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아웃 사건, 그리고 교사에 대한 고찰
2006년, 명왕성이 더 이상 태양계에 속한 행성이 아니라는 학계의 발표가 있었다. 그 발표로 인해 그제야 교사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왜?"라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았다. 던져주는 지식을 그저 받기만 했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교과서에 수록된 지식에 대해 그다지 큰 의문을 품지 않았다. 세상에는 방대한 양의 지식이 있다. 그래도 절대불변의 진리를 고르고 골라 어린이들의 수준에 맞게 교과서에 담아놓았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그랬기에 학생들에게 이 지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주로 했다. 마인드맵을 적용해보기도 했고, 파워포인트로 엄청난 양의 슬라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초등교사의 보물창고 인디스쿨 자료 또한 많이 활용했다. 한 예로, 스티로폼 공을 이용하여 태양계 행성을 만들었다. 스티로폼 공의 크기별로 행성을 정하고, 색칠하고 꾸민다. 행성의 크기를 비교하고,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순서를 외우게 했다.
그런데 2006년에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교과 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최초 발견자의 국적, 새로운 증거 발견, 과학계의 합의에 따라 교과서에 실린 과학적 사실도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과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사건은 내게는 그저 지난 역사에서나 일어난 일이었다. 즉, 종교재판이 일어나던 과거에나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겼다. 그 사건 이후로는 많은 과학자들의 발견으로 인해 재정립된 지식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상한 논법이긴 하나) 이에 의거 교과서에 수록된 잘 정선된 지식은 절대 진리이니 큰 의문 없이 가르쳐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왕성 아웃 사건으로 내 믿음 체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 절대 진리가 아닐 수 있구나!'
이 사건 이후로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깊이 고민했다. 아니, 방황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내가 전달하는 지식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언젠가 변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지식 전달자로서 기반을 두고 있던 것이 무너졌다. '그렇다면 이제 난 교실에서 뭘 가르쳐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되레 엉뚱한 생각만 들었다. '애초에 학교라는 제도가 왜 생겨난 걸까? 생각과 가치관이 다양한 사람들을 어릴 때부터 한 장소에 모아 두고 획일적인 지식과 일방적인 사회규칙을 강요하는 학교, 사회는 어째서 이렇게나 인위적인 공간을 만든 걸까?'와 같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자꾸만 학교라는 제도에 대한 회의로 귀결되니 교사로서 참 많이 흔들렸고 방황했다. 가르치는 내용에도 확신이 없었고, 교사라는 직업에도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아직도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실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찾았다. 명왕성 아웃 사건으로 인해 교과 지식에 대한 확신은 약해졌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하고 답했던 고뇌의 시간을 통해 학생의 사고력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신은 강해졌다. 그렇기에 예전의 나, 지식 권위자 노릇은 내려놓고 학생들이 어떤 문제에 대해 사고를 확장할 수 있게 하고자 자꾸만 질문을 던지려 애쓰는 요즘이다. 더 이상은 어릴 적 나처럼 마주치는 지식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수용하기만 하는 학생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