 있었다. 원했던 대학으로부터 오퍼 레터를 받았으니 이제는 휴직 신청만 내면 되었다. 약 8년 전부터 '언젠가는 꼭 가고 말 거야' 하고 마음먹었던 일이 이제 곧 현실로 내 눈앞에 펼쳐질 참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생활인성부장교사로서 보직을 맡게 된 것. 사실 다시 말씀드렸어도 될 일이었다. 9월에 유학 휴직을 생각 중이니 재고해 달라고. 분명 나 말고도 그 일을 맡으실 다른 분은 계셨을 터.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대신 대학에 입학 연기를 요청했다. 그때는 이것이 책임감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게 두렵다.'는 속삭임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음 해, 그해에 입학하지 않으면 IELTS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한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과연 베트남에서만큼 집중해서 영어만 붙잡을 시간이 있을까 싶은 물음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내게 던진 또 다른 질문, '그럼 안 가면 어떨 것 같아?', 돌아온 답은 '평생 그 결정을 후회할 것 같아'. 그래서 관리자 분들께 미리 말씀드렸다. 9월에 유학 휴직을 신청하려고 한다고. 그리고 학기 중에 유학과 관련한 많은 일을 진척시켰다. 학비 입금, 기숙사 예약, 항공권 예약, 영국 비자 신청까지. 그리고 이제 곧 있으면 떠날 참인데...
다시 점점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사실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도 모른다. 나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고, 나 또한 아는 사람이 없다. 완전히 無인 상태에서 모든 관계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곳이다. 반면, 지금 내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땅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내 주변에는 익숙한 내음과 말투로 가득하다. 편하고 안락한 이곳을 떠나 불편한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은 '안 가기로 한 결정을 평생 후회할 것 같다'던 생각을 '왜 나는 가기로 결정했을까?' 하는 자책으로 바꾸어 버렸다. 유학 잘 다녀오라며 만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사실은 가는 게 두렵다 말하며 왈칵 눈물을 쏟을 정도로 무서웠다. 유학을 앞둔 그 시점에는...
그러나 영국 땅에 발을 딛고 일주일 후 나는 굳세게 살았다. 안 가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다는 마음을 따라 영국 땅에 와 버렸다. 이미 영국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는 두려움에게 자리를 내어줄 순 없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그대로 던지는 일뿐이다.
감사히도 한국에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감사로 가득한 인연을 잔뜩 맺고 왔다. pre-sessional course에서 일본에서 고등학교 교사 일을 하다 온 A, 또 감사히도 같은 전공을 하게 될 한국인 동생 H, 그리고 그녀의 신랑이자 석사 동지 J를, 현지 교회에서는 유학생들에게 사명의식을 가지고 늘 친절하게 다가온 영국인 N과 R을, 영적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가게 된 현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international relationship 코스에서는 박사 과정을 밟으러 온 한국인 동생 M, 학사 과정을 밟으러 온 한국인 동생 S를, 수요일마다 하던 가정 예배에서는 D와 F를, 같은 기숙사를 사용한 중국인, 태국인, 일본인, 콜롬비아인 친구를. 게다가 하던 일을 떠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 분명한, 조금은 트인 시야를 유학생활을 통해 얻어왔다.
밥 프록터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밟기 시작하고 새로운 뭔가를 추구할 때, 그때마다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릴 것이라고. 그러나 이때 분명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불편하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나아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라고. 안주하는 사람에게서는 불편함이 없다고. 편안함에 옴짝달싹 못 하게 갇히게 되는 순간 그 어떤 성장도 발전도 없다고. (밥 프록터, 밥 프록터 부의 확신, pp. 129-130) 그리고 한 마디로 정의한다.
편안함은 성장의 독이고, 불편함은 약이다.
(밥 프록터, 밥 프록터 부의 확신, p. 129)
누구나 처음을 만난다. 익숙하지 못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니, 그 처음은 누구에게나 불편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불편한 과정이 두려워 익숙한 곳에서 멈춰버린다면 성장 또한 멈춘다. 아니, 너무나 급변하는 이 사회에서 정지란 퇴보를 의미한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주인가, 성장인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대로 있을 것인가,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