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화장실에서 난 담배연기로 인해 아파트 생활에 회의가 크게 왔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입주민 때문에 안 그래도 분노가 올라오던 참이라 참기가 쉽지 않았다. 아래에 기술할 담배연기와의 사투와 해결과정, 그 과정에서 아파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아파트의 장점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으니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주변 인프라가 발달하게 된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 마트나 백화점, 각종 의료시설 등이 풍족하게 들어서고, 당연히 도보나 차로 이동이 용이하다. 또한 주거의 비용이 낮아진다. 동일한 기초 위에 여러 세대의 집을 한꺼번에 타설 하게 되면 주택 건설의 원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같은 가격이라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주거를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공동으로 부담하는 관리비로 인해 조경이나 여타 주거 관련 서비스를 저렴하게 누릴 수 있기도 하다. 인구밀도가 높고 평지가 적은 한국의 특성에 잘 어울리는 형태인 셈이다.
아파트는 거래도 편리하다. 대체로 규격화되어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가격 산정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집의 내재적 원인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보니 외부 요인에 의해서만 가격이 형성되고 이는 아파트를 상품화하는데 유리하게 작용된다. 일단 상품화가 되면 가격에 따른 등급을 나누는 것이 쉬워지고 소위 말하는 상급지 개념이 생성되게 된다. 사람들이 주거를 단순히 취향과 편의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투자 상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거래가 활발해지고 이로 인해 거래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각종 서비스가 활성화된다. 집을 살 때 절차가 간소화되고, 내가 원하는 조건을 가진 집을 쉽게 찾고 비교할 수 있다.
단점도 많다. 우선 아파트는 갈등 요소를 많이 내재하고 있다. 기술적 해결책이 있음에도 경제성의 원리를 이유로 이를 적극 도입하지 않는 건설사나 이에 대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정부를 차치하더라도, 층간소음은 대표적인 아파트 내 세대 갈등에 해당한다. 또한 흡연이나 악취, 공동생활에 따른 규칙 준수 등을 지키지 않아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 소위 말하는 한 두 명의 빌런에 의해서 공동체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되는 일들이 아파트라는 공간의 특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은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서로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끔 만들어 행복한 삶에 방해가 된다.
또 하나는 앞서 설명한 주거의 상품화다. 집이 상품화되면서 사람들이 주거를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게 만든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상대적인 비교와 경쟁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집이 재력을 드러내는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사회적 단절을 조장하는 효과가 있다.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나누는 파편화가 일어나고, 이들 간의 소통을 막아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 주거는 모든 사회적 편견의 바탕에 존재하게 됨으로써 폐쇄적 주거 문화를 더욱 강화시킨다. 단순히 특정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슬픈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말 저녁에 평화롭던 가정은 화장실에서 피어나는 담배연기에 박살이 났다. 은은하게 퍼지는 연기가 아니라 매캐한 담배연기가 그대로 화장실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사 오고 이런 일은 처음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황급하게 관리사무소 통해서 방송을 부탁드렸고, 온 집안을 열어서 환기를 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저녁에 다시 또 담배연기가 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집에는 돌도 안된 아기가 있는데 이런 연기를 맡으면서 살아야 한다니. 그건 지옥이었다.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주거, 주거의 영역에 심각한 침해가 발생했다는 생각이 들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불안감도 올라왔다.
화를 잔뜩 내고 나서 조금 진정이 되고 나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담배연기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통상 공동세대에서 퍼지는 담배연기는 은은한 담배연기일 텐데, 이번 경우에는 바로 앞에서 피는 것처럼 매캐한 연기였다. 그리고 최근에 이사 온 사람도 없고, 몇 년 간 안 피던 사람이 갑자기 비 온다고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순간 번뜩이는 직감.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서 환풍기 앞에 손을 대어 보았다. 환풍기를 끈 상태에서 집 안으로 바람이 엄청나게 몰아치고 있었다. 전동 댐퍼가 포함된 모델인데도 불구하고 닫혀있지 않다는 것은 고장이 났다는 뜻이다. 환풍기를 켜자 조금 약해지긴 해도 여전히 바람이 들어왔다. 환풍기가 고장 난 것이다.
이제야 전모가 밝혀졌다. 담배는 우리 아래쪽 층에서 늘 피우던 것이었다. 그동안은 전동 댐퍼가 포함된 환풍기가 제 성능을 발휘해서 잠겨 있던 덕분에 담배 냄새가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아파트 옥상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었다. 그런데 마침 주말에 환풍기가 고장이 났고, 압력 차이로 인해 집 안으로 바람이 들이차면서 담배 연기가 빨려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은은하게 퍼지는 냄새가 아니라 매캐한 연기가 그대로 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전동댐퍼가 포함된 유명 회사의 환풍기를 거실과 안방에 하나씩 주문했다. 설치비까지 하면 엄청난 비용이었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서 단점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는(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단독주택에서는 이런 빌런들이 없긴 하겠지만, 저런 사소한 장비들을 내가 다 구입하고 유지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집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한 관리 포인트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들 아파트의 단점을 알면서도 바글바글 모여 사는 것이겠지. 이러나저러나 우리 인생은 늘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서 아둥바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 산 환풍기에서는 담배 냄새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