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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Aug 11. 2023

세 살쯤 되면서부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

세 살 버릇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공부를 다른 각도에서 심도 있게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에서 내가 잊고 살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자그마한 사이즈이지만 그래도 하나의 인간이라는 것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 놀라기도 한다. 우리 아들의 경우는 만 삼 세가 되면서부터, 36개월에서 40개월 사이에 부쩍 온전한 인격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을 이제는 온전히 전달할 수가 있고, 옷을 던져주면 혼자서 입고, 밥도 스스로 먹는 등 어느 정도의 독립성이 갖춰지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물리적으로 조금 편해지는 것보다 정신적인 자극을 주게 되는 것이 더 큰 발전이라 느껴진다.


1. 위로도 감동도 줄 수 있다


의사소통이 거의 100프로에 가까워지면서 아이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 역시 거의 완성되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전부터 가능했으나 표현의 전달이 다 안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아이라서 어떤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사회적 반응을 어른만큼 능숙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당시의 본인 기분이 훨씬 더 중요해서 남의 입장을 그만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을 이해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적이 몇 번 있었다.


”엄마 아까 낮에 자전거에 발 찌여서 아야해떠요?” 늦은 오후 카페에서 갑자기 무슨 소린가 했다. 몇 시간 전에 같이 산책하다 남편이 밀어주던 트라이시클 바퀴에 살짝 찍혔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땐 별 말 없기에 나는 아이가 못 보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다. ”엄마, 내가 아빠한테 엄마 아프게 하지 마라고 이야기 해주께.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 약 발라주고 뽀로로 반창고 붙여 주께. 그럼 금방 나을꺼야~“하는 말에 나는 이미 감동을 받고 있었다. 당시에는 별 말이 없었어도 다 보고 받아들이면서 아픔을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액션 아이템까지 구상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가아~ 엄마 지켜주께.“ 또박또박 분명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근래 몇 년간 요 녀석에게 할애할 시간도 너무 부족하여, 감명 깊은 책 한 권, 영화 한 편도 못 본 지가 오래인데, 그런 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이런 감동적인 멘트를 갑자기 툭하고 던지는 이런 작은 인간이라니.


2. 힘을 줄 수도 있다


근 삼 년간 내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말들을 이제는 아이의 입으로 들을 수가 있다. “나는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 같이 샤워를 하고 나오면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 순수한 표정을 하고 팔을 벌린다. 침대에 뉘어서 닦아주고 있으면 “엄마도 여기 옆에 수건 깔고 같이 누워바바. 나랑 여기 같이 누워있쨔~!”라며 내게 틈 없는 일상에서 여유를 부릴 찰나의 빌미를 제공한다. 그럴 때에는 ‘엄마는 지금 욕실도 정리하고, 옷도 챙겨 입고, 머리도 말리고, 밥도 해야 하고, 할 일 수백 개라 너처럼 그럴 여유가 없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스치지만 꾸욱 삼켜 누르고 “쪼아~!!”하고 옆에 같이 누워버린다.


막상 나와 둘이 있으면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항상 말하지만, 아빠랑 있으면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다고 하거나, 제삼자가 누가 더 좋냐고 물으면 “엄마랑~아빠랑~ 둘~다 똑같이 조아요!”라고 얘기하는 경지의 사회적 판단력까지 갖춘 노련한 인간이 되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하루는 전화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어머니, 아이가 선생님들이 좀 신경 쓰고 온 날은 꼭 ”선생님 오늘 너무 아름다워요~!“하고 얘기를 하는데 이게 결코 아무 때나 랜덤 하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신경을 써서 이쁜 옷을 입고 온 날에만 귀신같이 알아보고 얘기를 해요. 제가 어린이집 선생 십수 년째 하고 있지만 기저귀찬 애기에게 ‘선생님 아름다워요’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에요. 진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하신다. 종종 작은 사고들로 연락 오는 장난꾸러기 개구쟁이인데 또 이런 면도 있었다고 덧붙이신다.


3. 질문을 던져 준다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서도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말이 많은 편이다. 그 말의 80프로 이상은 의문문인데 “왜 여기 이층 뻐스가 두 개나 있어요?”와 같은 why부터 “이거 움직이게 하려면 어떠케 해야 해요?”라는 how, “이건 모예요? 모라고 써있어요?“ what 등 범주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쉴 새 없이 질문들을 던진다. 본인이 처음 들어보거나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은 연속적으로 똑같은 질문을 기본 세네 번 이상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야 계속 대답해 주면 되는데 어린이집 선생님께도 그렇게 귀찮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ㅠㅜ. 그런데 그렇게 반복학습을 하면서 스스로 소화를 하는 것 같은 게, 이후에 그 내용들을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답을 해주려고 해도 도저히 모르겠는 것들, 이를테면 “엄마 왜 방금 고양이가 나한테 윙크를 했어요?”과 같은 질문은 “네가 귀여워서 그런가 보다”라든가 대충 둘러대긴 하는데, “왜 매미는 낮에만 울어요?“와 같이 내가 당장 대답할 수가 없는 것들도 참 많다. 그럴 때는 “음.. 왜 그럴까?”라고 되묻거나 “음.. 엄마도 잘 모르겠네^^“하는데 점점 답하기 어려운 것들의 비중이 더 늘어나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의문이나 경외감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너무 무덤덤 하거나 무심한 노잼 어른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바로 다음 질문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하나를 오래 깊이 생각할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4. 나름의 논리가 있다


“아까 낮에 왜 처음에 골랐던 거, 계속 들고 있다가 결국 안 하고 계산하기 전 막판에 다른 걸로 바꿨어~?” 솔직히 ‘애니까 당연히 별 이유 없는 변덕이겠지’ 생각했으면서도 자기 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그냥 한번 물어본 거였다. “응~ 그거 내가 마음에 드렀는데에, 보니까 멍지(먼지)가 너무 많아떠. 그래서 내가 다른 모양으로 바꿔써~” 아이는 본인 행동에 있어서 나름의 논리가 명확히 있었던 것이다. 장난감을 고르는 데 있어 마음에 드는 ‘모양’보다도 ‘깨끗함’이 본인 의사결정의 우선순위에 있었고, 이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아마도 나보다도 결벽도가 더 심한 성격이 아닐까 추측)


어쩌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한 의견 피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른들의 강요만 있을 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도 힘도 없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차분한 논리적 항변이나 힘의 행사가 아니라 당장의 악쓰기와 울음뿐이라 그냥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는 아이로 보이겠지만, 어쩌면 나름의 진지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 아이에게 땅콩이란 저녁때만 우유와 같이 먹는 음식인 것으로 스스로 규칙을 정해놓은 것처럼.



인간은 크든지 작든지 간에 누군가에는 어떤 순간에는 엄청난 힘을 줄 수도 있는 큰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갓 세 살배기 조그만 아이만 되어도 때론 이렇게나 큰 위로나 감동을 줄 수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썩히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질문 없이 그냥 받아들이기에만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계속 관성에 젖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키가 아직 나의 허리께도 안닿는 꼬맹이의 아주 소소해 보이는 행동도 다 나름의 진지하고 의미 있는 논리들이 있는데, 남들의 생각이나 행동의 배경, 논리 등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보기나 했을까?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사실은 아이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 부분이 더 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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