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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Jan 20. 2021

나를 구하는 게 세상을 구하는 거야

영화 <레이디 버드>의 귀여운 이기주의자 19살 크리스틴

19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세상이 자신을 배신하는 거라 좌절하는 귀엽게 어리석은 나이 


영화 <레이디 버드>는 남의 일기장 같은 영화입니다.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주인공이 가족, 친구, 이성 그리고 고향에게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기까지 겪는 오만가지 흑역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이디 버드 본인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보고 있는 (그 시기를 지난) 관객들과 몇 년 후의 레이디 버드는 "그 시절이 좋았지"라고 추억하죠. 왜냐하면 온 세상에 나밖에 없는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 아닐까요?


주인공 크리스틴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해요. 평범한 소시민, 잘난 것 없는 외모, 하위권 성적까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자기 자신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세상에 반항하는 쿨한 남자애와 어울리기 위해 나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는 정도? 잘 나가는 일진 무리와 어울리기,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동네에서 벗어나 도시의 학교로 진학하기, 파티퀸이 되어 오늘의 주인공 되기 등 레이디 버드가 바라는 꿈들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단짝 친구 외면하기, 집안 형편 생각 안 하고 무작정 원서 내고 보기, 그나마 있는 엄마 돈 탈탈 털어 창고형 할인 마트에서 제일 괜찮은 옷 걸쳐 입기.


왜 그렇게 열심히 - 다시 말해 - 이기적으로 구는 걸까요? '레이디 버드'에겐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나밖에 없거든요. 사춘기 19살에게 '나' 말고 더 중요한 건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원하는 것들에 예민하게 촉각이 곤두서는 시기, 자아가 풍선처럼 부풀어 시야를 가리는 시기, 그래서 나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기,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의 문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상을 구하는 슈퍼맨적 진지함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한편 "이게 최선이면 어쩌지?" 걱정하는 레이디 버드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어른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이기적 19살 '레이디 버드'를 응원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인생의 가장 짧은 구간을 최고 속도로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관객이자 어른인 우리는.. 그 호시절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알고 있죠. 또 '레이디 버드'가 가진 고민들은 별거 아니다(=최우선 순위가 아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감정에 충실하고, 매 분매초를 진심으로 살고 있는 레이디버드를 부러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감정을 숨기고, 사람과 타협할 줄 아는 어른이 자아를 드러낼 순간은 웃프게도 많지 않기에, 누구나 '레이디 버드'적 과도기를 겪어봤기에,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레이디 버드'의 이타적 성장을 기대하며 '지금 마음껏' 귀여워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씬 크리스틴이 눈물을 또륵 흘리는 장면에서 헛헛한 마음마저 들었던 건 이제 크리스틴이 어른으로써 삶을 살아가겠구나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를 구하고 세상을 구한 건 '나'가 아니라 친구와 엄마, 가족이었다는 진리. 그리고 지긋지긋하기만 했던 고향이 결국 나를 품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소하고도 중요한 찰나를 지나게 된 것이죠. 다시는 갖지 못 할 10대 나름의 진정성 넘치는 자아를, 갓 어른이 된 레이디 버드 역시 그리워했겠죠?


영화 <레이디 버드>는 시시콜콜하고 멜랑꼴리한 그 무렵의 사춘기 감성을 생생하게 그려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모두가 겪었을 저마다의 사춘기 시절의 단 편을 영화화한 것 같아요. 


우린 모두 다 열심히 인생 삽질하며 흑역사를 채굴하던 꼬맹이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사춘기 19살이 주변에 있다면 어깨 한 번 토닥토닥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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