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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an 02. 2025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2025년 1월 2일

새해 첫 업무는 상담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에너지 소모가 적지 않다.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이야기가 사건의 본질과 무관하거나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탈하거나 억지와 거짓이 가미되어 있는 생각이 들 경우에는 더욱 듣기가 힘들다. 그러나 의뢰인의 말을 듣는 것은 변호사의 일이고, 사건의 실마리와 형태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의 시작이기도 하고, 따라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허투루 들을 수는 없다. 의뢰인이 하는 말의 90퍼센트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건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 10퍼센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잘 들어야 한다. 물론 예상했던 바와 같이 오늘 상담은 의미 없이 끝이 났지만 말이다.




상담을 마치고 형 사무실 근처에서 형과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잔치국수와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했다. 멍게가 신선했는데, 바다내음이 좋았다. 잔치국수는 기본에 충실했다. 고명으로 오이가 들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국물이 진하고 깊었다. 비가 오면 이 집에서 멍게탕(멍게탕이라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에 막걸리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오늘 먹은 멍게비빔밥 맛으로 미루어 보면, 멍게탕도 실망시키지 않을 맛으로 짐작이 된다. 만약 내가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날씨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오늘 당장 비가 오게 했을 것이다.


마침 오늘 지하철에서 읽은 책이 철학은 날씨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이 마술도 아니고, 어떻게 날씨를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진정 모든 변화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의 눈은 삶에서 어디에 햇살이 깃들고 어디에 반가운 여름비가 오는지 찾아주어야 한다. 삶의 구석구석을 응시하면서 말이다. 삶의 햇살을 찾아주는 것도, 가뭄 속에 간직된 비 향기를 기억해 내는 것도 생각의 노력에서 시작한다.

-서동욱,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9-10쪽




어제 밤늦게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아내가 아프다. 새해 시작부터 아프다니...얼른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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