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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진 크리에이터 Apr 27. 2022

MBC <내일>때문에 깊어진 한숨...

한국 판타지 유감 

누가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SF와 판타지를 사랑하고 ‘씨’를 뿌려온 프로듀서라고 답한다. 작품도 이 두 장르를 중심으로 했고 판타지 컨벤션이나 웨타아카데미를 통해 나름 소소한 ‘씨’를 뿌려왔다. 

최근 내가 사랑하는 장르에 찬물을 끼얹은 작품이 있어서 한숨이 깊어졌다. 

나의 최애 두 장르 가운데 그래도 한국 관객들이 보다 친숙하게 느끼는 장르는 판타지이다. 

영화나 TV 시리즈에서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많은 히트작이 나오진 않았을지라도 한국인의 문화 DNA가 이를 훨씬 친숙하게 느낀다. 

최근 한국 영상산업을 떠받드는 스토리의 원천인 웹툰과 웹소설만 봐도 판타지의 비중이 실제로 훨씬 높다. 

또한 이제 막 성장 중인 SF 장르와는 달리, 판타지의 영역에서는 꽤 여러 편의 성공작들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쌍천만의 <신과 함께>  시리즈는 물론이고 TV 시리즈에서 단연 걸출한 <도깨비>를 비롯해서 <경이로운 소문>까지. 물론 <아스달..> 같은 정반대의 예도 존재한다.

그래도 SF에 비해서는 경험치도 많이 쌓여있고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레퍼런스도 있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내일>과 같은 작품에서는 우리 업계에 쌓여있는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거나 이해하고 있는 흔적이 안 보이는 걸까?

(충실한 복기가 성공으로 가는 첫걸음일 텐데도.)     


흔히 특수 장르라고 하는 SF와 판타지는 그 장르를 대하는 관객들의 기대 지점이 타 장르와 다르다. 인생사의 굴곡을 통한 깊은 공감을 느끼고자 하는 관객은 다른 장르의 작품을 본다. 

SF는 SF 다워야 하고 판타지는 판타지로써의 관객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물론, 이쯤에서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이 판타지 세계로 풍덩 뛰어들어(<반지의 제왕>처럼) 제작할 여건이 되지 않으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론 말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범하는 실수가 드러나 있다. 

현실과 판타지는 섞인다기보다는 ‘만나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이유에서 판타지 세계를 접촉하게 된 ‘주인공’을 통해서 관객은 판타지 세계와 만난다. 

그 판타지의 세계를 관객이 깜짝 놀라서 매혹당하도록 그려낼 버젯과 상상력, 기술력이 아직 없다면 그 세계 전체는 말대로 관객의 상상 영역으로 남겨두고 접촉면을 잘 그려내는데 집중해야 한다. 

그 작전을 잘 구사한 것이 <도깨비>이다. 우리는 주인공 소녀가 만난 도깨비와 저승을 알 뿐 그들이 속해 있는 그들의 세계는 모른다. 하지만 도깨비와 저승이가 충분히 신비하고 남다른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에 기꺼이 그들의 세계와 서사를 즐길 수 있고 그들의 배경에 가려진 판타지 월드 전체는 관객의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서사의 구조상 저승을 본격적으로 그려야만 했던 <신과 함께> 시리즈에서도, 수많은 노력과 TV와는 비교할 수 없는 버젯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 비주얼에 대한 찬사를 받지는 못했다. 

<내일>이 그려내고 있는 판타지 월드(옥황상제가 등장하고 저승의 각 파트장들이 근무하는 건물 등)가 경이로움을 주지 못하고, 판타지 장르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할 정도의 그저 그런 비주얼과 설정만을 보여준다면 그 세계에 대한 흥미가 생길 리 만무하다. 

또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만나게 될 판타지 세계에 속한 인물들이 일상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이라면 주인공의 모험은 하등 부러울 것도 지켜볼 이유도 없어지게 된다. 옥황상제나 염라대왕이 등장하지 않았던 <도깨비>의 저승이와 천년의 형벌에 시달리는 도깨비가 왜, 어째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도 신비로운지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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