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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May 01. 2021

말레이시아 아이들은 한국에 얼마나 진심일까?

말레이시아 교단 일기: 환경미화 편



  말레이시아에서 한류의 인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단적인 예로 말레이시아는 TV 황금 시간대에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나온다. 아마 말레이시아 아무나 붙잡고 한국 드라마와 예능 5개씩만 읊어 보라 하면 아마 술술 읊을 거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북한, 고려인 제외)만 쓰는, 배우기도 어려운 한국어를 굳이 배우겠다고 하는 우리 애들은, 말할 것도 없다.(나는 지금 말레이시아 Secondary School-우리 나라로 치면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중이다.)


넷플릭스(*말레이시아 IP라 말레이시아 순위가 뜸)에서 상위 10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우리나라 콘텐츠들

 최근에 놀랐던 건 아이들이 한국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빠삭하다는 거였다. 라마단 휴일과 온라인 수업을 앞두고 있어, 이때 아니면 못할 것 같다는 직감에 교실 환경 미화 겸 한국 이해 활동들을 준비했다. 그 중 한국 캐릭터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기도 하고, 애들도 생소할 것 같아서 한국 캐릭터들을 협동 그림을 통해 소개하는 활동을 했다. (특히 고학년들은 전임 한국어 선생님들과 웬만한 것들은 해 봤을 것 같아서 안 해 봤을 만한 걸 하고 싶었다.)


이렇게 퍼즐 모양의 도안에 그림을 그리고 잘라서 협동 그림을 만들 수 있다. (퍼즐 도안 출처: 참쌤스쿨)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한국에서 만든 캐릭터들을 PPT로 보여 주며 혹시 아는 캐릭터들이 있는지 물어 봤다. 평창 올림픽 캐릭터인 수호랑과 반다비, 심지어 둘리까지 넣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거침없이 줄줄 대답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앉혀 놓고 물어 봤어도, 다 맞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텐데, 우리 애들은 정말 한국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외국인보다도 우리나라 것들에 무관심했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학생이 그린 수호랑. 평창 올림픽 캐릭터까지 아는 건 넘 감동이잖아!

  협동 그림을 그릴 때 우리 나라 아이돌 캐릭터도 그려도 된다고 허용해 줬는데, BTS의 BT21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아이돌들이 고유의 캐릭터들을 가지고 있어서 신기했다. 그래서 애들이랑 공감대 형성을 해 보겠다며, “이건 어느 그룹 캐릭터야?”, “이건 어떤 멤버 캐릭터야?” 이러면서 물어 보고 다녔다. 한 아이는 귀여운 양을 그리고 있길래 너무 귀엽다고 호들갑 떨면서, 어떤 멤버의 캐릭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내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거 BTS 진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얘가 왜 이렇게 당황하지...?’ 싶었다가 아차했다. 내가 애들한테 처음 자기소개할 때, ‘나는 아미이고, 진이 최애야.’라고 짭미 행세를 했던 게 떠오른 것이다.

짭미: 짭+아미(BTS 팬 이름) 애들이랑 친해져 보겠다고 사실은 별 관심도 없으면서 아미인 척한 것을 자조하려 만든 말

  

 기왕 짭미짓을 할 거면, BTS 생일은 못 외우더라도 멤버별 캐릭터 정도는 외우고 다녔어야 했는데! 역시 거짓말은 일을 항상 더 키운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며, 당분간 짭미짓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짭미인 걸 들키긴 했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수업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며,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과목 자체를 이렇게나 좋아해 주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에 반해, 내가 처음이라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들에게 노련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열정적이고 본인들을 위해 주던 선생님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항상 진심으로 아이들을 대해야겠다.(비록 짭미짓은 했지만 말이다.)


마지막은 활동이 끝나고 나면 저렇게 가지런히 교구를 정리하고 가는 기특한 우리 애들 자랑. 사랑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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