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통해서 배급된 <킹덤>이 글로벌 관객의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형 좀비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나올 지경이다. 영화라기엔 길고 미드의 일반적인 배급 편수에 비하면 짧은 넷플릭스 배급의 6부작 <킹덤>이라는 모험적인 시도가 가능했던 밑바탕에는 천만 좀비영화 <부산행>의 성공이 있었을 것이다.
<부산행> 이전까지만 해도 독립영화와 저예산 실험영화 외에 상당한 예산의 좀비영화에 한국의 4대 배급사가 투자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한국영화계는 이미 익숙한 장르에 심각한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미 검증되었고 제작과 마케팅에 노하우가 쌓인 장르를 변주하는’ 안전한 길이 있는데 어찌 안개 속으로 걸어들어 가야 한단 말인가?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 영화를 주류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을 선택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수십년간 영화와 드라마로 좀비라는 소재를 다루어 왔고, 한국의 젊은 관객들은 이미 미국 좀비의 진화를 함께 겪어왔지만 그들만을 믿기에는 불안요소가 많았을 것이다. 그 결과 전체 플롯은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재난 영화의 구조를 따르되 그 안에 좀비라는 소재를 녹여 넣었고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대로 대성공이었다. 비록 <부산행>의 한국 좀비가 글로벌 좀비영화의 진화 과정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는 모호하더라도 말이다. 한국 영화에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들어와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부산행>을 바탕으로 좀 더 개성 있는 한국 좀비로 진화한 것이 킹덤이라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경우가 <창궐>이다. <참궐>의 참혹한 실패를 목도하였기 때문에 <킹덤>이 이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면 아마 당분간 누구도 또 다른 좀비영화를 시도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염력>은? 초능력이라는 낯선 소재를 한국적으로 소화해보려는 시도는 <부산행>의 경우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셀 수 없는 약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대형 망작이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지는 것은 다른 글의 몫으로 두고 여기서는 장르의 소화 문제만을 지적하고 싶다. <부산행>이 재난영화의 플롯을 가지고 가면서도 좀비영화를 즐기는 젊은 관객들의 관습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면 <염력>은 그 반대였다. 초능력이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관객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관습의 작동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떤 면에서는 한국영화가 다루기에 좀비보다 더 어려운 소재가 초능력, 즉 슈퍼히어로물이다. 그동안 한국영화가 보여줘 왔던 디테일한 현실 속으로 데려오기까지 더 공들인 연착륙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한국 관객들은 미국 좀비보다 미국의 슈퍼히어로물을 훨씬 많이 보았고 그 대부분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인 비주얼로 승부를 하는 현란한 작품들이다. <염력>의 실패 지점에 현재 한국영화계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김용하나 최동훈 같은 대표 감독들이 SF를 표방하는 프로젝트들을 발표하고 있고 <신과 함께>의 성공을 잇는 판타지를 기획하기도 할 것이다. 한국영화의 다양화를 바라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성공과 실패 역시 <부산행>과 <염력>의 사이에서 판가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