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 우리 가족은 호주로 유학을 갔다. 요즘엔 아이들을 위해 유학을 많이 떠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빠의 학업을 위해 우선 어학연수 1년 과정을 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 가족이 호주로 유학을 간 것이다. 비행기라고는 아빠가 라디오 사연을 보내시고 당첨되셔서 가게 된 제주도 여행이 다였는데 이제 막 1학년을 끝내고 방학을 기대하는 나에게 엄마 아빠는 갑자기 내 몸짓만 한 이민가방 6개를 가지고 오시더니 이제 우리는 '호주'를 가게 되었으니 짐을 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저 비행기 타는 게 좋았던 나는, 또 우리 가족이 여행을 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아주 설래이며 호주 유학길을 오른 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호주는 정말 어린 나이였지만 참 매혹적인 나라로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이 더웠고, 과일은 넘쳐났고,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으며 우리는 못생긴 주황색에 초록색 교복을 입어야 했다. 신기하게도 모자도 교복의 세트였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운 모자 (귀까지 덮이는 모자)를 쓰고선 동생과 함께 학교를 등교하고 하교했다.
나는 너무 어릴 적이라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엄마는 내게 우리가 너무 걱정되어 항상 학교에 오셔서 오피스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다 가셨다고 한다. 왜 굳이 그렇게 까지 하셨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엄마 나이가 되고 또 어린이집을 다니는 딸이 있는 지금,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나 또한 내 딸이 잘 적응하는지 종종 걱정되어 중간에 찾아가 밖에서 잠시 보고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부모가 종종 와서 지켜보고 가도 된다고 하였다).
어렸을 때 호주란 내게는 많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들 몇 개 중에서 특히 수상스키를 타고 오는 산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풍족하지 못한 유학생활 이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챙겨 주고 싶었던 엄마는, 가장 싸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시고선 집에다 작게 장식을 하셨다. 하지만 너무나도 더운 호주의 크리스마스, 더위에 지켜보기도 덥다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로 치워 버리시긴 했지만, 마트에 들르면 코너마다 볼 수 있었던 수상스키를 타던 수영복 잆는 산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어찌나 그게 참 신기했던지...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바다 근처에 살고 있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겐 산타는 참 힙한 할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