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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국화 Apr 16. 2024

그건 사랑이었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엄마는 가끔 어린 딸을 데리고 냇물이 있는 기슭으로 산책을 가곤 했다. 냇물 너머에는 사라진 마을의 터가 보였다. 엄마의 부모 형제와 이웃들이 학살당한 ‘그 밤’의 흔적이었다. 상처를 공유하던 남편마저 여읜 엄마는 아픔을 억누른 채 딸을 쓰다듬으며 웃어 보인다. 딸은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p.311)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의 ‘작가의 말’에는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p.329)고 쓰여 있다. 이 소설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통해 국가폭력에 맞서는 이들의 고통과 저항이 갖는 존엄함을 말한다. 이 작품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문학상의 외국 문학상 부문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였으며, 올 3월 초에는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서울에 사는 40대 여성 작가인 ‘경하’이다. 그녀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책을 쓰는 과정에서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이후 이어진 우울감과 심리적 외상으로 인해 그녀는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책이 출간된 후, 그녀는 기이한 꿈을 꾼다. 눈 내리는 바닷가에 심긴 검은 나무들과 봉분들. 세찬 파도는 점점 더 봉분들을 쓸어간다. 그 잔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경하는 그녀의 친구인 ‘인선’에게 제주 바다에 묻힌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먹을 입힌 통나무들을 심는 프로젝트 ‘작별하지 않는다’를 제안한다.

 

인선은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진  고향인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어느 날 경하에게 연락해 온 인선. 서울의 한 병원으로 지금 와달라 한다. 목공 일을 하던 인선이 전기톱에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녀는 경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제주 집에 홀로 남겨진 자신의 앵무새 아마를 돌보아 달라는 것. 경하는 곧장 제주로 향하지만, 폭설을 뚫고 간신히 도착한 인선의 집에서 아마는 이미 죽어있다. 단전과 단수로 인해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집에서 떨고 있던 경하. 그녀의 눈앞에 인선과 아마가 나타난다. 그들은 혼곤한 환상일까, 현실일까. 인선은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제주에서 보낸 지난 수년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선 역시 경하처럼 죽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선에게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했어. (...) 허깨비. 살아서 이미 유령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p.288)


제주에서의 시간은 인선에게 어머니 ‘정심’을 다시 보게 했다. 정심은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이자 유가족이다. 언니와 함께 그저 우연히 집단 학살의 화를 피한 정심은 겨우 초등학교 6학년 나이에 가족들을 찾으러 눈 덮인 시신들로 가득한 보리밭과 학교 운동장을 종일 헤맨다. 그러나 오빠의 시신만은 끝내 찾지 못한다.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p.95) 이부자리 아래 날카로운 실톱을 깔고 나서야 잠이 들면서도 악몽을 피하지 못했던 정심. 어린 시절 인선의 눈에 그녀는 ‘허깨비’ 같이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정심의 사후 인선은 정심이 오랜 세월 오빠의 흔적을 찾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 왔던 것을 알게 된다. 오빠의 마지막 행적으로 추정되는 곳은 제주가 아닌 뭍이었다. 경북 경산의 코발트 광산.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숨진 그곳은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유해들로 가득했다. 인선은 말한다. “엄마를 잘 몰랐어. (...) 지나치게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p.255)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 있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제주에서 경하 앞에 나타난 인선과 아마는 환상일까. 만약 그것이 현실이었다면, 인선의 부상과 아마의 죽음이 환상이었던 걸까. 그러다가 인선이 들려주는 제주 4·3의 이야기 앞에서는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던지며 우두망찰 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p.316) 이 이야기가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 비극이 차라리 한바탕 환상이었으면 좋으련만. 그 많은 생명이 오로지 절멸을 위해 스러졌다는 사실이 경하와 인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 속 어떤 장면들보다 가장 리얼리즘에 기반했다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가슴을 친다.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p.133)

     

물이 순환하여 눈이 내린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갖는 힘 역시 시간이 흘러도 진리로 남아 아름답고도 시린 감각으로 우리를 문득문득 찾아온다. 경하와 인선을 죽음에서 삶으로 꺼내어 준 것 역시 생명에 대한 사랑이었다. 제 마음이 다쳤을지언정 5월 광주를 써 내려가기 위해 펜대를 놓지 않았던, 그리고 다친 친구를 위해 죽어가는 새를 살려보겠다며 눈보라를 헤치며 제주로 달려간 경하. 베트남과 만주에서 온몸으로 역사를 통과한 여성들, 그리고 코발트 광산으로 향했던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을 끝끝내 쫓아가고야 마는 인선. 제주 4·3, 그리고 폭력과 재난과 같이 ‘도무지 현실 같지 않은’ 비극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의 상처와 투쟁. 그것은 모두 사랑이었음을, 그저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이 소설은 눈송이처럼 선득선득한 감각으로 우리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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