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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Jan 04. 2025

자본을 읽자

2025년 1월 4일

루이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가 드디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여기서 '자본'은 당연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왕성했던 인기를 고려해 보면, 왜 이제야 번역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다른 한편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누가 마르크스를, 누가 알튀세르를 읽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책을 번역한 역자들과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런 세상일수록 우리는 마르크스를, 알튀세르를 읽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알튀세르라는 이름은 대학생 시절, 라캉, 푸코, 데리다라는 이름과 함께 늘 나를 두근거리게 하는 이름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읽던 때의 가슴 벅차오르던 감정을 기억한다. 비록 번역본이었지만, 어쩌면 문장이 그토록 단단한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재미가 있었다. 본인의 고백에 따르면, 알튀세르가 글을 잘 쓰는 이유는 학교에서의 교육 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생각해 보면, 참 부러운 일이다.


<자본을 읽자>는 알튀세르의 단독 저서가 아니라 세미나의 결과물이다. 누군가는 고전을 읽고 이해한 결과물이 책이 되고 더 나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종국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왜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고전을 읽고 공부한 결과물이 고작 주석서 내지는 해설서에 머무는 것일까. 누군가는 고전과의 대결이 동시에 자기 시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씨름을 하는 것이 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 고전을 읽는 것은 한물간 오래된 책을 붙잡고 현실 문제를 외면하는 꼴이 되는 것일까.


알튀세르는 충분히 매력적인 철학자이고, 여전히 나를 매혹하는 이름이지만, 다음과 같은 비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인 존 몰리뉴는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책에서 알튀세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 알튀세르의 스탈린주의적 구조주의가 낳은 철학적 견해들은 실제 인간을 사회구조의 단순한 '담지자'나 산물로, 이데올로기의 포로 환원했다.; 2) 알튀세르의 '이론적 실천'과 매우 과장되고 으스대는 말투와 용어, 극단적 반경제주의.; 3) 노동자들과 동떨어져 상아탑에 갇혀 있던 알튀세르의 철학적 기여는 (그람시, 루카치와 비교할 때) 가장 보잘것없다.


아무튼 풍문으로만 듣던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 번역본 출간은 무척 기쁜 일이다. 올해 생일 선물로 찜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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