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6일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을 거르는 경우가 생긴다. 특별히 바쁘기 때문이거나 일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은 아닌데, 나중에 하게 되는 일이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일 경우에 점심을 거르는 일이 생긴다. 가령 오후 2시에 재판이 있거나 상담이 있거나 접견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이동시간 등을 고려해서 오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고 오후 2시에 일을 해야 하는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오전에 하던 일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금세 시간은 지나가고, 점심을 거르지 않으면 오후 2시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먹는 것보다 중요한 일을 대보라고 한다면,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 하겠다. 그래서 새해에는 절대 점심을 거르지 말자고 다짐했다. 도대체 먹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런데 올해 벌써 두 번이나 점심을 먹지 못했다. 오늘은 동부구치소에 접견을 가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 접견 시작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싫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의 구속'이 싫고 무섭다. 도대체 피고인을 접견하는 일이 먹는 일보다 중요할 수가 있단 말인가. 피고인 접견이 먹는 일보다 중요해서가 아니라 '시간의 족쇄'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아, 나는 시간의 노예다.
점심을 굶고 동부구치소로 가는 지하철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 "판단력은 인간 정신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한 번의 판단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의 운명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우리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을 때 '오판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예컨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형편없는 군사력을 공개하며 맥을 못 추는 러시아는 자신의 능력을 '오판'했다고 비웃음거리가 된다. 능력과 도덕성 모두에서 이토록 수치스럽고 더러운 군대는 인간의 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실수는 판단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데서 생긴다.(서동욱,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120-121쪽)" 계엄 사태 전에 쓰인 이 글은 어쩌면 이토록 적확하게 지금의 사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능력과 도덕성 모두에서 이토록 수치스럽고 더러운 대통령은 인간의 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처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 판단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혹은 왜 어떤 사람은 인간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판단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판단력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가치가 관철되기를 요구'(같은 책, 124쪽)하고, "판단은 실현해야 할 정당하고 건전한 가치를 요구"(같은 책, 125쪽)하기 때문이리라. 즉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경우에조차 판단은 언제나 '가치' 판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즉 거칠게 말하면(혹은 거칠게 이해하자면) 도덕이나 윤리관념이 희박한 자의 판단은 언제나 오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민의 힘 국회의원들은 그래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부구치소 앞에는 아직도 김용현을 지지하는 화환이 도열해 있는데, 그 화환을 보낸 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판단력의 위대함은 지식을 얻는 데 있지 않고, 바로 도덕적 이념에 비추어 이런 사태가 일어나도 괜찮은지 심판하고 비난하는 데 있다.(같은 책,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