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기어코 기억이 된다_문자 좀 그만 보내 여름아!
절기상 백로를 관통하고 있다. 백로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라고 하지만 여름이 보낸 폭염주의보 안내문자는 오늘도 손목에서 울리고 정수리에서 흘렀다. 지지부진한 계절. 화분을 위해 한 점의 바람이라도 얻고자 매일매일 열어놓는 베란다 문이라지만, 방충망도 있는데 어디로 어떻게 들어오는 것인지. 침입자가 된 벌레에 소스라치며 하마터면 세스코를 신청할 뻔했던 여름이기도 했다.
미적지근한 바람, 끈적한 공기를 뚫고 휴가 없이 보낸 여름에 내가 제일 많이 한 일은. 집 근처 마트로 달려가 틈틈이 딱딱이 복숭아를 사 오는 일이었다. 그 일이 거의 유일한 낙(樂)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매일 덥수룩한 복숭아를 깨끗이 씻어 외피를 제거한 후 적당히 아삭하고, 은은한 단맛의 복숭아를 찬양하며 이 여름이 가길 간절히 바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낙은 낙이고 지긋지긋한 건 별 수 없지 않은가.
오늘도 한 낮 여름에 살다, 귀뚜라미 소리가 그윽한 가을밤에 도착했다.
이 밤에 냉장고 신선칸을 열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 같지만. 아끼다가 살짝 쪼글 해진 복숭아 몇 개가 우리 집 냉장고에서 시들어 가고 있었으니, 나는 그것을 담그고 여름을 해체(?) 하기 위해 칼을 들었다.
복숭아가 적당히 잠길만한 물에 (약 600ml) 건강 생각한다고 사둔 알룰로스를 거짓 조금 보태 양껏 (200g) 넣었다. 미온수에 넣어 먹으려고 사둔 비싼 프랑스식 천일염도 아기스푼만큼 넣어 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 껍질을 제거한 복숭아를 투척해 10분 정도 끓이다. 하얀 거품을 연거푸 제거한 후, 레몬즙 아빠숟갈 두 스푼을 추가한 후. 열탕하지 않은 유리병에 복숭아를 넣었다. 보통 오래 두고 먹으려면 열탕 소독은 필수지만,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다던 전설의 감자칩처럼 수제 복숭아조림 또한 그런 류의 것이다. 그러니 귀찮은 과정은 적당히 생략해도 좋았다.
복숭아가 돌아오는 여름을 기다린 지 2년째다. 그 자체로 온전히 즐겼던 23년과 다르게 24년 올해는 세 번째 제철 복숭아 조림을 만들었다. 좋아하면... 좋아하게 되면 응용하고 싶어 진다. (참외 피클이나, 유자 무처럼...) 집에서 만든 복숭아 조림은 냉장고 숙성을 거치면서 국물은 핑크색이 되고, 과육은 쫄깃한 젤리 식감인데, 복숭아가 영 그리워 못살겠을 때 사 먹는 값비싼 병조림과 그 차이가 확연하다. (핸드메이드 만세!)
이제 백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을 향해 바통터치를 준비 중이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진짜 가을이 왔으면, 가을 건너 겨울을 견디며. 봄과 여름을, 여름 안의 복숭아를 손꼽아 기다릴 수 있도록. 누릴 수 없어 간절한 마음이 되는 것들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